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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비오는날 ..메밀칼싹두기 (잊을수 없는 밥 한그릇中)

| 조회수 : 2,073 | 추천수 : 18
작성일 : 2004-11-10 15:10:09
우연히 오늘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오늘 날씨에 해먹으면 딱 어울리겠다 싶더군요.
이름도 처음 들어본 메밀칼싹두기.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음식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한번 읽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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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완서


[이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없다]

메밀칼싹두기.

1.
비 오는 날이면 요즈음도 나는 수제비가 먹고싶어진다.
그건 아마 어린날의 메밀 칼싹두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벽촌의 비 오는날의 적막감은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그러나 장차 피할수없게 될 인생의 원초적인 고독이 예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랑채 툇마루에 오도카니 앉아 있으면 비에 젖어가고 있는 허허벌판과 큰 나무들과
나직한 동산과 몇 채 안되는 초가지붕과 불어나고 있는 개울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럴때면 대식구 속에서 귀염받는 어린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핑계만 있으면
울어버리고 싶게 청승스러워지곤했다.
그런날은 아마 나뿐 아니라 식구들이 제각기 다들 까닭없이 위로받고 싶어지는 날이 아니었을까.
할머니나 엄마 아니면 작은엄마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칼싹두기나 해먹을까하는 소리가 나왔다.
우리집에서 칼싹두기 하면 그건 으레 메밀로 하는걸로 되어있었다.
밀가루로 하는 칼국수보다 면발이 넓고 두툼하고 짧아서 국수보다는 수제비에 가까웠다.
그건 아마 꼭 그렇게 해야된다는 조리법이 있는 게 아니라 메밀가루가 밀가루보다 덜 차지기
때문에 저절로 그리 되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메밀밭을 따로 본 기억은 없다.
물이 풍부하고 벌이 넓어서 논농사가 주였고 밭농사는 자급자족할 수있는 텃밭정도였다
텃밭에서도 이효석이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고 절묘하게 표현한 메밀꽃을 본 기억이 없으니
아마 텃밭 머리에서 뒷동산으로 올라가는 척박한 둔덕 같은데다 배겟속이나 별식용으로 조금
심었을것이다.

2.
메밀가루도 밀가루도 집에서 맷돌에 갈아 체로 친 거였으니까 요새 우리가 먹는것보다
훨씬 거칠고 빛깔도 희지 않았다.
그중에서 메밀은 더 누렇고 거뭇거뭇한 티도 많았다.
그걸 적당히 반죽해 다듬이 방망이로 안반에다 밀어서 칼로 썩둑썩둑 썰어서
맹물에 삶아서 약간 걸쭉해진 그 국물과 함께 한 대접씩 퍼담는 것으로 요리 끝이었다.
간은 반죽할 때하는 삶은 물에다 치는지 잘 모르겠다.
따로 양념장을 곁들이지도 않고 꾸미를 얹지도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무던하고 구수한 메일의 순수 그 자체였다.
또한 그때만 해도 한가족끼리도 아래 위 서열에 따라 음식 층하가 없을 수없는 시대였지만
메밀 칼싹두기만은 완벽하게 평등했다.
할아버지 상에 올릴 칼싹두기라고 해서 특별한 꾸미를 얹는 일도 없었지만,
양까지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막대접으로 한 대접씩 평등했다.
한 대접으로는 출출할 장정이나 머슴은 찬법을 더 얹어먹으면 될것이고,
한 대접이 벅찬 아이는 배를 두들겨 가며 과식을 하게 될것이나 금방 소화가
되어 얹히는 일이 없었다.

땀 흘려 그걸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해지면서
좀전의 고적감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이렇게 화목한 집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기쁨인지 감사인지 모를 충만감이 왔다.
칼싹두기의 소박한 맛에는 이렇듯 각기 외로움타는 식구들을 한식구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3.
꿩대신 닭이라고 요새도 비 오는 날이면 밀가루 수제비라도 먹고싶어진다지만,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면 수제비를 뜨지 않는다.
나는 단지 내 입맛만을 위한 요리도 즐겨 하는 편인데 수제비만은 혼자 먹으려고 해지질
않는다. 내가 잊지 못하는 건 메밀의 맛보다 화해와 위안의 맛이 더 크기 때문일것이다.

4.
근래에 기적처럼 메밀칼싹두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조각가이자 미식가로도 소문난 이영학 선생 댁에서였는데 끓는 물에 삶아 건진 칼국수를
찬물에 재빠르게 헹구어 일식집에서 메밀국수 다시로 나오는것과 비슷한 양념국물에
찍어먹으라는 것이었다.
칼국수와 소바를 짬뽕해놓은 것 같아 그닥 맛있을것같지 않았는데 맛을 보니 기가 막혔다.
양념국물때문이 아니라 국수 자체가 그렇게 깊고 편안하고 감칠맛이 있었다.
칼국수와도,파는 소바와도 닮지 않는 이 맛은 무엇일까?
그 맛속에는 나를 끌어당기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5.
아니나 다를까 그건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였고 만드는 방법도 큰 도마에다 밀어서
칼로 썬 옛날 우리집에서와 같은 수제였다.
다만 메밀가루가 정제된 고운것이어서 옛날의 칼싹두기보다 훨씬 하얘졌을 뿐이었다.
그러면 그렇치, 옛날맛에 대해 치사할 정도로 집요한 내 입맛에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못했다.
한 식탁에서 그것을 맛본 딴 손님들도 다들 그것을 맛있다고 했지만 나하고는 달랐다.
나의 찬탄은 거의 감동 수준이었다.
나는 그 메밀칼국수를 한 번 맛본 걸로는 성이 차지를 않아 한 번 더 초대해주길 간청해서
실컷 먹어보았다.

6.
이 글을 쓰기위해 그 댁에 전화를 걸어 그 재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알아보았는데
농협에서 산 봉평 메밀가루에 약간의 밀가루를 첨가한 거라고했다.




음악-이루마의 Kiss the rain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나너하나
    '04.11.10 3:20 PM

    저도 꼭 먹어보고 싶네요.
    예전 춘천에서 메밀을 많이 섞은 막국수를 먹은적이 있었는데
    메밀국수 삶은 물을 육수로 따로 나오더군요.
    구수하고 깊은 자연의 맛이랄까..
    요즘은 양념맛보다 그냥 있는 그래로의 맛을 느끼고 싶은때가 많답니다...

  • 2. 올리브
    '04.11.10 7:43 PM

    전 은젠가 TV에서 보구선 꼭! 찝어놨었어요.
    이름도 칼싹두기 이뻐요^^
    이 칼싹두기 아시는분 계시면 사진 올려주심 넘 좋겠어요^^

  • 3. 나르빅
    '04.11.11 3:07 PM

    박완서의 글 너무 좋아하는데.. 역시 작가의 감성이 살아있는 글이네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4. cjqueen
    '04.11.11 3:09 PM

    저두 이책 읽었는데..그맛이무지 궁금해요~~~

  • 5. 모니카
    '04.11.11 3:18 PM

    언젠가 차타고 가다 간판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게 메밀칼싹두기군요.
    이름이 재밌네요, 칼로 싹둑싹두가..칼싹두기..
    맛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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