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손이 고생하는 마실거리.

| 조회수 : 5,818 | 추천수 : 5
작성일 : 2012-06-11 14:45:25

이 일을 고생이라 써 놓고는 사실 겸연쩍습니다.

누가 하라고 강제로 시킨적이 절대로 없었으니까요.

저녁에 식구들 잠들고  집 둘러보며 치우면서 현관 신발들 가지런히 정리하면  

주부의 일과는 여기서  퇴근시간입니다.

대략 1시가 넘기가 일쑤이지요.

그 시각에 꼭 잊지 않고 하는 마무리가 있으니 콩 담가놓기입니다.

많이 담갔다가 여러날 쓰기도 하지만 맛이 덜하기에 담날 쓸만큼 씻어 담급니다.

오전에 일이 대강 끝나면 불린 콩껍질 벗겨내고 비릿하지 않을만큼 삶아서

적당한 물을 더해서 곱게 갈아서 삶아둔 베보자기로 꼭 짜서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식구들은 들락거리며 물을 찾기도 하지만 콩국(우린 이런 이름)을 마시기도 하고

미숫가루 섞어서 헛헛할 때 얼음 띄워서 마시기도 하고 시어른들은 낮에

칼국수 삶아서 콩국수 해 드리기도 하구요.

나오는 비지도 만만찮은데 풋고추나 뭐 있는대로 보태서 전을 해 드리면

든든하다고 하시고 비지찌개도 해 먹고 몰래(!) 버린적도 있고요.

망구이신 저희 시부모님께선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신 것 같다고 늘상 말씀을 하셨어요.

가끔 친구분들 오시면 국수나 먹자~~ 하셨지요.

밀반죽 많이 해서 밀어서 냉동실에 떨어지지 않았어요.

물 끓는 동안 얼렸던 반죽 녹여서 곱게 썰어서 콩국수 해 드리면 식사 준비도

수월했지요.가을이면 시골 친구에게 서리태와 메주콩 사는 일이 연중행사.

서리태로 콩국을 내면 파르스름한게 아주 맛있어 보인다시며 잘 잡수셨어요.

요즘은 담그는 콩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잡수시던 어른들께서 3년전에 그리고 지난해에 떠나셨거든요.

동갑이시던 어머님이 앞서시고 2년 후에 93세이신 아버님께서 ....

남편은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방문을 열어봅니다.

이젠 피아노방이 되었지만 사진이며 커튼이며 그대로인 방을요.

몸이 편해져도 편치 않은게 30년 시집살이 덕분이겠지요?

아침에 바쁜 남편 미숫가루 달랄때면 바로 콩 곱게 갈아서(걸르지 않고) 타주면 든든하고

맛있다고 마십니다.콩국물에 타면 꿀 설탕 안넣고 해도 되거든요.

콩국 매일해요 ... 라고 만 쓰려다가 왜 신파로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참 저는 콩국을 안먹어요.아니 원래 콩을 못먹습니다.

콩이면 땅콩도 싫어하거든요.

근데 식구들 아무도 모릅니다.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나그네인생
    '12.6.11 3:57 PM

    으앙~~~~ 마지막 큰 반전 ㅠㅠ

  • 2. 덤이다
    '12.6.11 4:14 PM

    여름에 한두번 해먹기도 귀찮아 나가 사 먹는편인데..
    애 많이 쓰셨네요, 제목대로 손이 고생하는 마실거리 맞아요.
    포스팅 읽고서 바로 다른글로 못 넘어가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 3. 코로
    '12.6.11 4:14 PM

    반전이 슬프게 해요..

  • 4. 자두가좋아
    '12.6.11 5:00 PM

    ㅜㅜ 슬퍼요.. 정말 존경스럽네요. 얼마나 곱디 고운분이실지 요즘같은 세상에.. 복 받으실 거에요~
    그래도 이제는 해든곳님이 좋아하는 음식도 해드세요~~전혀 못드시는 콩 말고..

  • 5. shyiny
    '12.6.11 11:21 PM

    아름다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수고롭게 일해서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으로 주위를 이롭게 하는 모습이
    마치 피어나는 꽃잎 같습니다.
    잡숫지 못하는 음식이지만 사랑하는 분들이 좋아하시니 계속 해 주시는 거죠.
    코가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해가 지고 또 새 계절이 와도 수십 년을 피고 지는 꽃나무같이 한결같이 고운 분이세요.

