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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추석하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 하나 여기

| 조회수 : 17,416 | 추천수 : 8
작성일 : 2019-09-15 23:07:28




추석 때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생까고 완전 개겼습니다.

엄마한데 일이 많아 못 간다고 거짓말하고^^


예전부터 명절 때 미리 돈으로 인사하고 해외로 내뺀 전력이 많아

그저 그런갑다 합니다.

지금이야 돈이 없어, 시간이 없어 못가지

여전히 여행을 기대하고 삽니다.


지난 설에 문득 왜 울아버지 제사를 며느리가 지내지?

올케한데 절에 올리자고 왜 일년에 세 번씩이나 올케가 이 고생을 하는지?

엄니 눈치 보는 올케가 짠했습니다.

그래서 그 꼴 안 보려고 

명절이고 기제사고 안 가야겠다고 불편하고도 편한 다짐을 했습니다. ㅎ


그러면서 소주와 나름 안주를 만들어 마셔주시고^^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어온 소주에 대한 기억를 잠시 해봅니다.


그때는 지역마다 소주가 정해져 있었어요.

서울 - 진로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좀 얄미워 한 소주^^)

부산 - 대선(증류를 가장 거칠 게 한 소주, 거의 마도로스용 소주)

강원도 - 경월 (군인들은 월경이라고 불렀시요)

제주도 - 한라산 (지금도 한라산이 도수 조절해서 나오지만 그 때 그맛은 아니여)

대전 - 선양(젤 니맛도 내맛도 없는 소주)

전라도 - 보해와 보배(맛이 기억이 안나요)

마산 - 금복주(두꺼비 볼 때마다 술 취하면 이렇게 되구나 상상^^)


지금은 전국구이고 대기업에서 통폐합하여 처음처럼(신영복 선생님 글씨입니다)

참이슬 좋은데이 뭐 비슷비슷한 소주들을 생산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진로가 요즘 엄청 잘 팔리는 소주,

진로이즈백 입니다.

초록색 병에서 연파랑으로 디자인도 샐쭉하니 신선합니다.

저의 30년 넘는 소주사에서 가장 맛있는 소주는8~90년대 나온 한라산이고

지금 나오는 것 중에서는 저 진로가 가장 낫습니다.

증류 노하우가 축적됐는지 진로가 잘 만들었어요.


가끔 앞차가 술유통 화물차일 때 음냐

내가 마신 소주가 저 차 몇 대는 되겠군 쩝

그랬습니다. ㅎ






작은 수첩이라고 크기 비유하는 게 겨우 500원짜리 라이타^^

저 수첩은 기억이 마구 새고 있는 50대 후반의 저를 보면서

2천원 주고 산 수첩입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쿤데라 소설 보다 저 수첩에 적은 내용입니다.




하도 글씨를 못 적어 제가 적어 놓고도 못 알아볼 때가 많습니다.

택배가 되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손으로 적은 시절이라 택배아저씨가 글자를 못 알아보는 바람에^^


우울한 긍지

쿤데라식 표현이지요.

2차 대전 때 체코 지식인들이 노동판으로 죄다 몰리면서

나온 표현입니다.

의사 토마스가 유리창닦이로 살아가고

지금 사는 우리의 현실은 아파트 경비원, 주차장 관리, 택배, 택시기사, 가사도우미, 청소부

영역을 구분 안하고 우울한 긍지는 없지만 우울한 자괴감만 남아 있습니다.


빵과 장미, 켄 로치 감독의 영화제목이기도 하지만

프랑스혁명 때 나온 말입니다.


빵은 말대로 생존 조건이고

장미는 문화예술, 인권, 복지 기타 

내 삶에 장미가 있는 한 우울한 긍지는 남아있습니다.

사람은 그려요.


정치가 일상이다.

일상이 정치이다.

이 두 명제를 곰씹어 보면 참 다릅니다.


정치가 일상인 사람은 정치인이고

일상이 정치라는 것은 우리 삶 깊숙하게 파고든 현상을 들어다보면

연결고리가 정치로 이어집니다.


전철역 종점에 다다르면 직원들의 휴식공간이 보입니다.

