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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비세스왕의 재판2 : <13계단>

프리댄서 조회수 : 550
작성일 : 2009-10-22 22:10:15
여기, 한 명의 교도관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특수 업무’를 수행할 후보자로 지명이 돼요. 후보자들은 모두가 ‘평소 직무 수행 능력이 특히 우수한 자. 본인에게 지병이 없고 가족 중에도 환자가 없는 자. 부인이 임신 중이지 않은 자. 상중에 해당되지 않는 자....’라는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수행해야 할 ‘특수 업무’란 다름이 아니라 ‘사형 집행’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사형집행인으로 ‘발탁’된 교도관 난고는 업무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기가 수행해야 할 ‘특수 업무’ 적용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기로 합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신상대장을 열람했더니, 죽어 마땅한 놈이었습니다. 유아 두 명을 강간한 뒤 바위조각으로 머리를 내리쳐서 살해한, 한마디로 ‘조두순 같은 놈’이었으니까요. 난고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자부심마저 느낍니다. 나는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 자부심을 안고 사형집행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형 리허설’에서부터 묘하게 흘러가버리죠. 세상에, ‘사형 리허설’이라는 게 있는 줄 몰랐던 난고 앞에, 그래서 크게 당황하고 있는 그 집행관 앞에 형장으로 끌려온 사형수가 돌연 무릎을 꿇고는 난 안 죽였다고, 그러니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거였습니다. 난고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머릿속으로 그 놈이 저지른 만행을 떠올려도 보고 응보주의 형벌을 사상적으로 지원해준 칸트의 말을 되새겨 보기도 합니다. 절대 응보야말로 형벌의 근본이념이요, 정의다... 시민사회가 해산되어 세계가 멸망하는 최후의 순간에도 살인자는 처형당해야만 한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난고는 어쨌든 실수하지 않고 ‘특수 업무’를 진행시키는 단추를 무사히 눌렀습니다. 일본은 우리처럼(아니, 우리가 일본처럼?) 교수형을 사형방식으로 채택하고 있죠. 따라서 집행 단추를 누르자 ‘밧줄이 팽팽해짐과 동시에 숨이 막히는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끼익끼익 줄이 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들이 잦아들면, 사형수의 숨도 끊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형집행인의 업무에는 그걸 확인해야 하는 부분도 들어있었습니다. 사형이란 간단하게 말해 ‘죽이라’는 명령이고, 집행인은 그 명령을 확실하게 집행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난고는 사형수가 ‘확실히’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알코올로 씻긴 사형수의 유해’곁으로 다가가 그것을 덮고 있는 하얀 천을 걷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뭔가가 발치로 툭, 하고 떨어졌어요. 교수(絞首)당할 때 잘려나간 사형수의 혀끝이었죠.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사형수의 ‘튀어나온 두 눈과 낙하의 충격으로 15센티미터 정도 쭉 늘어난 목’이 드러났습니다. 난고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죠. 이것이 정의의 실현인가? 하지만 사형수는 확실하게 죽은 것이 분명했고 난고는 혼란을 갈무리하여 ‘확실하게 죽은’ 사형수의 유해가 시체안치소에 도착하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그 일까지 해야 비로소 게임 오버, 난고가 참여했던 ‘특수 업무’가 완료되는 것이었죠. 그러고 나면 난고 앞에는 특근 수당 2만 엔이 떨어집니다. 형장에서 있었던 일은 결코 입 밖에 내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사실 사형제에 대한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은 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을 찬성하는 쪽에선 사형이 흉악 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벌’이자 ‘예방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반대하는 쪽에선 사형이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명백한 ‘살인’으로 그 처벌이 꼭 ‘또 다른 살인’이어야 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흉악범죄에 대한 예방 효과는 없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일본소설 <13계단>은 하품을 하며 그러한 논점들에서 슬쩍 벗어나 있습니다. 아, 뭐야? 백날 천날 같은 소리. 지겹지들도 않아요? 그러면서 <13계단>의 작가는 사형집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법률적, 행정적 모순을 파헤치는 데 주력합니다. 거기에는 이런 일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교도관 난고가 두 번째로 ‘특수 업무’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처음 집행으로 뽑혀온 후배 교도관이 차마 집행 단추를 누르지 못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형장 안에는 사형수가 이미 얼굴이 가려진 채 목에 밧줄을 감고 서 있는 상태였죠. 사형수가 딛고 있는 발판 아래에는 빈 공간이 있어서 집행단추가 눌러지면 발판이 아래로 떨어져 사형수가 저절로 목을 매단 꼴이 된다고 합니다. 사형집행 단추는 모두 세 개고, 세 명의 집행인이 동시에 누르게 되는데, 실제로 발판을 떨어트리는 건 그 중 하나입니다. 누가 누른 단추가 발판을 아래로 꺼지게 했는지는 알 수 없구요. 그런데, 사형집행인들의 죄의식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보이는 그 방법이, 그만 현장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후배 때문에 소용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다른 두 명이 누른 단추에는 발판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경우도 생각할 수가 있죠. 후배가 누르기로 되어있던 단추마저 고장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그래도 형은 집행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엔 형장 안에 있는 수동 레버를 잡아당겨서 발판을 떨어트립니다. 그마저 작동하지 않을 땐? 그래도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그럴 땐 최후의 수단으로 집행관 중 한 명이 직접 집행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그것도 반드시 손으로 목을 졸라서. 왜냐하면 사형은 형법에 따라 판결이 내려진 것이고 그 집행 또한 법 규정에 따라야 하니까. 일본 형법에는 ‘사형(死刑)’을 ‘교수(絞首)로써 이를 집행함’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다른 방법, 이를테면 총을 쏘거나 칼로 찌르거나 때려서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도 ‘교수로써’ 집행을 해야 하는 것이죠.  

