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전에...
ㅎㅎㅎ
작심 삼십일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살을 빼자, 운동을 열심히 하자, 이런 진부하기가 아침 드라마 시어머니 물잔 세례보다 더 진부한 목표를...
그래도 새 해가 되었으니 또 한 번 세워봤습니다.
이제 꺽어진 아흔살이라 살빼서 비키니 입겠다는 목표는 접었구요, 도시락이나마 잘 챙겨먹고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 운동은 열심히 하자! 하고 작심한지 30일이 지난 후의 기록입니다.
도시락의 내용물은 보시다시피 참 소박 - 아니 별볼일 없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학교 식당에서 안사먹고 도시락을 먹으니 과식을 안하게 되는 효과가 참 좋았어요.
지금도 밥 한 덩이에 먹다 남은 반찬, 혹은 냉동실에서 꺼내서 데운 치킨너겟이나 밋볼 같은 걸 싸오더라도 도시락을 챙겨서 출근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거슨...
사과표 시계를 차고 계시는 분이라면 척! 하고 알아볼 수 있는 기록입니다.
초록색 작은 점과 빨간색 동그라미들이 제가 작심 30일을 지켰다는 증거이지요.
그런데 2월이 시작하자마자 바쁘고 아파서 무려 이틀이나 운동을 빼먹었다는 아픔이... ㅠ.ㅠ
이 기록이 무려 재작년부터 (시계를 처음 살 때부터) 남아있는데요, 참 신기하게도 작년 2월 2-4일 동안에도 몹시 아파서 운동을 하나도 못했던 적이 있더라구요.
올해에도 3일과 4일에 운동을 못했는데...
이맘때가 환절기라 아프기 쉬운 시기인가봐요.
지난 설날은 토요일이어서 명왕성에서도 특별한 음식을 해먹을 수가 있었어요.
국제시장에서 파는 태국산 거피녹두를 한 봉지 구입했어요.
김치 냉장고에서 잘 익은 김장김치 좀 꺼내고 돼지고기 잘게 썰어서 김치 빈대떡 해먹으려구요.
하룻밤 불려두니 녹두가 부드러워져서 푸드 프로세서로 아주 곱게 갈렸어요.
예전에는 거피 녹두가 있는 걸 모르고 그냥 녹두를 사다가 불려서 그 껍데기 씻어내느라 한참 씨름했었는데 점점 꾀가 늘어납니다 :-)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들이붓다시피 넉넉하게 두르고 기름냄새 풍기며 지지면...
온 집안에 설날 분위기가 물씬 - 사실은 기름냄새가 ㅎㅎㅎ - 풍겨나지요.
설을 며칠 앞둔 어느날 자유게시판에서 닭고기를 넣은 떡국에 관한 토론을 읽었어요.
처음 발단은 시어머니께서 이런 희안한 떡국을 설마다 끓이시는데 맛도 이상하고 먹고 싶지 않다는 어떤 며느님의 글이었고...
거기에 댓글 중에서 꿩대신 닭 이라는 말의 원조가 바로 이 닭장떡국이다, 하시며 조리법을 알려주시는 분이 나타났더랬죠.
그 설명이 어찌나 설렁설렁 한 듯 하지만 필수요소를 다 갖춘 간결한 것이었는지, 저는 그만 닭장떡국 이라는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만들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ㅎㅎㅎ
이제 아줌마 경력 십 오년이 넘어가니, 생닭을 맨손으로 만지고 썰고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어요.
닭을 잘게 토막내어서 뼈째 사용하는 것이 육수를 우려내는데에 중요한 포인트 같았어요.
찬물에 한 번 우르르 끓여내고
원래는 집에서 담은 간장과 마늘을 넣어야 하지만, 집간장이 없는 사람은 일반 양조간장에 멸치 액젓을 조금 넣어서 요리하라는 조언이 있었으나...
이 불쌍한 명왕성 외계인은 멸치 액젓조차 없어서 냉장고에 그나마 "젓" 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재료를 꺼내서 활용해보았어요.
중간 불에 뭉근하게 30분 정도 끓이면 이렇게 짭조름한 닭장이 만들어집니다.
이게 가만히 살펴보니 간장게장과 원리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간장맛은 심심한데 거기에 감칠맛을 내는 게를 넣든지, 닭은 넣든지, 해서 맛간장을 만드는 거 아니겠어요?
닭장 국물에 물을 더 넣고 육수를 끓이는 동안에 닭고기 살을 잘 발라두었어요.
목구멍에 뼈가 걸리면 곤란한 것은 반려견 뿐만이 아니랍니다 :-)
저희집 반려어린이들도... 쿨럭...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급하게 때려넣고 대충 만두 몇 개 만들고요...
(팁 하나: 만두 속에 넣을 고기를 미리 볶아서 만두를 만들면 만두피만 익을 정도로 한소끔만 끓여도 되어서 국물이 탁해지지 않아요)
냉동실에 있던거라 딱딱한 가래떡은 한 시간 정도 물에 불려두었구요...
닭장국물에 떡과 만두를 넣어 끓인 다음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닭고기살을 고명처럼 얹어주었어요.
이게 원래 남도지방의 음식이라는데, 제가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없고 구경해본 적도 없어서 이렇게 생긴게 맞기나 한지는 모르겠고요... ㅎㅎㅎ
진한 육수 욕심에 닭장을 너무 많이 넣어서 간이 너무 짜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겸손한 제 입맛에는 맛있었어요.
설날 음식이 요것뿐이냐! 하신다면
눼~~~
명왕성의 삶이 다 그렇죠 뭐...
그래도 민망해서 부엌 벽을 찍어봤어요.
제 아들 아이가 어디서 이런 못된 짓을 배워왔는지, 엄마에게 도시락에 쪽지를 써넣어 달래요.
기가 막혀...
코난군네 반에 그렇게 도시락 쪽지를 가져오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엄마는 무슨 병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 장기간 입원중이고, 아빠가 매일 두 아이를 챙기면서 직장도 다니고 엄마 병간호도 하고 그러는데, 아 글쎄 그 아빠가 매일 도시락에 쪽지를 써넣어 준다네요.
온가족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맨날 바쁘다며 신경질만 부려대던 것을 반성했어요.
바쁜 아침마다 해야 할 일 하나가 더 늘어났지만, 학교에서 이걸 읽으며 흐뭇해할 아이를 떠올리며 꾹 참고 열심히 써줬더니 벽 한 면이 거의 다 찼어요.
이제 사진으로 찍어서 증거자료를 남겼으니 새봄맞이 대청소 할 때 쯤이면 다 떼서 버려야겠어요.
손글씨 안예뻐서 죄송함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