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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 멀리 타향에서 생각나는....

| 조회수 : 9,806 | 추천수 : 2
작성일 : 2014-11-16 01:42:30

나는 피자랑 스파게티를 유난히 좋아하던 여자였다.

1시간이라는 점심시간은 바쁜 직장생활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었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때이면 어김없이 선후배들과 어울려 구내식당이 아닌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쏜살같이

차를 몰고 나가곤 했다. 

그리곤, 급하게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고 급하게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내 삶은 그렇게 뭐든 날아가는 것처럼 바쁜 하루하루였다.

 

한국을 떠나고 직장을 떠나면 바쁜 하루가 느긋한 하루로 바뀔줄 알았던 나는

지금 멀리 타향에서 곤란한(?) 삶을 살고 있다....

한국을 떠나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나 또한 단 2년만에 한국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애국자가 되어있다....

 

한국은 늘 시끄럽다. 

모든 사람들이 분노할 일이 일어나고, 부조리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뉴스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세상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그랬으니까......

나는 곧 귀국할 예정이다.  물론 예정된 귀국이었지만, 다시는 한국을 떠나 살수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살면서 가장 힘은 것은 먹거리였다.

한국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들을 구할 수 없고, 먹을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릴 적 엄마 없이 외사촌 오빠와 함께

혼자 시골 외가에 가면 나를 맞이하는 큰외숙모와 큰 이모는 끼니때마다 고민하곤 하셨다.

도시에서 온 질녀에게 어떤 반찬을 해먹어야 하는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외가집 밥이 늘 맛이 있었다.  일주일씩 머물면서 나는 늘 배불러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나는 건 별로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딱 하루 저녁의 메뉴는 정확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날 이후 나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엄마에게 늘 같은 반찬을 해달라고 조르곤 했으니까....

 

그 날 저녁은 나보다 11살이나 나이가 많은 이종오빠와 우물가에서 연을 따 먹고 돌아온 날이었다.

노을이 저물어가던 여름 저녁, 마당 큰 평상위에 상을 봐 놓으시고 우리를 부르는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와 나는 방에서 파리잡기 놀이를 그만두고 같이 밖으로 나갔는데 모기불 냄새가 내겐 참 그윽하게 느껴졌다.

상은 너무나 소박했다.  된장찌개에 찐 호박잎, 그리고 다른 반찬도 분명 몇가지 있었으리라....

이모는 내게 먹을 줄 아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고, 이모는 찐 호박잎에 밥을 얹고

된장을 한 숟가락 퍼 올리더니 쌈을 싸 내게 "아"하고 입을 벌리라고 했다.

어린 내겐 참으로 큰 쌈이었다.  어른 밥숟가락으로 얹은 밥의 양이란 것이.....

입을 있는대로 벌렸는데도 억지로 들어갈만큼 큰 쌈을 나는 우적우적 씹었다.

온 입안에 된장찌개 국물이 그득하더니 입 밖으로 삐죽삐죽 흘러나와 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쌈이 참으로 기막히게 맛이 있더라.

이모는 내 입가로 흐르는 국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천천히 먹어라고 했다.

나는 연신 맛있다고 또 싸줘 또....하면서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리고, 한그릇을 더 먹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이모가 해준 그 된장찌개에 풀잎을 해달라고 엄마에게 졸랐다.

엄마는 그날 이후 호박잎이 나오는 시기만 되면 호박잎을 쪄 국물이 줄줄 흐를만큼 큰 쌈을 싸서

내 잎에 넣어주시곤 하셨다.

아마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나는 친정에서 호박잎 반찬이 나오면 엄마에게 호박잎 쌈을 싸 달라고 했던 것 같다.

호박잎을 내가 싸 먹는 것보다 엄마가 싸주는 게 더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모가 싸준 그 호박잎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사 드는건 뭘까??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가면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에 찐 호박잎을 꼭 먹으리......

여기서 굶주린 내 배를 호박잎 쌈으로 메꿔야겠다.

아~ 빨리 엄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kunsthalle
    '14.11.16 6:44 AM

    저희집에선 엄마만 먹는 호박잎. 아빠는 소나 먹는 걸 사람이 왜 먹냐고 한 소리.ㅎㅎ외국서 그리운 한국음식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 길거리 떡볶이, 김치국, 콩나물같은 아주 소박한 혹은 흔한 것들이더라구요. ^^

  • 초록공주
    '14.11.17 12:23 AM

    네...진짜 떡볶이, 비빔국수, 순대국 이런거 넘 먹고 싶어요~~

  • 2. 작은발
    '14.11.16 8:14 AM - 삭제된댓글

    이 글을 읽으니,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 나네요..ㅠㅠ

    나이가 드디, 짧은 해외여행만 가도, 집밥이 그리울 지경인데, 외국에 사시는 분들은 더 하겠죠.

