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자랑 스파게티를 유난히 좋아하던 여자였다.
1시간이라는 점심시간은 바쁜 직장생활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었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때이면 어김없이 선후배들과 어울려 구내식당이 아닌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쏜살같이
차를 몰고 나가곤 했다.
그리곤, 급하게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고 급하게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내 삶은 그렇게 뭐든 날아가는 것처럼 바쁜 하루하루였다.
한국을 떠나고 직장을 떠나면 바쁜 하루가 느긋한 하루로 바뀔줄 알았던 나는
지금 멀리 타향에서 곤란한(?) 삶을 살고 있다....
한국을 떠나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나 또한 단 2년만에 한국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애국자가 되어있다....
한국은 늘 시끄럽다.
모든 사람들이 분노할 일이 일어나고, 부조리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뉴스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세상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그랬으니까......
나는 곧 귀국할 예정이다. 물론 예정된 귀국이었지만, 다시는 한국을 떠나 살수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살면서 가장 힘은 것은 먹거리였다.
한국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들을 구할 수 없고, 먹을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릴 적 엄마 없이 외사촌 오빠와 함께
혼자 시골 외가에 가면 나를 맞이하는 큰외숙모와 큰 이모는 끼니때마다 고민하곤 하셨다.
도시에서 온 질녀에게 어떤 반찬을 해먹어야 하는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외가집 밥이 늘 맛이 있었다. 일주일씩 머물면서 나는 늘 배불러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나는 건 별로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딱 하루 저녁의 메뉴는 정확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날 이후 나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엄마에게 늘 같은 반찬을 해달라고 조르곤 했으니까....
그 날 저녁은 나보다 11살이나 나이가 많은 이종오빠와 우물가에서 연을 따 먹고 돌아온 날이었다.
노을이 저물어가던 여름 저녁, 마당 큰 평상위에 상을 봐 놓으시고 우리를 부르는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와 나는 방에서 파리잡기 놀이를 그만두고 같이 밖으로 나갔는데 모기불 냄새가 내겐 참 그윽하게 느껴졌다.
상은 너무나 소박했다. 된장찌개에 찐 호박잎, 그리고 다른 반찬도 분명 몇가지 있었으리라....
이모는 내게 먹을 줄 아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고, 이모는 찐 호박잎에 밥을 얹고
된장을 한 숟가락 퍼 올리더니 쌈을 싸 내게 "아"하고 입을 벌리라고 했다.
어린 내겐 참으로 큰 쌈이었다. 어른 밥숟가락으로 얹은 밥의 양이란 것이.....
입을 있는대로 벌렸는데도 억지로 들어갈만큼 큰 쌈을 나는 우적우적 씹었다.
온 입안에 된장찌개 국물이 그득하더니 입 밖으로 삐죽삐죽 흘러나와 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쌈이 참으로 기막히게 맛이 있더라.
이모는 내 입가로 흐르는 국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천천히 먹어라고 했다.
나는 연신 맛있다고 또 싸줘 또....하면서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리고, 한그릇을 더 먹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이모가 해준 그 된장찌개에 풀잎을 해달라고 엄마에게 졸랐다.
엄마는 그날 이후 호박잎이 나오는 시기만 되면 호박잎을 쪄 국물이 줄줄 흐를만큼 큰 쌈을 싸서
내 잎에 넣어주시곤 하셨다.
아마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는 친정에서 호박잎 반찬이 나오면 엄마에게 호박잎 쌈을 싸 달라고 했던 것 같다.
호박잎을 내가 싸 먹는 것보다 엄마가 싸주는 게 더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모가 싸준 그 호박잎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사 드는건 뭘까??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가면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에 찐 호박잎을 꼭 먹으리......
여기서 굶주린 내 배를 호박잎 쌈으로 메꿔야겠다.
아~ 빨리 엄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