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엄마 상태를 조금만 더 잘 살폈더라면...
하다 못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었더라면...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지 않았을까...
엄마 임종시에 손 붙잡고 있었는데...
시간이 멈추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부는 바람처럼 흘러가서 잡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 살아있을 때 조금만 더 잘 해줄 걸.
조금이라도 더 상냥하게 굴 걸...
엄마가 뭔가 잘못해도 짜증내고 화내지 말 걸...
엄마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놀러다닐 걸...
엄마가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다 사줄 걸...해줄 걸...
엄마가 뭔가 해보고싶다고 하면 친절하게 가르쳐 줄 걸...
엄마한테 못해준게 너무 많아서...엄마한테 잘못한게 너무 많아서...
미안해서 미안해서 매일 울게 되네요.
우리 엄마는요...
요리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하고 싶어 했는지...
엄마한테 가르쳐주면 가르쳐준대로 안하고 하고싶은대로 해서 재료를 버리게 만들고...
깍두기가 먹고싶대서 썰어놓고 잠시 나갔다 왔는데...
고춧가루도 아닌 고추장에...멸치액젓에...식초를 들이부어서...
도저히 먹을 수도 없고...먹으면 건강에도 위협이 될 정도라서...
결국 버리고 화를 냈었어요...그래서 완성된 깍두기의 사진이 없네요...
그냥 웃으면서 다음부턴 엄마 혼자 하지 말고 꼭 같이 하자고 할 걸...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같이 해도 됐을텐데...
같이 장 보러 가면...먹고싶다고 이것저것 다 사놓고는...
다 먹지도 못해서 버린게 대부분이었어요.
사지 말라고 하면 사자고 사자고 계속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고 나중엔 버리고...
그렇게 한 달에 몇십에서 몇백씩 버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장 보러 갈 때 혼자 가서 장 봤는데...
나중에 버리게 되더라도 엄마 손 잡고 장 보러 다닐 걸...
그래봐야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싫었었는지...
자꾸 부엌에 들어가지 말라고 요리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하려고 하지 말라고 그러고...
지금에 와서는 후회만 남아있네요...
이전 글들에서 많은 분들께서 걱정해주셔서 참 고맙고도 미안해요.
그런데...내 일상엔 항상 엄마가 있었어서...일상을 살 수가 없네요..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하던 일도 그만두고 엄마랑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서...
그 몇 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랑 같이 보냈어요.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였어서...매일 차로 출퇴근시켜드리고...
투석 받는 날에는 병원에 같이 가고...
학교 끝나거나 투석 끝나면...같이 엄마가 먹고싶다는 거 사먹으러 가고...
뇌경색으로 쓰러졌었는데 그래도 정년퇴직 하겠다고 무리를 하고...
마지막에 다녔던 학교 선생님들의 배려로 무사히 정년을 맞이하셨었네요...
집안 사람들이 다 교사, 교수 아니면 목사...인데...
엄마의 형제들은 교사가 많았어요.
근데 정년까지 한 사람은 없다면서...
그만 뒀다가 복직하신 거라서 교장교감은 되지 못했어도 정년까지 한게 그렇게 자랑스러우셨었나 봐요.
내 입장에선...그게 그렇게 건강 해쳐가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싶고...
빨리 그만두고 건강 챙겼더라면 조금이나마 낫지 않았을까...
부모님한테 원망스러운 것도 참 많은데...
가장 큰 건...동생을 편애하셨어요.
동생만 예뻐했다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릴 때부터 동생은 자기 잘못을 다 저한테 뒤집어 씌우기도 했었고...
동생때문에 죽을 뻔한 적도 몇 번 있어서 그런가...
동생을 편애하시는게 참 원망스럽고 난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찬밥취급 당하나 싶기도 했었고...
생각해보면 내가 못생겨서 그랬나 싶어요.
아니면 아들이라서? 보통은 딸보다 아들 좋아한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예쁜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특히 엄마는 다니던 병원 간호사들도 예쁜 사람을 더 좋아했었어요...
부모님 젊을 때 사진을 생각해보면...참 미남미녀고...
동생도 얼굴만큼은 예쁘게 생겼으니까요.
그래도 나 나름대로는 외모가 떨어진다는 생각은 별로 안했었는데...
엄마한테는 그냥 못생긴 아들이었을 거예요.
생일에는 못생기게 낳아줘서 미안하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그래서 예쁨 못받았나 싶고 나중엔 외모 컴플렉스도 좀 생겼었으니...
그래도 내 전여친들은 다들 예쁘게 생겼었는데...
모델도 있고 배우도 있고 가수도 있었는데...
외국인이라서 싫어했던 걸까요. 아니면 못난 아들의 여친이라 싫어했던 걸까요...
지금에 와서는 알 수도 없네요...
엄마가 그렇게 예뻐라하던 동생은 엄마가 뇌경색 처음 왔을 때 연락을 딱 끊어버렸어요.
그 전까진 엄마랑 통화도 하고 나 몰래 만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아마도 자기한테 모시라고 할까봐 그랬나...싶은데 잘은 모르겠어요.
지금 보면 그냥...쓰레기네요. 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매제라도 왔었는데...
몇 년 전에 엄마가 쓰러지셨을 때에도 안오고...