물론 난고가 집행인으로 참여했던 그 ‘현장’에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난고가 ‘순발력’을 발휘해 후배 앞에 있는 단추를 얼른 눌러버렸기 때문에요. 그 대가는 혹독했죠. 두 번의 ‘특수 업무’ 중 적어도 한 번은 명백하게 자기 손에 피를 묻히게 된 것입니다.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순전히 ‘체험적으로’ 사형제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깨닫게 되죠. 인간의 존엄성 같은 거창한 명분에 앞서 사형제는 그 규정과 절차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모순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엉뚱하게도 사형집행인들이 입게 된다는 것. 그것이 사형제에 대한 난고의 견해였고 일반적인 사형제 폐지론자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사형제에 반대를 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런 난고 앞에 어느 날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는 한 기결수의 무죄를 입증해줄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가 나타나요. 사람은 일생에서 한번쯤 운명이라거나 사명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무엇과 반드시 조우하게 되는 것일까? 처음 사형집행인으로 참여했던 날부터 하루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난고는 그 일을 자기가 수행함으로써 일종의 ‘속죄’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파트너를 지목하죠. 무릇 중원을 누비기 위해서는 ‘짝패’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래서 셜록 홈즈에게는 닥터 왓슨이 있었고 안성기에게는 박중훈이, 폴 뉴먼에게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있어 왔으니까. 난고가 파트너로 지목한 대상은 ‘운이 나빠서’-_- 살인범이 되었다가 이제 막 가석방으로 출감한 청년. 소설 <13계단>은 그렇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살인’을 한 전력이 있는 두 사람이 버디무비 속 주인공들처럼 ‘짝패’가 되어 억울한 사형수의 무죄를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내용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때 단서는 오직 하나. 사형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열세 개의 계단이 바로 그것이랍니다.  

그 과정에서 그 기결수에게 최초로 사형을 구형해 달라는 공소장을 썼던 검사도 도움을 주는데, 그를 통해 작가는 결국 사형이라는 제도는 공소장을 쓰는 검사에서부터 최종선고를 내리는 판사, 사형집행허가서에 최종 사인을 하는 법무부장관, 그리고 그것을 직접 집행하는 교도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절차에 의거해 연관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문제임을 충실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 절차 역시 사람이 만들어내고 사람이 거쳐가는 것이기 때문에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성실하게 파헤치죠. (그러면서도 막판에 반전이 있는 등^^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아요.)

음... 사형제는 상반된 견해가 대립할 수밖에 없는 문제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캄비세스왕의 난행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고 하는데요, 하루는 그가 술을 마시던 중에 평소 총애해마지 않는 신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그 신하는 들은 바를 ‘그대로’ 전했어요. “폐하에 대한 평판은 아주 좋습니다만, 술을 너무 좋아하시는 게 아니냐는 말들도 더러는 하는 듯하옵니다.” 그 말을 들은 캄비세스는 당근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뭣이라? 그 말은 내가 술을 너무 마셔서 제 정신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냐!” 그러면서 그는 그 신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좋다. 백성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것인지 어디 한번 가려보자꾸나. 내가 저 문에 너의 아들을 세워서 활을 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쏜 화살이 네 아들의 심장을 뚫으면 백성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고 내가 실수하면 백성들이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나를 제 정신이 아닌 미친놈이라 여겨도 좋다!”

그러고 나서 캄비세스는 정말로 그 일을 실행했습니다. 그가 쏜 화살은 신하의 아들을 맞혔죠. 캄비세스는 화살이 심장을 꿰뚫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하의 아들을 해부해보라고 명령합니다. 해부 결과 화살은 심장을 꿰뚫은 것으로 판명이 나요. 그러자 그는 창졸간에 아들을 잃고 얼굴이 파리해진 신하를 보며 호기롭게 웃었습니다. “이젠 알겠느냐? 자, 똑바로 보란 말이다. 제 정신이 아닌 건 내가 아니라 백성들이다.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백성들이다 이 말이다!”

<13계단>의 작가는 주인공들이 구명해야 할,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린 등장인물을 통해 사형제에 제가 맨 위에서 언급한 캄비세스의 난행 같은 요소가 있을 수 있음도 빼놓지 않고 지적합니다. 갑자기 화살의 과녁이 되어버린 신하의 아들은 오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그 사형수로 대치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겁이 많아서인지, 저 이야기에서 가장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게 화살이 아이의 심장을 명중시키고, 그것이 정말로 심장을 꿰뚫었는지 해부해보는 행위였어요. 거기에 그 광경을 지켜봐야 하는 신하의 공포.

사형제에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중세 때 활동했던 철학자이자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인 오캄은 그런 말을 했죠. 하나의 진리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들이 대립하고 있다면 그 중 가장 간단한 가설이 진리에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진리에 다가가려면 사유를 할 때 면도칼로 불필요한 가지들을 잘라내라... 그러므로 제가 생각할 때 사형제는, 그것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에서 아무리 뻑적지근한 근거들을 내세워 봐도, 결국 우리가 사형집행인들에게 다른 사람의 심장을 명중시키고 그 심장이 실제로 명중되었는지를 확인하게 만드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그들 손에 피를 묻히게 하는 거죠. ‘밧줄이 팽팽해짐과 동시에 숨이 막히는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끼익끼익 줄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잘려나간 혀끝과 튀어나온 두 눈, 낙하의 충격으로 15센티미터 정도 쭉 늘어난 목’을 지켜봐야 하는 공포 속으로 누군가(바로 우리들이기도 한)를 밀어넣는 일을, 과연 신이라도 시킬 수 있는 것인지...  

<13계단>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오버하는 건가요?^^ 근데 하하, 쓸 때는 간단하게 쓰겠다고 생각했고 심각한 건 원래 딱 질색인데, 쓰다 보니 길어졌고 심각해져버린 것 같네요.^^;; 요즘 나오는 고구마 맛처럼 달달한 나날들이 우리 모두 앞에 펼쳐지기를 빌어봅니다. 좀 생뚱맞은 것 같긴 하지만.

