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삼십 년 된 압력솥과 어머니

| 조회수 : 18,228 | 추천수 : 5
작성일 : 2013-08-16 05:44:23

 


‘칙칙’ 압력추가 돈다. 여든 어머니가 삽 십 년도 넘은 압력솥에 콩, 현미, 쌀, 조, 보리 등을 넣고 밥을 지으신다. 모처럼 집에 온 타향살이 아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훈훈한 정이 서린 솥에 밥을 안치신다 어머니는 다 큰 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려 하고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아들은 어머니 나이 드신 것을 모른 체 한다.

 

 

어머니에게 가면 살이 찐다. 어머니는 살 빼라 하시면서도 제 입맛에 맞는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아들이 오면 자갈치 시장 가셔서 장을 봐 온다. 생선회도 사와 상에 올려 주시고 생선도 굽고 멍게, 오징어 초밥도 만들어 주신다. 사 십년 훨씬 전에도 집에서 초밥을 먹었는데 분가 후에는 집에서 한 번도 초밥을 먹은 적이 없다. 어머니는 자식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해 주셨고 아내는 바쁘다는 이유로 제 자식 좋아하는 것만 챙기나 보다.


 

집에 처음 압력솥이 들어 온 시기는 내가 군에 있을 때 같다. 군 입대 전까지는 연탄으로 밥을 해 먹었는데 휴가 오니까 가스레인지가 있었으니까. 가스를 처음 켤 때 폭발할 것 같은 느낌에 매우 긴장했기 때문에 기억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압력솥은 여동생이 고등학교 때 받은 세뱃돈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한 이만 삼 천 원 짜리란다. 어머니 부탁으로 손잡이와 패킹을 갈려고 서비스 센터에 간 적이 있다. 오래 전 일이다. 도로변 2층인가 3층인가에 서비스 센터라는 간판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건물이 번듯하지는 않았다. 대신 장인 느낌이 나는 분이 믿음직하게 설명해 주던 기억이 있다.

그 뒤 몇 번이나 부품을 가셨을까?

‘밥심으로 산다.’고 하듯 압력솥으로 지은 밥을 먹으면 힘이 솟았다. 압력솥에서 갓 나온 쫀득하고 찰진 밥은 반찬 없이도 목에 술술 넘어갔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압력솥으로 갖은 음식을 하셨다. 인삼 달이고, 약물도 고우고 갈비찜 하고 감자도 삶고 고구마 찌고, 마른 나물과 무청 삶기 등등,

 

어머니의 압력솥 고백을 들었다. 탈 없는 압력솥이 지겨워 전기 압력솥으로 바꾸셨는데 전기압력솥이 생각보다 불편하더란다. 편할 것 같은데 아니 그랬다고, 밥맛도 훨씬 못하고.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네 집에서 쓰는 전기압력솥이 그것이야.” 분가한 아들이 제때 챙겨먹지 못할 것 같아 주신 줄 알았는데. 참 오래도 썼다. “탈난 적이 있었는데 네가 서비스센터에 가져가 수리해 주지 않았냐.”고 하신다. 패킹과 손잡이 교환한 거요. 그때가 언제 적 이야긴데.

무심한 아들은 때로 압력솥을 보고 낡았다는 생각에 바꿔주려고 얘기 드렸더니 “이 압력솥이 제일 좋더라.”며 한사코 거절하신다. 자식 부담을 덜어 주려고 그러시나 아니면 손에 익어 그러시나? 이럴 때는 어머니의 속내를 모르겠다. 부모는 아들 마음을 단박에 읽을 텐데. 손에 익어 그럴 것이라 생각하련다.

부지런한 어머니가 반질반질 닦아 윤이 나는 압력솥은 삼십 년 이상을 물불과 씨름해 추도 부상을 입었지만 역전의 노장다운 풍모를 지닌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압력솥을 이렇게 오래 쓰면 제조회사는 뭐 먹고 사나?

또 다시 압력추가 돌며 구수한 냄새가 난다. 어머니는 미처 잠이 덜 깬 나를 부르시리라 “밥 먹자”  

2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오늘
    '13.8.16 5:52 AM

    마우스 내리면서 이 밥솥 풍년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풍년이군요.
    다음번엔,어머님이 차려 주시는 밥상도 올려주세요^^

  • 오빠야
    '13.8.16 11:40 AM

    어머니가 이 글을 보시면 부끄러워 하실 겁니다.