이모들 통해서 연락해도 이모들이나 내 연락처는 차단해놨길래...
외삼촌이랑은 연락 잘 안했을테니 외삼촌한테 부탁해서 전화했더니 받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돌아가실 것 같다고 연락은 했는데...
결국 얼굴조차 비추지도 않고...외삼촌 연락처도 차단해버린 것 같아요.
매제라는 놈도...어떻게 그 사이에 단 한 번도 연락을 안할 수가 있는지...
자기 장모님인데 몇 년에 한 번이라도 찾아뵙는게 그렇게 어려웠는지...
엄마는 그것들을 그렇게 예뻐라 했는데...
엄마는 피싱 문자 온 거에...
동생한테 연락 왔다면서...어떻게 해야 하냐고 뭔 일 난 거 아니냐고...
그렇게 걱정을 하고...
쓰러지시기 전날에도...동생을 그렇게 찾아서 보고싶다고 그랬는데...
말만이라도 찾아준다고 할 걸 그랬나 봐요.
아니...찾아서...엄마가 상처받게 되더라도 찾아줄 걸 그랬나 봐요...
엄마라면...마음 아파하더라도...그래도 잘 살고 있으니 됐다고 했을텐데...
오늘도 엄마한테 다녀왔어요.
요즘은 그래도 억지로 버틸만은 해서...매일 가고 있어요.
어제는...친구랑 같이 다녀왔어요.
그래서 지난 번에 사진 올렸던 그 국수집에 같이 가서 국수도 먹고...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해야 할 것들을 하고 왔어요.
사망시 보험 수익자를 친구로 돌려놓고...
언제 갈지 모르는 몸 상태이다 보니...엄마 옆자리를 미리 찜해두려고 했는데...
안치될 당사자가 구매를 할 수는 없대요.
그래서 친구한테 부탁해서 친구 이름으로 제 자리를 미리 사놨어요.
약도 없고 그렇다고 수술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렇게 되면 중환자실에서 조금 더 천천히 갈 뿐이게 되는데...
그러면 엄마 모신 곳에 갈 수가 없으니 우울증이 심해져서 되려 더 빨리 가게 되지 않을까...싶어요.
이건 내과쪽만 진단서를 뗀 건데요...
외과쪽은 저기에 적혀져 있는 것의 두 배 이상이 적혀 나와요 ㅎㅎㅎㅎ...
진단서를 미리 떼놓은 것도...
병사가 아닌 외인사 사망시에 경찰서에서 사정청취? 진술? 뭐 그런 걸 하고 진단서도 제출해야 하더라고요.
평소에 앓던 지병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진단서를 떼가야 하는데...
제가 죽으면 친구가 제 걸 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가는 병원 의사샘한테 미리 얘기해서 떼어놨어요.
내과쪽만 떼어놔도 충분하니까 뭐...
진단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검사 결과같은 걸 보면 항상 통증수치와 염증수치가 각각 정상범위의 몇천배에서 만배가 넘게 나와요.
응급실 실려갈 때마다 듣는 얘기가 '환자분 이러다 언제 급사하실지 몰라요.'인데...
누가 모르나요...근데 뭐 어떻게 하라고...방법이 없는데.
엄마 살아있을 때엔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살았는데.
지금은...해둬야 할 걸 다 하고 났더니 좀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제 언제 가도 불안에 떨며 가지 않아도 된다고...
고맙게도 친구가 해주겠다고 해서...무연고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려지는 상황만은 면하게 됐네요.
진단서 떼면서 검사를 다시 했는데 결과가 더 안좋아졌어요.
엄마가 있을 때엔 53kg를 목표로 서서히 체중을 줄여서 58까지 낮췄었는데...
지금은 70이 넘도록 부어서 살도 다 터지고...검사 결과는...한숨만 나오네요.
투석을 해야 할 상황이긴 한데 투석을 하면 심장에 무리가 가는 아이러니...
친구들은 살 터진 거 보고는 참 걱정을 많이 하네요.
그래도 약 바르고 로션도 꼼꼼히 바르면서 참고 있는 건데...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네요.
나 원래 100lbs도 안넘는다는게 나름의 자랑거리였는데...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몸도 점점 붓고 무거워지고...
먹는 거 가려가면서 물도 최대한 덜 마시면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텨왔는데...
이젠 그마저도 좀 힘드네요...
이제 유서를 써서 항상 들고 다녀야 할텐데...
뭐라 써야 할지 참 난감해요.
emergency card는 명함으로 파서 항상 들고 다니긴 하는데...
가려놓긴 했지만...강심제를 최대치, 이뇨제는 오버해서 쓰고 있고...그 외에도 약들이 한가득...
근데 그나마도 다 적은게 아니라 중요한 것들만 적어놨어요. 카드 사이즈를 넘어가서...
여기엔 사망 시에 부검하지 말아달라던가,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달라던가 그런 얘기는 안써놔서...
부검하면 안그래도 못났는데 더 못나게 되니까...
그래도 다음 생이 있다면 고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다시 아들로 태어나면 못생겼다고 또 예쁨 못받을 것 같아서...
엄마가 좋아할만큼 예쁜 엄마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자살하면 정말 뒷처리 안해줄 녀석들이라서...친구들 말마따나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