(개인 공간이 아닌 곳에 같은 제목으로 연속해서 글을 올리는 게 좀 주저되기도 하는데요,  그냥 독후감을 통해 여기 회원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_^*)
IP : 218.235.xxx.134
1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감상
    '09.10.23 12:17 AM (121.128.xxx.100)

    감상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형제.. 제가 토론에서 피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문제와 "죽어도 싼놈"이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죠.
    학교 다닐때도 토론하라 그러면, 그때그때 마다 찬성자가 되었다가 반대자가 되었다가 합니다.
    이 문제 만큼은 정말 제 주관을 세울 수 없는.. 주제네요.

    13계단... 책 한권을 다 읽은 기분입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 2. 프리댄서
    '09.10.23 2:08 AM (218.235.xxx.134)

    OECD가입국 중에서 딱 세 나라, 한미일만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중 일본이 제일 먼저 사형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할 거라고 하더군요. 하토야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렇게 발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암튼 그건 뭐 그렇구요..^^ <13계단>은 요네하라 마리가 <대단한 책>에서 '정말 대단한 소설'이라고 극찬하는 거 보고 읽게 됐어요. 근데 저는 그다지 '대단'하다는 생각까진 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문체가 밋밋했고 등장인물들도 입체성이 떨어지는 듯했구요.. 그래도 사형제라는 문제의식을 훌륭하게 틀어쥐면서 추리소설다운 전개를 치밀하게 해나간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결론은... 꽤 재밌게, 단숨에 읽었다는 것.ㅋㅋ

    근데 책 한 권을 다 읽은 기분이 드셨다면... 리뷰를 잘 한 건지 잘못한 건지 모르겠네요.^^

  • 3. caffreys
    '09.10.23 2:57 AM (67.194.xxx.39)

    "진리에 다가가려면 사유를 할 때 면도칼로 불필요한 가지들을 잘라내라"

    씁쓸한 명언이군요.

    우리나라에선 김대중대통령 시절부터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어서
    명목적 사형제는 유지되고 있으나, 사실적으로는 폐지되었다... 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공지영님의 소설(제목까먹음) 이후로 조두순 사건을 지켜보면서
    사형제에 대한 생각과 입장이 조금씩 바뀌게 되네요.

    전 뭐 찬성이니 반대니... 이런 논쟁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사형집행은 누군가의 손에 반드시 피를 묻혀야 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군요. 그렇게 볼 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사형집행관에게는 그 존엄성을
    합법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 가을이네요.
    앤아버의 가을은 그 색이 아주 깊고 다채롭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있네요.
    제가 읽는 책이랑은 차원이 너무 달라서리 ㅋㅋㅋ
    (영어를 좀 개선해볼 작정으로 독서클럽에 가입을 했는데
    Godmother 라는 작가 이름은 또 까먹었구, 2009년에 출판된 샘삥
    판타지에 가까운 대중 소설인데, 다소 어두운 분위기에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턱 소리가 나오는 종류입니다.)

    언젠가는 쫌 생각할 가치가 많이 있는 책들도 좋아하게 되겠죠 흐흐.
    글 많이 올려주세용~~

  • 4. 잘읽겠습니다
    '09.10.23 8:41 AM (203.247.xxx.172)

    오늘도 먼저 찍고 올라갑니다~홍홍

  • 5. 하늘을 날자
    '09.10.23 9:21 AM (121.65.xxx.253)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늘 그렇지만, 글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3계단>은 무척 재미있겠는데요. @..@

    프리댄서님께서 전에 언급하신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를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했는데, 어제 책이 도착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책 표지의 포스가 정말 장난이 아니던데요. 강당에 운집한 수많은 학생들과 마주한 채 허리에 손을 얹고 오른쪽으로 약간 뒤돌아보는 미시마 유키오의 모습이 정말 헉!!!이더군요. 게다가 그 오른팔의 근육들. 정말 헉!!!이었어요. '이 사람, 정말 남자구나! 헉!!!'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워낙 뒷모습이 멋진 남자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데다가 약간 뒤돌아보는 뒷모습이 찍히는 포즈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에 딱 맞는 이미지더라구요. 헐. @..@ <용쟁호투>에서였던가요? 아무튼 이소룡 등 근육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 영화... 뚜둑뚜둑 벼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소룡 등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그 장면. 정말 멋있다고 느꼈었어요. <옹박> 포스터도 그렇고... 크... 그리고, <철권>이라는 오락실 오락이 있어요. 그 시리즈 중에 <철권 태그 토너먼트>라는 오락이 있는데, 그 오락의 오프닝 장면에서 주인공 중 하나인 카즈야 미시마가 뚜벅뚜벅 걸아가다가 뒤를 살짝 돌아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도 정말 좋아했었지요. 크...

    정작 책은 아직 펴보지도 않고, 표지 얘기만 너무 했네요.;;; 아무튼 표지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형제 폐지 논쟁에 관한 댄서님의 글을 보니 국가보안법 존폐 논쟁이 떠오르는군요. (음냐. 사실 요즘 이 생각만 계속 하고 있다 보니...) 논쟁 구도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국가보안법 존치론도 언제나 남북대치상황, 우리는 아직도 전쟁중이며(1953년에 맺어진 정전협정은 어디까지나 '정전(停戰)'협정에 불과하니까요.) 북한이 아직도 군사력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고, 이는 사형제 존치론자들의 주장, 즉, 인간이기를 포기한 범죄자들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우리 가족들, 우리 이웃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참 비슷하지 않나요?

    국가보안법 폐지론도 언제나 남북관계의 진전, 수많은 반공법(국가보안법의 전신이었던 법률), 국가보안법 오남용 사례들,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다른 기본권들에 우선하는) 우월적 지위 등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사형제 폐지론자들의 주장, 즉, 인권 상황의 개선(사형제 존치 여부야말로 그 나라가 얼마나 인권을 소중히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척도가 되는 상황이니까요.), 오판의 가능성, 지구보다도 무거운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한 사람의 생명의 무게 등의 이야기와 참 비슷하지 않나요?