  • 2. 조아요
    '13.8.16 5:57 AM

    어쩐지 흰쌀밥에 감자나 고구마가 올라앉아 있을것같은 느낌의 솥이예요^_^

  • 오빠야
    '13.8.16 11:41 AM

    솥이 구수하게 생겼죠? ㅎ

  • 3. 산처럼
    '13.8.16 6:02 AM

    먼곳에 계신 엄마생각이 나서 울컥합니다...

  • 오빠야
    '13.8.16 11:41 AM

    부모는 자식 생각 자식은 부모 생각하며 사는 겁니다.

  • 4. morning
    '13.8.16 6:13 AM

    십년 쓰면 많이 썼다고, 멀쩡해도 바꾸고 싶어하는 요즘 저희들 세대에 좋은 본보기가 되는 글이네요.
    저희 친정에 가도 아직 저 압력밥솥 있답니다.
    한편의 수필을 읽는 기분으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오빠야
    '13.8.16 11:42 AM

    아직도 잘 사용하는 집이 꽤 된다고 합니다.
    알뜰주부 만세. ㅎ

  • 5. 별심기
    '13.8.16 8:39 AM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정감있네요

  • 오빠야
    '13.8.16 11:43 AM

    이 솥이 백년 지나면 골동품되고 또 백년 지나면 문화재 되고
    또 수 백 년 지나면 보물이 되는 겁니다. ㅎ

  • 6. 파란섬
    '13.8.16 10:25 AM

    저 밥솥..저희집에서도 어머니가 쓰셨었는데..

    잔잔한 수필같은 글을 잃어내리면서.. 마음도 함께 차분해지며..
    저 압력밥솥에 닭찜이며,맛난 밥을 지어주시던 어머니의 옛기억을 더듬게 되네요..^^

    기분 좋은 하루 입니다..

  • 오빠야
    '13.8.16 11:44 AM

    솥보고 어머니에게 못해 드린 것 생각나시죠?
    전화해 드리세요.
    "어머니가 쓰시던 압력솥 봤어요?"

  • 7. 탱고레슨
    '13.8.16 10:45 AM

    정갈한 살림솜씨가 묻어나는 사진입니다..
    압력솥 하나가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네요.
    요리 에세이 같은 포스팅. 제맘을 쨍하게 울립니다
    넘귀한 압력솥이에요^^

  • 오빠야
    '13.8.16 11:45 AM

    어머니가 워낙 깔끔하십니다.

  • 8. 오후에
    '13.8.16 11:00 AM

    어머니...

    저 압력솥에 많은 것들이 담겼으리라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 오빠야
    '13.8.16 11:47 AM

    우리 집안의 역사가 담겼을 겁니다.

  • 9. huhu
    '13.8.16 11:01 AM

    가을이 오는 길목에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세뱃돈을 아낌없이 내어 사준 여동생이나
    아들인데도 이렇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계신 자식을 둔 부모님은 얼마나 행복하실까
    잠시 미소짓고 갑니다
    아주 정이 많은 가족 같습니다^^

  • 오빠야
    '13.8.16 11:48 AM

    제 여동생이 효녀입니다.
    제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 10. 둥이모친
    '13.8.16 12:15 PM

    위의 밥솥은 저희 시어머님이 가지고 계시고
    아래꺼는 제가 가지고 있는거네요.ㅎㅎ
    깨끗이 닦여진 밥솥보니 왜케 부끄러울까요?ㅎㅎ

  • 오빠야
    '13.8.18 7:28 AM

    헉 죄송합니다.
    같은 솥 다른 조명빨. ^^

  • 11. 아베끄차차
    '13.8.17 5:12 AM

    저희집에도 이 압력솥있어요^^
    제가 초등학교때 샀으니 20년쯤 쓴거같은데 아직도 종종 사용해지더라고요-
    예전에 엄마가 여기에 아침밥해서 밥상차려주시던 생각나네요.
    덕분에 오랜만에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났어요:)

  • 오빠야
    '13.8.18 7:28 AM

    저도 이 솥을 보면 옛날 옹기종기 모여 살던 때가 생각나 행복해 집니다. ^&^

  • 12. bistro
    '13.8.17 10:37 AM

    좋은 글이라 세 번 읽었어요. 집안의 보물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탐이 나는 압력솥이네요. ^^

    제조회사는 저렇게 압력솥을 잘 만들어 이름이 났으니 걱정 안하셔도 되구요^^;

  • 오빠야
    '13.8.18 7:29 AM

    제조회사도 대단하죠?
    아 보물이군요. 감사합니다.