낡은 소파, 구닥다리 운동기구 그 옆에 빨래가 널려 있고

화장실은 여자남자 구분이 없습니다.

저는 그게 일상이 정치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소주 한 병 마셔주신 날에 들쭉날쭉 수다 떨고 갑니다.


요즘 듣는 음악 중 좀처럼 깔쌈한 걸 못찾아 오늘은 쉬어 갑니다.

여전히 저는 에릭 크랩톤의 행적을 따라 다니고

늦은 밤 노약자석에서 껄렁거리면서 앉아 락과 블루스를 듣는 약자도 노인도 아닌 ㅎ

어중간한 중년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쑥과마눌
    '19.9.16 2:50 AM

    보해소주와 금복주는 기억나네요.
    믿거나 말거나 술을 못 마시는 일인이라,
    쏘주를 사약 보듯하며, 안주만 탐하고 갑니다.
    따뜻할 때 먹는 게 쵝오!

  • 고고
    '19.9.17 12:23 AM

    결국 제가 8~90년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저 소주들을 마셨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 2. Harmony
    '19.9.16 9:22 AM

    알콜을 못하는 저는
    우리나라에 소주종류가 저리 많았는지
    놀라고


    철학서를 하나 읽는듯한 이 충만함^^

    빵보다는 장미가 더 많은

    날들이

    수첩으로 GO GO~~하기를 !!!

  • 고고
    '19.9.17 12:25 AM

    수첩은 아주 유용하게 아날로그로 생각을 전환시켜주는 역할을 잘하고 있어요.

    장미의 나날들은 계속 됩니다. ㅎ

  • 3. ripplet
    '19.9.16 10:55 AM

    금복주는 대구 껍니데이~ 마산은 아마 무학소주일걸요.
    술맛을 모르는 제 혀엔 전부 니맛도 내맛도 없는 알콜인데 소믈리에들에게 저 정도 차이는 빨강과 분홍의 차이만큼 큰 거겠죠? ^^
    키톡에도 빵과 장미는 골고루 필요한 법.
    고고님만의 독보적인 향기가 어린 장미같은 글 늘 감사합니다.

  • 고고
    '19.9.17 12:26 AM

    맞아요, 금복주 상표에 살짝 술취한 뚱땡이 영감님 그림이 기억나요.

    마산은 물좋은 마산하면서 무학소주, 지금은 화이트로 나올 거여요.

    아흐 공부를 이리 열심히 했으면 ㅎㅎㅎ

  • 4. 테디베어
    '19.9.16 11:39 AM

    저도 고고님처럼 멸절과 상관없는 뇨자이고 싶습니다.
    현실은 4대독자 외며느리 ㅠㅠ
    언젠가는 훌훌 여핼할 늙은 나를 기대해 봅니다.

    고고님 글은 언제나 수필 한조각 들여다 보는 느낌입니다.
    싱그러운 가을 하늘처럼 언제나 고고 GOGO~~~

  • 고고
    '19.9.17 12:27 AM

    늙기 전에 자유로우면 더 좋을 터인데 그쵸^^

    오늘 하늘 좋습디다.

  • 5. 행복만땅
    '19.9.16 1:34 PM

    공감 되어지는 글이네요.

    너무 좋은 요즈음 계절에 어울리는 글

    감사합니다. ~~

  • 고고
    '19.9.17 12:28 AM

    사실 자유게시판에 정치가 일상인 분들이 너무 요즘 많아 보여
    살짝 장미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

  • 6. Maple
    '19.9.16 2:33 PM

    진로 이즈백....
    “아, 옛날 맛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저도 좋았어요. 뚜껑을 병따개로 따는것으로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걸 약간 아쉬워요..
    독한거 약간 뺀다며 두꺼비 그림을 손톱으로 약간 까고 먹었던 대학시절 기억이..겨우 반병 ,,네 잔이 주량이면서 누가 들으면 술꾼인줄 알겠어요^^
    사진과 글 내용이 반가워 로그인을 했네요..

  • 고고
    '19.9.17 12:29 AM

    ㅎㅎ
    그 병따개 예전에 숟가락으로 따기도 했어요. ㅎ

    그 두꺼비가 돌아와주니 어찌나 반가운지 ㅎㅎ

    4잔이나 한 빙이나 소주는 늘 친근하지요.