    그리하여 사형집행인의 당혹스러움을 세밀하게 드러내는 소설이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보다 설득력 있게 사형제 폐지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할 수 있듯이, 공안검사의 당혹스러움을 드러내는 시나리오가 관객으로 하여금 오히려 박원순 변호사님의 <국가보안법 연구 1, 2, 3>보다 설득력 있게 국가보안법 폐지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고 보니 <보스턴 리갈>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앨런 쇼어가 사형집행인을 변호하기도 하고, 사형수를 변호하기도 하고, 사형집행 장면을 지켜보기도 하고... 사형제가 꽤 여러 번 에피소드에서 다뤄졌던 듯 해요.

    아무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13계단>도 너무 궁금하네용. @..@ 게다가 다음엔 <치열한 법정> 독후감도 쓰시는 건가요? 무척 기다려지는데요. 사실 저는 아직도 <치열한 법정> 다 못읽었거든요. 전에 읽었던 4장까지가 전부여서... 에공... @..@

    그리고 감기 조심하세요~~~. 최근 저희 두 딸들이 모두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답니다. 둘째가 밤에 자꾸 깨느라 저도 아내도 덩달아 깨게 되고, 둘째 달래주느라 매일매일이 쉽지가 않네요. 헐... @..@

  • 6. 잘읽었습니다
    '09.10.23 9:34 AM (203.247.xxx.172)

    14세기에 영국 출신 프랑스 신학자였던 오캄의 윌리엄William of Ocam이 지적했듯 단순함은 모두가 인정하는 과학의 중요한 특성이었다. 오캄은 종교적 지위에 있는 사람은 재산이나 부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여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너무도 과격하게 주장한 탓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도망쳐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망명해야 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요한 12세를 이단이라고 비난했다. 따라서 그가 교회에서 파문당한 것은 당연했다. 1349년에 흑사병으로 죽은 후 그는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과학적 유산으로 유명해졌다. 오캄의 면도날은 만일 서로 다른 두 이론이나 설명이 있을 경우 다른 모든 것이 같다면 단순한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오캄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essitare.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복잡성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빅뱅에 있던 오캄 얘기가 떠올라서 옮겨 봅니다ㅎㅎ

  • 7. faye
    '09.10.23 9:48 AM (209.240.xxx.123)

    왜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ㅠㅠ ^^

    사형제도의 찬반을 떠나서 소설이나 영화가 어떤 특정 목적의식을 띄고 있다고 느껴지면 - 저같은 삐딱이는 - 거부감이 생겨요...

    사형제 반대영화인 데이비드 게일 이나, 반대로 나약한 법집행을 비판한 15 Minutes,88 Minutes (공교롭게도 같이 minutes가 제목으로 붙었네요... )영화들은 설정 자체를 자신들의 메세지를 위해 최대한 부풀리죠. 그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사형순간의 잔혹함이나, 사형과정의 불공정하고, 탈많은 문제점들을 작가역량을 발휘하여 매우 극적으로 묘사했을 것 같은 예상을 (댄서님의 글을 읽고) 해봅니다.

    사형제 찬반에서 집행관들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집행관들의 직업적 죄의식(?)을 사형제의 본질로 이끄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형집행관들이 자신의 업무를 비판하면, 경찰이나, 군인들은 설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업무는 업무로, 제도의 불공정함은 제도로 풀어내는게 순리에 맞다고 봅니다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가가 행하는 법집행과 법질서가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루어 지느냐 하는 문제일 거예요.

    ……………………………………….

    또다른 관점으로 법집행과 재판에 대한 것으로….오차(error) 에 대한 사회적 해결 방법의 차이로 볼 수도 있어요.

    모든 재판이나 법집행에서 오차(실수, 오판)의 발생은 필연적인데, - 그게 필연적이지 않고, 오차 0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별수 없구요. 오차를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것을 엉뚱하게 재단하는 결과를 낳는답니다. - 그 오차의 처리문제를 어떤식으로 처리하느냐 하는데서 두가지의 다른 방법론이 대두됩니다.

    예를 들어 통계적으로 재판이나 범인 검거의 오차율이 1%라고 한다면, (이말은 다시말하면 현재 감옥에 있는 범인 100명중 1명은 무고하거나 억울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1000명이라면 10명, 10000명이라면 100명) 그 1%의 오차를 해결하는데, 범인의 인권을 우선적으로생각하느냐, 피해자(사회)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느냐 에 따라 다른 법집행이 이루어 집니다.

    전자는 99명만 잡고, 나머지 1명은 잡지않고, 그 범인에 대한 위험부담을 사회가 짊어지고, 후자는 101명을 잡아들여서 억울한 1명의 범죄자가 생기더라도 사회적인 안전을 도모한다는 얘기입니다. 전사회적으로 보면 후자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만한 내용인데요. 후자의 경우 그 억울한 1명은 자신이 그 입장이 되면 참 난감하겠지요.
    (전자에 해당하는 것 – 미란다 원칙, 물적증거주의 등등, 후자 –비대한 검찰력)


    과거에는 주로 후자의 방법을 많이 택했던것 같고, 현대로 올 수록 개개인 인권의 발달과 함께 전자쪽으로 많이 기우는 것 같습니다. 전 그 변하는 과정이 법질서의 공정함을 잃어버린데 대한 돌려막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차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지만, 법집행기관이 나름대로 최대한 공정함을 유지한다면, 그 필연적 오차역시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어느정도 용인될 수 있지만, 법집행기관이 -결론적으론 권력기관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해지고, 알력이 개입되고, 점차 공정함을 잃게 되다가, 어느 순간 터질 것이 터지고 말죠.

    그 여론의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 찾은 방법이 위에서 말한 범법자의 인권이라는 요상한 논리로 순화된 법집행이 아닌가 합니다.

    국가가 망조로 들어들면,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봅니다. 범인의 인권이 중요하냐, 피해자의 인권이 중요하냐의 문제를 들고 나오면, 이상해지는 싸움이나 논쟁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어요. 중요한것은 법집행기관이 스스로 공정함을 잃지 않으면, 위의 논쟁도 수그러들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공정하게 법대로 집행하는데, 뭐가 더 중요하고 안 중요하고 하는 문제가 대두될 리가 없죠.

    사형제에 관해서도 크게 비슷한 맥락에서 본다면, 사형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법집행기관의 공정함을 잃지 않는다면,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사회적 공감이란게 그렇게 움직이니까요. 문제는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요….. 물론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반대도 물론 존재하지만요….

