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응모]집에 불이 났어도 김밥 만은.....

| 조회수 : 3,901 | 추천수 : 11
작성일 : 2006-10-30 14:09:10
낚시를 가는 남편과 아들이 김밥을 싸 달라고 한다.
김밥 재료들이  없다고 하니까 남편과 아들은 무슨 말이냐며?
집에 불이 났어도 김밥은 잘 싸는 여인이.....
갑자기 15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시집을 간 나는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다.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했었기에 겨우 밥만 해서 친정에서 얻어온 김치로 대충 살았었다.

군인인 남편을 두어 난, 계속 관사에 살았었는데 그 때만 해도 부인회가 있었다.
가끔 모여서 점심을 먹거나 음식을 준비해야할 일들이 있었지만 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남편의 선배, 상사의 부인들이 친절하고 야무지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곤 했는데
새댁 땐 모든 게 낯설었고 선배들이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절.
그 때 그 시절에 82cook를 알았다면.....
물론 그 때는 인터넷이란 말도 없었을 때일 것이다.

임신을 하고 직장을 그만 둔 나는 음식에 관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고,
살림과 요리에도 관심을 갖고 관사 생활에 적응이 되고 있을 즈음.

국군의 날 행사에 모형항공기대회가 부대에서 있었다.
부대에는 음식을 파는 곳도, 사먹을 곳도 없기에 부인회에서 대회에 참가한 학생과
그 외 사람들을 위해 김밥, 국수, 전 등을 해서 저렴하게 팔았다.

행사 전 날. 밤늦게 김밥의 속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20여명의 부인들이 18평 관사의 좁은 거실에 모였다.
휴대용 가스버너를 나란히 놓고 우엉을 졸이고 당근을 볶고, 달걀 지단을 부치는데
워낙에 많은 양을 준비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렸다.
나란히 놓인 가스버너에 경험이 없는 새댁이 가스를 갈아 끼우는데 순식간에 압축되었던 가스가 새서
옆에 놓인 버너로 옮겨 붙은 것이다.

모두들 앞치마를 두르고, 맨발로 밖으로 뛰쳐나왔고, 아랫집에 있던 남편들이 올라와
분말소화기 세 개를 뿌려댔다. 다행이 불길은 잡혔지만 그 좁은 아파트에 그 많은 하얀 분말들이 쏟아졌으니
아무리 쓸어내고 닦아내도 구석구석 박힌 분말들이 몇 년 더 살고 이사를 할 때까지 남아 있었다.

갑자기 환한 불빛을 보고 앞 동에서 신고한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이미 불길은 다 잡혔고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뜨거운 열기에 화초가 다 죽었고 모든 살림살이가 뒤집어쓴 분말이 문제였지만.....

그리고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파트 3층에서 맨발로 뛰어나온 여인들의 손에는
음식을 준비했던 커다란 양푼들이 들려 있었다.
그 곳엔 분말이 하나도 묻지 않은 당근과 달걀지단과 우엉들이 웃고 있는 것이다.
신발도 못 신고 3층에서 뛰어 내려왔지만 자기가 만들고 있던 김밥 속 재료들은 들고 뛰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무런 피해도 없이 다음날 새벽에 모여서 김밥을 쌀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귀중품은  바로 그 김밥재료들 이었으니까.....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sweeter
    '06.10.30 2:20 PM

    참고로 저 김밥 사진은 없는 재료들로 준비해서 갑자기 싼 김밥이라서
    볼품이 너무나 없지만 남편 말대로 불이 났어도 다음날 김밥을 쌌던 솜씨라
    재료만 좋으면 더 예쁘게 쌀 수 있답니다.

  • 2. 달려라 삼천리
    '06.10.30 2:25 PM

    ㅋㅋㅋ 그 김밥 맛이 궁굼하네요~

  • 3. 생강나무꽃
    '06.10.30 2:26 PM - 삭제된댓글

    눈물나는 내조입니다... ㅎㅎㅎㅎ

  • 4. 둥이둥이
    '06.10.30 10:36 PM

    재미있게 읽었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078 시애틀에서 시카고 여행 2 1 르플로스 2025.08.30 770 3
41077 (키톡 데뷔) 벤쿠버, 시애틀 여행 1 6 르플로스 2025.08.29 2,046 5
41076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1 4 은하수 2025.08.28 2,580 4
41075 큰아들 이야기 2 18 은하수 2025.08.27 3,296 4
41074 큰아들 이야기1 5 은하수 2025.08.26 6,051 5
41073 논술 교사 이야기 26 은하수 2025.08.25 3,685 4
41072 엄마 이야기2 20 은하수 2025.08.24 3,699 3
41071 엄마 이야기 25 은하수 2025.08.23 6,507 3
41070 더운데 먹고살기 3 남쪽나라 2025.08.22 8,113 3
41069 그해 추석 10 은하수 2025.08.22 3,500 3
41068 내영혼의 갱시기 12 은하수 2025.08.21 3,743 4
41067 포도나무집 12 은하수 2025.08.20 4,283 4
41066 테라스 하우스 이야기 14 은하수 2025.08.19 6,045 4
41065 양배추 이야기 12 오늘도맑음 2025.08.18 6,810 3
41064 고양이의 보은 & 감자적 & 향옥찻집 20 챌시 2025.08.17 4,278 3
41063 간단하게 김치.호박. 파전 13 은하수 2025.08.16 6,612 3
41062 건강이 우선입니다 (feat.대한독립만세!) 16 솔이엄마 2025.08.15 6,625 4
41061 비 온 뒤 가지 마파두부, 바질 김밥 그리고... 15 진현 2025.08.14 6,477 5
41060 오트밀 이렇게 먹어보았어요 16 오늘도맑음 2025.08.10 8,023 4
41059 186차 봉사후기 ) 2025년 7월 샐러드삼각김밥과 닭볶음탕 13 행복나눔미소 2025.08.10 4,691 8
41058 오랜만에 가족여행 다녀왔어요^^ 18 시간여행 2025.08.10 7,109 4
41057 무더위에 귀찮은 자, 외식 후기입니다. 16 방구석요정 2025.08.08 6,119 6
41056 친구의 생일 파티 20 소년공원 2025.08.08 6,183 7
41055 2025년 여름 솔로 캠핑 33 Alison 2025.08.02 9,033 7
41054 7월 여름 35 메이그린 2025.07.30 10,329 5
41053 성심당.리틀키친 후기 30 챌시 2025.07.28 12,670 4
41052 절친이 나에게 주고 간 것들. 10 진현 2025.07.26 11,839 4
41051 디죵 치킨 핏자와 놀이공원 음식 20 소년공원 2025.07.26 6,565 3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