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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내 아이의 마음에 심는 나무

| 조회수 : 1,907 | 추천수 : 121
작성일 : 2009-09-21 11:58:55
흔히들 아이들의 마음을 스폰지에 비교한다. 무엇을 빨아들였는지를 알 도리가 없고 다 자라 어른이 되어야만 자기가 흡수한 것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이들의 기억처럼 선명하고 경이로운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부부가 몇 년이 넘도록 남편의 성기능 장애로 인해 고생을 하다가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었는데, 남편의 사연을 캐어보았더니 그것이 남편의 어린 시절로 이어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유난히도 외도가 잦았던 아버지로 인해 늘 집안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가 가위를 가지고 나와 이제 막 대청 마루에서 잠이 들은 대 여섯 살된 아이에게 들이댔다고 한다. 너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여자 문제를 일으키면 내 손으로 잘라버리겠다고...

오죽 남편에게 받은 설움이 컸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아들은 엄마의 서러움을 헤아리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고 그 사건으로 인해 사춘기가 되어서도 성욕을 한 번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인물도 좋고 학벌도 좋고 성격도 착실하고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신랑감의 조건이니 중매장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까지 했지만, 부부 생활을 전혀 할 수가 없으니 이 부부는 결국에는 부부의 연에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는 것이다. 뒤에 심리 치료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남편에게 있어서 성이라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 이유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부부는 아무리 애를 써도 절제가 되지 않는 남편의 폭력 때문에 결혼 생활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술과 노름에 빠져 가정을 내팽겨치고 살아온 아버지를 평생 증오하며 자라났다. 어려서는 늘 피투성이인 엄마를 보며 절대로 나는 저런 남편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며 자랐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조금이라도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자제가 안되고 자기도 모르게 집안 가재도구들을 집어던지며 아내와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이혼 위기도 몇 번이고 아내는 우울증까지 오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피해 방과 후에도 집에 오기 싫어서 집 밖으로 도는 가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아내는 아내대로 어려서부터 허구한 날 부부싸움이 잦은 가정에서 자라면서 늘 부모가 이혼하면 나는 어쩌나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안방에서 왁자지껄 싸움이 벌어지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떨면서 제발 엄마 아빠가 이혼하지 않게 해달라고 울며 자랐다는 아내는 지금 자신의 아이들도 꼭같은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에 한이 맺힌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부모의 결혼 생활을 그대로 답습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2 학년 정도 무렵, 나도 남편과 사소한 일로 시작해 큰 싸움을 하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넷을 기르면서 바깥일까지 내 어깨는 터져나갈만큼 무거웠는데 출장이 잦았던 남편은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저만치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것같은 모습에 폭발을 한 것이었다. 말다툼 끝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혼 얘기가 나왔는데 마음을 풀지 않고 언짢은 채로 다음 날이 되었다.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오는데 웬일인지 말이 없고 눈치를 슬며시 보는 모양이 영 이상해서 물었더니 쭈삣거리면서 엄마 아빠가 이혼할 거냐고 했다. 자기가 어젯밤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변명이 궁색해서 아빠가 하도 미워서 엄마가 이혼하자고 한 거라고 둘러댔더니 조용해지면서 말이 없었다. 백미러로 뒤를 돌아다 보니 아이가 달기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울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한 편으로 차를 세우고 물으니 모기만한 소리로 말을 한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면 안될까..."
그러면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빠가 그렇게 미워?" 그럼 밉지 라는 말이 입 가에 맴을 돌았지만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으니까 그제서야 눈물을 닦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러 미안했던 수 만번의 실수 중 내가 가장 아프게 기억하는 실수라면 내 아이가 나와 아빠의 관계에 대해 근심을 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만은 부모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미처 짐작도 하는 사이에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망가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미워하는 남편, 내가 미워하는 시댁, 내가 미워하는 친정 식구...우리는 이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내 아이와 비슷한 성격이나 모습이 있으면 그들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울분을 아이에게 쏟아부을 수 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당해주니까 모든 화풀이의 대상이 아이들이 될 확률은 얼마나 많은가. 이혼을 겪는 수많은 아내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아마도 상대 배우자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내 미운 맘 그대로 아이에게 아빠의 잘못을 낱낱이 다 밝혀주고 아이를 온전히 내 편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낯선 마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순간의 마음 때문에 아이가 남은 평생 동안 받아야 할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결혼 후 배우자의 인생에까지도 얼룩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심적 육체적 장애가 나로부터였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일 것인가.