  • 8. caffreys
    '09.10.23 1:20 PM (67.194.xxx.39)

    faye 님의 답글도 잘 읽었습니다.
    근데...

    "억울한 1명의 범죄자가 생기더라도 사회적인 안전을 도모한다는 ..."

    를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만한 내용이라는 말씀은
    여기서 1명의 범죄자가 사형수라 해도... 전사회적으로 지지할만 하다는
    주장에는 헐~~ 소리가 먼저 나오네요.

    전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무고한 목숨을 법의 이름으로
    빼앗아도 된다는 말씀은 설마 아니시겠죠? 대체 무슨 행간을 내가 놓쳤는지..

    사형제가 바로 그 억울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사형제 폐지의 주장의 한 가운데에 있지 않은가요?
    조두순같은 인간, 올바른 판단으로 사형수가 된 이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따지는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해요.

    그나저나 프리님 답글 달렸나 하구 궁금해서 왔구만 아직 주무시나
    자러 갑니다. 빠이빠이

  • 9. 하늘을 날자
    '09.10.23 2:46 PM (121.65.xxx.253)

    faye님의 댓글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사형제 반대 영화들이 사형제 반대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 설정부터 최대한 극적으로 부풀려서 이야기를 전달한다라...

    사형 집행과정은 굳이 부풀릴 것 없이 그냥 그대로만 전달하더라도 너무나 충격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직접 집행과정을 본 적은 없습니다만, 주워들어 알게 된 것만 종합하더라도 절대로 보고싶지 않더군요. 오히려 제가 본 사형제 반대 영화들에서는 집행과정이 최대한 순화되서 나왔더군요. <보스턴 리갈>에서도, <데드맨 워킹>에서도.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사형은 교수형의 방식으로 집행됩니다. 근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형수들은 목이 졸려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바닥이 꺼지고 줄에 매달린 몸의 무게 때문에 몸이 갑자기 추락하면서 그 반동으로 줄에 걸린 목이 부러져서 그 충격으로 죽는 것이죠. 사형수들의 사인을 살펴보면, 많은 수가 그렇게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다고 하더군요. 어느 법의학자의 글에서 봤습니다. 그러니 댄서님 글에서처럼 목이 15센티미터 정도 길게 늘어진 사체를 접하게 되는 것이죠. 사형 집행과정에서의 끔찍함에 관해서 제가 주워들은 내용에 관해서 좀더 쓸 수도 있는데, 별로 쓰고 싶지가 않군요.

    저는 사형집행관의 고통이야말로 사형제 반대 주장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내줄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사형제 집행에 관해서 인류는 공개처형에서 밀실에서의 처형으로 진보했다고도 합니다. 그래요. 더이상 끔찍한 장면은 보기 싫어졌는지도 모르지요. 그 점에서 확실히 '진보'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맹자던가요? 측은지심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좀 길더라도 한 번 인용을 해보겠습니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라는 조영래 변호사 남긴 글 모음 중에서 1986년에 발표된 [당돌한 도전의 기록 - 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라는 글의 인용입니다. '...'은 제가 임의로 생략한 부분입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이 궁정 뜰에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가 아랫사람들이 그날 지낼 제사의 제물로 쓰게 될 소 한 마리를 끌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소라는 짐승은 영물이어서 본능적으로 코앞에 닥친 죽음을 감지하고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으며 그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였고 그 울음은 구슬펐다. 이에 측은한 마음이 움직인 임금은 아랫사람들에게 그 소를 당장 살려주라고 우악스러운 명령을 내렸다. 아랫사람들은 임금에게 물었다. "이 소를 살려주는 것은 좋으나 그러면 제사에 쓸 희생이 없는데 어찌하옵니까?" 임금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무데서나 양을 한 마리 잡아와서 제수로 쓰면 되지 않는가!"

    맹자는 이 딱한 임금의 마음을 이렇게 위로한다. 곧 이것은 당신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고 오히려 당신에게 어진 마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당신이 소는 살리라고 하고 양은 죽이라고 한 것은 소와 양을 차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어진 마음이란 이렇듯이 눈앞에 보이는 사물에서부터 촉발되는 것이고 눈에 뜨이는 생명의 가련함에 대한 측은한 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 이 눈앞에 보이는 사물에 대한 측은한 정을 점차로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물에까지도 확장해 나아가면 마침내 천하의 어진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천하늬 어진 임금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라고 했다.

    이 역설적인 진실은,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그다지 편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까지 확장해나아간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고,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의 저자인 조갑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끔찍한 살인의 현장을 본 사람들은 사형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형폐지론자가 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사형존치론자가 될 가능성이 많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주로 대중매체를 통해 범행의 현장이나 범인의 악독성을 생생하게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에서 증오심이 우러나온다. 오죽했으면 강도, 강간범에 대한 '공개처형'까지 거론됐을까. 한편 사형집행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돼 있다. 교도소 담 안의 어느 밀실에서 이뤄지는 이 '합법적인 살인'은 국가기밀도 아니고, 그 상황의 공개를 어느 누가 법으로 금한 적도 없지만, 좀처럼 사실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집행에 참여한 사람은 꺼림직해서 입을 다물고, 언론도 사형집행을 현대의 신화로 남겨놓고 싶어한다. 사형비밀주의는 결국 사형제도의 존재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 세계 형사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모른다'는 것은 가끔 무관심이나 증오로 이어진다...

    ...

    만일에 우리가 끔찍한 공개처형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하여 갖게 되었던 깊은 관심을, 이제 더는 우리 눈앞에는 그같은 끔찍한 장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포기하여 버리게 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인도주의의 탈 아래 은폐된 국가의 야만은 오히려 더욱더 조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범죄자들, 특히 사형수들은 흔히 사회의 쓰레기처럼 여겨진다. 보통사람들은 대개 사형수와는 어떤 관계도 없다. 사형수를 본 일도 없기 쉬우며, 이웃이나 친척, 친지 중에도 사형수가 있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자, 사형수들에 대한 문제는 경찰, 검찰, 법원 또는 교도소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억울한 사형수'의 문제에 대하여는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있지 않은가,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교육은 학교에 맡기듯이 재판은 판사에게 맡겨두면 되지 않는가, 검사, 판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인가라는 식으로 제도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있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사법제도에 대한 이같은 맹목적인 신앙에 대한 드물게 보는 공개도전장이다...