  • 7. 향기로운
    '19.9.16 2:40 PM - 삭제된댓글

    택배가 돌아온에서
    잡채먹다 사례 걸릴뻔 했어요 켁켁
    저와 비슷한 필체도 정겹게 보입니다만
    저도 때로는 제 글을 못 읽어서
    옆으로 봤다가 꺼꾸로 들고 봐도 도통 몰라서
    그럴땐 에이~C 궁시렁거리지요
    그때 그시절에는 깔쌈하다는 표현을 많이 했더랬지요
    건강이 안좋아져서
    이스리가 고파도
    꾹꾹 눌러 참으며 지내다보니
    사는 맛도 영 시들하고
    고고님의 함축된 글 맛이
    목구멍을 짜릿하게 넘어가는 이스리 느낌이라...
    요모조모 돌아가는 세상이 참
    고고님 유유자적 평안한 일상이시기를요^^

  • 고고
    '19.9.17 12:36 AM

    주력이 국력인 시절이였어요. ㅎㅎ

    대학 때 교수들이 제 글자를 못 알아묵어서 학사경고도 받았습니다.
    (출석미달이 더 큰 요인이였지만^^)

    그나마 회사 다닐 때는 컴퓨터가 있어 진급은 겨우 했습니다. ㅎ

  • 8. mtjini
    '19.9.17 11:30 AM

    경주 계실 때부터 읽었는데 많이 배운 노동자이신거 같아요.
    어째 저 두부조차도 소주 안주로 보일까요.
    저도 요즘 진로이즈”백”만 마십니다.
    자꾸 몇 십년이 지난 대학 시절이 떠올라요.
    왠지 팔꿈치로 탁탁 쳐서 마셔야 제 맛이 날거같은..

  • 고고
    '19.9.19 12:12 AM

    죄다 소주 안주입니다.ㅎ

  • 9. 콩콩
    '19.9.17 9:54 PM - 삭제된댓글

    얼마 전 엉뚱하게 소환됐던 백화수복 제조사 백화에서도 댓병(대병이나 됫병은 자장면 같은 것)소주도 나오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내 나이가 어때서~)

    저도 소주 몇방울이 주량인 사람인데요.
    경월만 가물가물하지 저 소주들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건 왜때문일까요? ㅎㅎ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외가댁 부엌에서 봤던 장면들도 떠오르는군요.
    코르크 마개로 막아서 식초병 등등으로 흔히 재활용되기도 했지요.

  • 10. 콩민
    '19.9.18 9:43 AM

    두부와 치즈인가요? ㅎㅎㅎ저렇게 먹어봐야겟네요

  • 고고
    '19.9.19 12:15 AM

    예. 두부 구울 때 치즈 살짝 올린 겁니다.
    가염치즈라 두부에 소금 안 치고.
    강추까지는 아니고 먹을만 합니다.ㅎ

  • 11. 윤양
    '19.9.19 11:15 AM

    고고님, 저에게 삐삐치시지그러혔어요 ^^

    농활가서 마지막 날, 마을 어르신들께서 종이컵에 패트병 보해 소주를 한 컵씩 따라주셔서
    원샷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촴이슬 뢰드캡 좋아하는데, 요 동네는 고고님 드신 저 아이들이 대세더라고요.

  • 12. lana
    '19.9.19 10:58 PM

    고고님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네요.
    저는 대선이 예전부터 있었는지도, 처음처럼이 신영복님 글씨인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올해 봄에 나가서 부산여행 때 처음 대선을 마셔보고 신이 나서 돌아왔더니 그 새 진로이즈백이 출시되었어요.

  • 13. 김언니
    '19.9.28 12:36 PM

    안보고 멋지게 사시는 원글님이 부럽습니다. 이 참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부탁드립니다.
    올케도 해방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의 맘 속에는 실천하지 못하는 (원글님이 맘대로 누리는)
    그런 로망이 있답니다... 하실 수 있는 한 다른이의 자유도 찾아주세요!

  • 14. 김언니
    '19.9.28 12:36 PM

    이꼴 저꼴 안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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