    돌아오셔서, 맛있는 음식 많이 드세요~^^

  • 초록공주
    '14.11.17 12:25 AM

    한국 떠난 첫해에는 보리차 끓이면서 눈물 한바가지 흘렸더랬어요....ㅎㅎ..... 맛난거 그냥 막 먹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는 거....꼭 아셨음해요~~~

  • 3. 꼭대기
    '14.11.16 4:33 PM

    아 그렇군요 우리 아파트앞에 어떤분이 호박을 심었는데. 잔디깍는분이. 싹 밀어버렸어요. 그러나 이 호박이 얼마나 지독한지 다시 중간중간 끝어진 줄기가 다시 뿌리를 내리더니. 더 탐스럽게. 나온것을 지나가는 아저씨 아짐씨 와서 한줌씩 잘라가는것을 보고 옛날에 먹어본 사람들이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아저씨가 다 와서 잘라갈까 보고있었죠 그런 추억이 있군요. 아직 호박잎 팔아요 얼른와서 많이 드시와요

  • 초록공주
    '14.11.17 12:26 AM

    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얼릉 가고 싶어요....ㅎㅎ 깻잎도 먹고 싶고....ㅎㅎㅎ

  • 4. 홀리
    '14.11.17 6:03 AM

    같은 재료에 같은 음식을 먹어도
    엄마가 손수 입에 넣어주시는 음식은
    맛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온기가, 그리고 체취가 있어서이지 싶어요.
    저도 엄마가 직접 입에 넣어주시는 음식은
    음식의 이름이나 재료보다는 그저 '엄마'로 기억되곤 해요.
    초록공주님께 호박쌈은 아마도
    이모와 엄마의 온기와 체취가 함께 녹아있어서 더 맛있고 소중하게 기억되지 않나 싶네요.

    밥상 앞에서 엄마가 "아~" 하는 말에 입을 벌려본 것이 실로 까마득하네요.
    새삼 그리워요~^^

  • 5. 시나몬
    '14.11.17 10:36 AM

    저도 여름이면 엄마가 늘 해주시던 호박잎,깻잎,우엉잎...잊을수가 없어요.
    이젠 결혼해서 더운 계절이 돌아오면 제가 사서 쪄서 제 엄마처럼 딸에게 먹이지만 엄마의 맛은 아니예요.
    가끔 친정에서 호박잎이 상에 올라오면 몇장씩 욕심껏 손에 올려서 자작하게 끓인 매운 된장찌게 듬뿍 얹어서 싸먹어요.
    또 하나...우리집 여자들에게만 사람받는 음식이 뼈 있는 닭발이예요.
    엄마...저...딸...이렇게 세 여자가 너무나 좋아하는 우리집 내림음식..이라고나 할까요.
    꼭 뼈가 있는걸로 매콤하게 요리해서 위생장갑 낀 손에 하나씩 들고 맛있게 먹어요.
    우리동네에는 안팔고 차 타고 재래시장에 가야 사 올수 있는거라 제가 시장에 간다고 하면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닭발 꼭 사와서 요리해달라고 부탁해요.

  • 6. 맛탕
    '14.11.17 1:04 PM

    저두요 저두 제일 좋아하는게 호박잎쌈이에요 할머니가 그 무렵쯤 해주던 음식이였거든요
    결혼하려고 처음 시댁에 가는 날 어머님이 머 먹고 싶냐고 물으셔서 저 호박잎 무지 좋아해요
    했더니 어머님이 어리고 어린 잎만 골라 호박잎쪄서 밥상 주셨는데 어머님 앞인데도 정말 맛나게
    쌈싸서 먹은 기억이 있네요 ^^ 진짜 맛나요

  • 7. 동구리
    '14.11.18 4:12 PM

    호박잎도 쌈싸서 먹고 얼가리도 데쳐서 쌈사서 먹고..

    대부분 반찬이 되는 잎은 쌈으로 먹는걸 참 좋아했어요 저도..

    먹고 싶네요.. 된장이랑 호박잎 ^^

  • 8. 소소한기쁨
    '14.11.20 8:49 AM

    가족이 여름에 마루에 빙들러 앉아 깻잎 쪄서 강된장이랑 쌈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같이 먹어서 더 좋았나봐요.

  • 9. sweetie
    '14.11.27 2:10 PM

    저도 타향살이 하고 있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있네요.
    귀국하시면 된장찌개에 호박잎외 그동안 못드신 음식들 다 맛나게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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