    여기까지가 인용입니다.

    저는 조갑제 기자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직접 읽지는 못했습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리되었네요. 여기의 조갑제가 바로 지금의, 그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자주 하는 그 조갑제와도 동일인물입니다. 조갑제의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90년대 후반 먼저 접하고 조갑제가 쓴 위 책의 존재를 그 후 알게 된터라 왠지 손이 가질 않더라구요.

    제 생각에는 사형집행관의 고통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의 '측은지심'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며, 나아가 가장 올바른 것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사형집행관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땅히 겪어야할 고통을 혼자서 겪는 것 아닐까요?

  • 10. 프리댄서
    '09.10.23 5:30 PM (218.235.xxx.134)

    우선 제가 위에서 언급한, 교도관 난고의 체험담은 <13계단>에서 그리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 부분이 저한테는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와서 그걸 중심으로 써봤는데.... 맞아요, 그렇게 하면 <13계단>이 그런 식의 ‘과장’과 작가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깊이 기대고 있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 듯하네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그렇지는 않아요.^^ <13계단>의 작가가 가장 크게 경계하고자 했던 것이 센티멘탈리즘이었던 것 같구요.... 작가는 응보주의 형벌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심정적인 경도도 드러내는데, 그걸 다 말씀드려버리면 제가 스포일러가 되지만 그래도 조금만 말씀드려보자면^^, 거기에는 사형(私刑)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리투아니아의 젊은 아버지 같은. 그리고 결국에는 교도관 난고를 통해 그게 실현되죠. 에고... 말하다 보니 횡설수설이 돼버리는 것 같네요.^^

    암튼 <13계단>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며 작가 특유의 ‘신파조’ 때문에 불편했던 사람들도 편하게(?) 혹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저는 <13계단>이 주제의식을 훌륭하게 틀어쥐면서 추리소설다운 재미를 잘 선사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전반적으로’ 평면적인 느낌도 강했답니다. 그 때문에 다시 한 번 내가 좀 섹시한 작품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깨닫기도 했죠.ㅋㅋ 다시 말해 뭔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부족하달까.--; <13계단>의 주제의식은 어쩌면 도덕적 책임감, 인간의 죄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게 너무 ‘선하게만’ 그려진 것 같았다는 말이죠.

    그리고 저는 사형제 폐지론 혹은 응보주의 형벌론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범죄자의 인권을 더 중시하느냐, 피해자(사회)의 안전을 더 중시하느냐는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형제 폐지 주장이 범죄자의 인권을 더 중시하는 사고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건 참 위험한 발상인 것 같아요. 우씨... 요즘 언론에 많이 등장해서 확실한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고자 몸부림치는 김문수가 딱 그렇게 주장하더만요.^^

    faye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희생이 정당화되려면 우선은 그 방법 말고는 정말로 방법이 없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고, 그 희생을 치르기 전과 후를 비교해 희생 후가 실제적으로 사회의 안전이 더 보장됐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제가 듣기론 사형제가 있다고 해서 잔혹범죄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한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것일까? 거기다 사형집행인들은 자살율도 높다고 하죠? 그런데도, 그런 걸 감수하면서까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 잔혹범죄가 줄어든다고 해도 그 한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게 과연 정당할까? 그것도 국가가 나서서...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따라서 문제는 사회의 안전이 아니라 우리들이 느낄 카타르시스일 겁니다. 잔혹범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공분을 해소하고 달래는 것. 그걸 위해 사형만큼 좋은 게 없는 거죠. 그리고 저는 그것도 나름대로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을 때 우린 이 비루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니까요. 극도로 억제되고 정제된 사형은 고전소설에나 나온다고 생각했던 권선징악이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에도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핵심은 누군가에게 손에 피를 묻히라고 요구한 뒤 얻게 되는 그 감미로움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응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두순 사건을 대하며 우리가 그토록 분노하게 됐던 건 ‘어떤 잔인함’을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분노보다는 처참함이나 절망감이라고 해야 더 적확하려나요? 조두순이 저지른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후에 진행된 양상을 보면 어떻게 그 어린아이를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보험금이 나왔다고 해서 생활보조금을 중단해버린 시청이며 우리가 약자를 보호해주는 최후의 보루라 믿었던 사법부마저 어떻게, 하나같이 그 어린 것을 내팽개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었단 말인가. 제 생각에는 그 잔인함 앞에서 우리가 그렇게 진저리를 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진저리가 한편으로는 ‘조건부(?) 사형제’를 옹호하게 만든 것 같구요. 그런데, 그때도 문제는 그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잔인한 속성,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 그 오래고도 드넓은 관행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해요. 아, 그 잔인함을 떠올리니 이 댓글을 쓰는데도 가슴이 아프네요.

    아고,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이쯤으로 끝내고 이따가 더 댓글 달도록 할게요.~~

  • 11. 프리댄서
    '09.10.24 2:12 AM (218.235.xxx.134)

    저기 하늘을 날자님께서 올려주신 조갑제 글을 읽으니, 글을 잘 쓰네요. 그 사람이 기사를 안 쓸 때도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 들러 닥치는 대로 자료들을 섭렵했다더니.... 어쨌든 조갑제는 여러모로 참 신기한 사람인 것 같아요. 사형에 대해서도 저때는 ‘합법적 살인’운운했던 (물론 글 전체에서 어떤 식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짤막하게 인용해주신 부분만 보면 저때는 사형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네요) 사람이 지금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사형제를 실질적으로도 부활시켜야 하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으니...