때때로 이혼 가정을 만나면서 아빠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 그 말에 오히려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을 밝히는 것인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의 이기심이고 나만을 위하는 행동임을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옳음, 남편의 그릇됨을 알리는 것은 좋지만, 하늘같은 부모가 갈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 앞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는 아이의 마음에는 피눈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가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서운하게 생각한다면 그 또한 너무나 모진 욕심이다. 아이에게 부모 중 누구 한 편을 들으라고 하는 것은 마치 솔로몬 왕 앞에 세워진 아기 엄마들에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눠가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를 반으로 갈라 가질 수 없듯이 아이도 부모란 하나이지 둘로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의 마음에는 해마다 식목일이면 심는 씨앗이나 묘목보다 더 많은 사랑의 나무와 꽃의 씨앗들이 심어져 뿌리를 내린다. 내가 심는 것도 있고 가정 밖에서 심어지는 것도 있어 아이의 마음밭 모두를 내 마음대로 주장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심어주는 씨앗만큼은 사랑과 용서의 씨앗이기를 바래본다. 어쩌다 잘못 흘린 미움의 씨앗으로 인해 숲이 울창할만큼 미움과 분노가 뿌리를 내린다면 그 열매가 대대로 우리 집안의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니 말이다. 언젠가 백년이 지나고 이백년이 지나도록 나의 손주, 증손주들이 할머니가 심어준 씨앗으로 인해 아름다운 열매를 수확하며 살아갈 그 날이 오면 참 좋겠다는 다부진 꿈을 꾸어본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enna
    '09.9.21 12:17 PM

    저 역시 이혼가정에서 자라나 부모로부터 많은 상처를 물려받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엄마 아빠가 서로 내 앞에서 상대를 인격적으로 헐뜯고 모욕하는 것이었죠.
    자신들에게는 이제 갈라섰으니 남이고
    엄청난 상처를 준 전배우자 이지만
    나에게는 육신의 부모인데

    나는 내 친부모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에 큰 분노와 낮은 자존감으로 학창시절과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방황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서른에 들어와 눈을 떴습니다.
    저에게는 절대자의 사랑으로 그것들이 밝혀졌고,
    내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자랐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정체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부모의 부모의 부모...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내 대(代)에서 끊으리라는 결심을 했고,
    내적 치유와 관련 책들과 상담, 그리고 여러 진리들을 통하여
    그것에서부터 벗어났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내 상처를 돌아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저는 그래도 이제 그 폭풍의 핵으로부터 빠져나와
    한 발치 너머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에겐 너무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상처 치유 과정..필요합니다.
    울고 소리치고 직접 당사자 찾아가서 이야기도 하고
    때론 어쩔 수 없이 싸우게도 되고...

    하지만 조심할 것은 너무 큰 자기 연민으로 빠져들어가
    아픈 상처 핥고 또 핥으며 자기를 불쌍해하는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일련의 상처 치유 과정을 거친 후에는
    반드시 그들을 용서하고 또 나를 용서하고
    그리고 그 과거로부터 완전하게 발목을 빼고
    자꾸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앞을 보며 살기에도 벅차고 해야할 일들이 아주 많죠.
    그리고 이런 것들을 저는 가정의 유산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그런 상처극복기들을 제 아이가 자라면 해 줄 생각입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이야기죠.

    우리 가정의 대의명분을 위해서 고상한 척 문제없는 척 꾸미지 말고요..
    있는 그대로..그렇게 보이고싶어요.

    사람 사는 곳에 늘 상처는 있기 마련이니
    얼른 내 에너지가 더 쎄져서 그것들로 부터 더 자유로워 지길 바랄 뿐입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2. 동경미
    '09.9.21 12:39 PM

    jenna님, 어려운 시간을 잘 극복하시고 오셨네요. 우리 대에서는 부모들이 모르고 물려준 잘못된 유산들이 다 청산되어 우리 아이들은 그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 저도 공감하고 늘 마음에 새깁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지고 싶은 님의 마음이 참 아름답고 귀합니다.

  • 3. 호야
    '09.9.21 2:30 PM

    동경미님,jenna님 감사하게 읽고 갑니다.
    늘 행복하세요.

  • 4. 수류화개
    '09.9.24 6:48 PM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학습되어집니다. 교육은 3대 간다고 하네요. 그만큼 내가 내 뱉는 말한마디가 아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크게 좌우할지 참으로 신중해야 할 거 같아요. 오늘도 다짐합니다. 아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자존심 상하는 말, 비하하는 말, 부정적인 말 ,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 내는 말 등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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