  • 6. 고독은 나의 힘
    '12.6.12 7:55 AM

    진짜 마지막에 코끝이 찡한 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콩을 싫어하시는데도 30년 넘게 매일같이 콩을 불리시고 삶아서 대접하신 그 마음.. 진짜 코끝이 찡합니다.

  • 7. 바이어스
    '12.6.12 2:10 PM

    ㅠㅠ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저도 결혼전에는 몰랐거든요. 엄마가 음식을 해주시는 마음을요.

  • 8. 해든곳
    '12.6.12 5:30 PM

    어머나 어쩌면 좋아요!
    댓글 달아 주신분들 고맙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가 여러분들께 어리광을 부렸다 싶군요.
    워낙 노인이시라 젊은이 음식과는 다르게 소화와 영양에
    신경을 쓰다보니 콩으로 만든 음식을 많이 드렸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도 꼭 해 먹겠습니다.

  • 9. 내이름은룰라
    '12.6.13 2:16 PM

    흐엉... 콩이면 땅콩도 싫어하신다는 해든곳님

    참 결혼 11년차인 아줌이 된 저
    많이 반성하고 갑니다

    저...



    전요... 콩국 참 좋아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36251 성게알 비빔밥 16 어부현종 2012.06.13 9,190 4
36250 떠나는 자와 남는 자를 위한 점심식사. 42 무명씨는밴여사 2012.06.13 14,433 4
36249 진정한 1식 3찬과 벗을 위한 저녁 밥상 49 깍뚜기 2012.06.12 11,954 4
36248 묵은지 야채말이쌈 13 hjo라라 2012.06.12 6,422 0
36247 [밥상수첩] 2012년6월12일 아침상 4 2012.06.12 4,729 1
36246 허접한~ 내맘대로의 수제핸드드립 커피 만들기^^ 7 제주/안나돌리 2012.06.12 6,614 1
36245 초1의 레시피 & 점심초대 42 LittleStar 2012.06.12 18,234 12
36244 따라쟁이의 치아바타 만들기 8 노티 2012.06.12 7,923 5
36243 키톡데뷔) 오징어 버터구이 6 싱글라이프 2012.06.12 6,293 1
36242 도토리묵 구제하기^^ 7 셀라 2012.06.12 5,763 0
36241 [우리집 별미 음료] 아이스 꿀 더치 커피 11 형제생꿀 2012.06.12 6,950 1
36240 쉽고 맛있는 불란서 전채 요리 18 janoks 2012.06.12 9,953 6
36239 매콤한 낙지볶음으로 주말 식탁을... 3 크리스틴 2012.06.11 7,871 1
36238 저 지금 눈물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음식.. 92 나우루 2012.06.11 23,781 9
36237 생각이 많아 머리가 무거울땐... 16 알토란 2012.06.11 9,633 2
36236 [팥빙수만들기] 직접 팥빙수 팥 만들기~ 49 아베끄차차 2012.06.11 43,312 4
36235 여름이예요 12 오지의마법사 2012.06.11 4,931 1
36234 오이지 쉽게 담그는 법 35 7530 2012.06.11 19,525 3
36233 손이 고생하는 마실거리. 10 해든곳 2012.06.11 5,818 5
36232 여름음료 - 아이스애플티 5 berryberry 2012.06.11 5,502 1
36231 밀감나무 아래에서 마시는 차 한잔^^ 9 제주/안나돌리 2012.06.11 5,416 2
36230 친구에게 해주는 밥, 잡채와 마약김밥 10 딩딩 2012.06.11 12,806 1
36229 해먹을 땐 잘해먹어야한다람쥐 38 맛좋은크래미 2012.06.11 13,060 6
36228 갈치조림 만들기 14 크리스틴 2012.06.11 10,267 1
36227 시아버지 생신 상차림... 58 아짱 2012.06.10 28,867 8
36226 시나몬롤로 일요일 브런치를 3 rimi 2012.06.10 6,334 0
36225 여름음료 2222 3 birome 2012.06.10 6,864 1
36224 5월의 아침 밥상 7 겨울애상 2012.06.10 9,05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