    그리고 <옹박>! 아,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저도 참 재밌게 본 영화랍니다. 포스터에 씌어 있던 ‘CG는 없다. 와이어는 가라. 스턴트는 거부한다. 100% 리얼 액션’이라는 카피도 엣지 있었어요.^^ 그 순박한 내용이며 시골에서 썩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던 여주인공도 생각나네요. ㅋㅋ 주인공 하고 다니던 고향 형도 빼놓을 수 없구요. 그 형이 자기 이름을 디게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거 보면서 우리 식으로 치면 이름이 춘삼이쯤 되나 보다,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에고.. 애기들 감기가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잘읽었습니다’님. 오..! 오캄 (흐.. 그렇죠. 원래는 오캄에 대해 알려진 게 고향이 ‘오캄’이라는 것밖에 없어서 William of Ocam이라고 하다가, 그 고향 이름을 아예 성으로 써서 윌리엄 오캄이라고 해버리고 있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윌리엄 수도사 모델이 저 오캄 마을에서 태어난 윌리엄. 즉, 윌리엄 오캄이라죠? 저는 바로 그 <장미의 이름> 때문에 오캄을 알게 됐었어요.^^)에 대해 간단 브리핑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잘 읽었습니다.^^

    caffreys님. 크.. 앤아버의 가을이 그렇군요. 전에 미시건대학에 한 달간 연수(직장에서 보내준)를 다녀온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하루는 잠이 안 와서 숙소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꿈뻑거리고 있는데 문득 ‘아, 이래서 서양에는 무도회 같은 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미시건대학이 있는 곳이 한적해서 시골은 아닌데 시골마을 삘이 강하고, 저녁 8시만 되면 정적 속으로 들어가더라나요? 자기가 볼 땐 미시건주 전체가 그런 느낌인 것 같았고. 그래서 문득 ‘사람이 짝짓기도 해야 하는 게 아니겠어? 근데 동네가 이래가지고 어떻게 남자, 여자를 만나겠냐구...’하다가 ‘아하, 그래서 무도회가 생겨났구나’ 하는, 혼자만의 결론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해주더군요.^^ 한국 와서 밤 1시에 치킨하고 생맥주 시켜서 시원하게 들이키니 좋더라면서...ㅋㅋ

    그렇게 밤에 평화로운 정적 속으로 잠기는 동네의 가을이니 당연히 깊고 다채로울 것 같아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caffreys님께 그렇게 큰 아드님이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네요. @@ 물론 키톡 사진을 보기 전에도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는 말씀을 듣긴 했지만, 세상에나... 정말로 그렇게 큰 아드님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faye님. 어제 세 명한테 반박 당하시느라 좀 언짢으셨으려나요? ㅋㅋ 그래도 faye님께서는 여전히 한쪽 구석에 어깨를 기대고 팔짱을 끼신 채 시크한 표정으로 좌중을 바라보고 계실 것 같다는.^^

  • 12. faye
    '09.10.24 2:32 AM (209.240.xxx.123)

    제 댓글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을 예상은 했지만, ....
    사형제를 찬성하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듯 하군요... ㅠㅠ

    조금 반론을 하자면,
    저의 요지는
    '법집행의 공정함이 담보됨이 없이는 사형제 찬반이나, 범죄자 인권문제 같은 논쟁은 무의미한 곁가지 논쟁일 뿐이다.'라는 것으로 압축됩니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억울한 누명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면,
    중요한 논점은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법집행기관으로 부터 피해를 입는 부분'이지, 그가 옥살이를 하거나, 사형을 당하거나가 아니라고 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지 않도록 법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지, 그를 옥살이 시켜야한다, 사형시켜야한다 하는 문제는 부차적이라는 것이지요.

    억울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사형은 안되고, 그러나, 옥살이는 되고... 그러면 그것도 이상하죠.

    중요한 키는 법집행기관이 이른바 공권력이 자행하는 수단이나 행위보다 그 공권력의 공정함과 공평함이 어떻게 손상되었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란 선동죄로 무기를 때리건, 100년을 때리건, 사형을 때리건, 누구는 억울하게 사형당하고, 누구는 아직도 자알 살고 있다는 시스템의 붕괴자체가 사형제의 존립보다 더 큰 사항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형제의 존립여부에 대한 논쟁은 그 자체로 논점흐리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경계하는 부분은 그런 부분입니다.

  • 13. 프리댄서
    '09.10.25 3:39 AM (218.235.xxx.134)

    크크 공공의 적...
    설령 '공공의 적'이 되셨다 한들 흔들리실 faye님은 아니죠. (제가 느끼기엔)^^
    오늘이 토요일, 아니 일요로 넘어왔는데요, 저는 모처럼 한가로운 주말을 만끽(?)하고 있답니다. 지난 주에 하도 사람들과 차에 데어서 이번 주엔 어디 움직이지도 않았어요. 근처 공원만 가도 주말엔 어찌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한지.^^ 암튼 모처럼 빈둥거리는 맛이 괜찮네요.ㅋㅋ 일부러 인터넷 접속도 안 하고 있다가 이제야 82에도 들어와 봤어요. 낮에 잠깐 잠을 잤더니 잠도 안 오고 해서.^^

    음.. 법집행의 공정함은 당연히 담보되어야 하겠죠. 그 점을 강조하고 계시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법집행의 공정함과 사형제 폐지가 어느 하나의 전제조건이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법징행의 공정함을 '완벽'하게 담보하는 게 더 우선이냐, 사형제 폐지가 우선이냐 하는 식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죠. 물론 법집행의 공정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건 두말할 나위가 없죠. 사형까지 안 갔다 하더라도, 법집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억울하게 한 달만 옥살이를 하게 돼도 그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손상을 가져오고 공동체에도 내상을 축적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니까요. 그런 일도 결코 일어나는 안 될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그간 권력에 의해 '억울한 범죄자'들이 많이 양산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우린 사형을 선고받지 않아도, 불공정한 법집행의 대상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그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이 얼마만큼 피폐해지는지를 '충분히' 경험해왔습니다.