  • 13. 박카스2
    '13.8.18 7:06 PM

    좋은글 잘봤습니다.
    풍년압력솥...우리집에도 20년된 풍년스텐압력솥 사용하고 있는데 결혼초에 사서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 고스란히 같이하고 있네요.

  • 오빠야
    '13.8.19 7:21 AM

    옛날 나이론 양말 같습니다.
    헤지지 않아 지겨워서 못 신었다던. ㅎㅎ

  • 14. 걸어서갈거야
    '13.8.22 5:25 AM

    잘 읽었습니다..

    국민 압력솥 바로 풍년, 추 달린 압력솥인데,
    언젠가부터 물건너온 외제들이 넘쳐 나네요.

    5학년때까지 살던 공무원 임대 아파트 단지엔,
    저녁 6시만 되면 압력솥 딸랑 거리는 소리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었지요..

    그 애들 중 하나, 장성해서, 어머니께 자랑스레 독일제 압력솥을 선물했는데,
    소리없이 증기로 올라오는 신식? 압력밭솥이 싫다 하시던 어머니..
    그 무겁고 시끄럽고 무식하게만 생겨먹은 오래된 압력솥은 제발 좀 버리라고,
    그런 어머니의 역사?를 이해하기 싫었던, 철 덜 든 딸..

    오늘 새삼 어머니를 멀리서 늦게도 이해하게 됐네요...압력솥 사진보고 눈물이 다 납니다.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당신은, 멋진 사람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087 맛있게 먹고 살았던 9월과 10월의 코코몽 이야기 코코몽 2024.11.22 247 0
41086 82에서 추천해주신행복 33 ··· 2024.11.18 7,899 4
41085 50대 수영 배우기 + 반찬 몇가지 28 Alison 2024.11.12 11,381 5
41084 가을 반찬 21 이호례 2024.11.11 9,222 2
41083 올핸 무를 사야 할까봐요 ^^; 10 필로소피아 2024.11.11 7,348 2
41082 이토록 사소한 행복 35 백만순이 2024.11.10 7,920 2
41081 177차 봉사후기 및 공지) 2024년 10월 분식세트= 어 김.. 12 행복나눔미소 2024.11.08 3,221 4
41080 바야흐로 김장철 10 꽃게 2024.11.08 5,331 2
41079 깊어가는 가을 18 메이그린 2024.11.04 9,674 4
41078 드라마와 영화속 음식 따라하기 25 차이윈 2024.11.04 8,248 6
41077 아우 한우 너무 맛있네요.. 9 라일락꽃향기 2024.10.31 7,268 2
41076 똑똑 .... 가을이 다 가기전에 찾아왔어예 30 주니엄마 2024.10.29 9,891 6
41075 10월 먹고사는 이야기 12 모하나 2024.10.29 7,095 2
41074 무장비 베이킹…호두크랜베리빵… 12 은초롱 2024.10.28 6,442 5
41073 오랜만이네요~~ 6 김명진 2024.10.28 6,102 3
41072 혼저 합니다~ 17 필로소피아 2024.10.26 6,103 4
41071 이탈리아 여행에서 먹은 것들(와이너리와 식자재) 24 방구석요정 2024.10.26 5,044 3
41070 오늘은 친정엄마, 그리고 장기요양제도 18 꽃게 2024.10.22 9,981 4
41069 무장비 베이킹…소프트 바게트 구워봤어요 14 은초롱 2024.10.22 5,601 2
41068 만들어 맛있었던 음식들 40 ··· 2024.10.22 8,421 5
41067 캠핑 독립 +브라질 치즈빵 40 Alison 2024.10.21 5,968 7
41066 호박파이랑 사과파이중에 저는 사과파이요 11 602호 2024.10.20 3,429 2
41065 어머니 점심, 그리고 요양원 이야기 33 꽃게 2024.10.20 6,151 6
41064 고기 가득 만두 (테니스 이야기도...) 17 항상감사 2024.10.20 4,103 4
41063 오늘 아침 미니 오븐에 구운 빵 14 은초롱 2024.10.16 7,783 2
41062 여전한 백수 25 고고 2024.10.15 7,420 4
41061 과일에 진심인 사람의 과일밥상 24 18층여자 2024.10.15 8,379 3
41060 요리조아 18 영도댁 2024.10.15 5,449 3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