    하지만 사형은 그런 손상이 회복될 가능성이 제로라는 점에서 따로 또 떼어놓고 살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다 사형제는 사형집행인들로 하여금 '합법적인 살인'을 수행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형벌들과는 비교가 불가하다는 거예요. 포스팅을 통해 강조한 바도 그것이구요. 거듭 말씀드리는 바, 제가 생각할 때 사형제의 핵심은 정의의 실현 혹은 정당한 응징, 사회 질서 유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손에 피를 묻힐 것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사형제가 지닌 모든 폐단을 압도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피해자 가족도 함부로 요구할 수 없고 설령 신이라고 해도 명령내릴 수 없는 것이죠. 글쎄요, 당장 극악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사형을 때리라고 주장하는 조갑제나 (오직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사형제 반대를 '오히려 가해자의 인권을 두둔하는 꼬락서니'라고 성토하는 김문수, 종교단체로는 유일하게 사형제에 찬성하는 한기총의 저명하신 목사님들이 직접 집행을 하시겠다면, 그리고 그 대상자가 조두순 같은 자로 엄정하게 한정된다면, 저도 사형제 찬성을 한번 고려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이미 사형집행인들의 자살율이 높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 마당에, 그 과정에서 그들의 가정이 흔들리고 가족들이 더불어 고통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엄연히 나와 있는 상황에서 누가 함부로 그들에게 다시 사형 집행 단추를 누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경찰인 군인도 없애야 하지 않느냐, 는 얘기는 핀트가 조금 엇나간 것이라고 생각해요. 경찰이나 군인도 기본임무, 주업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사실상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데, 그렇다 해도 그것은 밀실에서 '하나의 제의(祭儀)'처럼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또 사형은 대체할 만한 수단이 있지만 경찰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살인은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그 방법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고 더 나아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당 경찰이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어 수단이죠. 사형집행인들이 하는 일과는 전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톡 까놓고 말해, 사형집행인들은 현대판 망나니가 아니던가요? 우린 사회의 안전이라는 명목과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카타르시스를 위해 그들에게 망나니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구요.

    응보주의 형벌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칸트의 주장을 인용하기를 즐기지만(물론 faye님께서 그렇다는 말은 아니구요^^), 그들은 칸트가 살았던 시대에는 '시민'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해 그때는 사형집행인(교도관)까지 '시민'으로 쳐주지 않았죠. 망나니 일을 해도 되는 사람들이 존재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정리를 하자면^^, 법집행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문제는 아주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faye님께서 그것을 강조하시고자 ‘억울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사형은 안되고, 그러나, 옥살이는 되고... 그러면 그것도 이상하죠.’라는 말씀을 하신 거라고 봅니다. 사형제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또한 그런 차원에서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자칫 법집행의 공정성 확보라는 사안의 논점흐리기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경계하시는 거라 생각해요. 한마디로 사형제만 폐지되면 만고땡이냐... 현실은 이렇게 아직도 개판인데... 이런 말씀이시겠죠.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사형제 폐지는 그것대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렇다 하여 사형제 폐지라는 테제가 법집행의 공정성 담보 같은 과제와 완전히 분리 독립해서 저 홀로 설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과 밀접히 맞물려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고(사형제 폐지를 얘기하다 보면 그 문제도 거론될 수밖에는 없죠), 오히려 그런 것들을 포괄하는 논의가 무르익을 만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진지하게 제기되는 주제가 저는 사형제 폐지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상큼한 조생귤처럼!.^^

  • 14. 프리댄서
    '09.10.25 3:39 AM (218.235.xxx.134)

    으아, 댓글 쓰다 보니 시간이 세시 반...@@

  • 15. faye
    '09.10.25 11:58 AM (209.240.xxx.123)

    아... 이런 반론 정말 하기 싫어요...^^

    1. 경찰은 그렇다 치고, 군인의 주 업무는 평상시는 경계, 전쟁시는 적군의 사살이 주 목적입니다.

    2. 사형집행인들의 직업적 문제가 문제가 된다면, 그 문제는 사형제도 하에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고 봐요. 정치적으로든. 방법적으로든.... 그것을 들고 사형제 폐지를 들고 나오면, 사형제 존치론자들에게 역으로 당할 공산이 크죠...
    예를 들어)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고, 100% 기계화 해서, 사형집행인 자체를 없애버린다든지.. 늙어서 죽게 한다든지....
    사형집행인들의 문제, 그것만 해결해주면 돼? 하고 역으로 물으면 어떻게 대응하나요?

    3. 사형제 존립 문제는 그 자체로 너무 많은 논란거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논란은 진흙탕 싸움이 될 수 밖에 없구요. 그 싸움에서 그와 연관된 다른 주제들 (법의 공정성)이 따라나와 제대로 논의 된다고는 보지않아요. 사형제 존립문제와 연관되면, 양편에서 서로 자신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 그런 사항들을 이용하겠지요.
    국가내란죄는 사형시켜야 합니까? 무기여야 합니까? 10년형이어야 합니까? 그런 논쟁 백날해봐야 웃고 있을 사람들은 전*, 노* 겠죠. (아니면, 그들이 그 싸움보며 긴장할까요? )

    ............

    담엔 이렇게 어려운 주제 쓰지 마세요... ㅠㅠ

  • 16. faye
    '09.10.25 9:14 PM (209.240.xxx.179)

    어제 이어서 "억울한 1명의 범죄자가 생기더라도 사회적인 안전을 도모한다는 .." 부분에 대해 몇달전 캐나다에서 있었던 토리사건(Victoria Stafford Case) 에 대해 쓰려고 여기 저기 찾아봤는데, 특별히 한글로 된 것이 없네요.

    위키를 참고 삼아 씁니다.

    2009년 4월 8일, 8살난 소녀인 Victoria Stafford(토리) 가 사라집니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고, 연일 신문에서 토리에 관련된 기사가 나오고 그랬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와 마지막에 같이 있었던 정체불명의 여자의 비디오가 발견, 공개되고,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차가 공개되고....

    그러던중 5월 20일 테리 맥클린틱(18세 여), 마이클 레퍼리(28세, 남) 두명이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됩니다. 테리는 범행사실을 자백하고, 토리의 시체를 찾는 것을 돕겠다고 말하는데, 마이클이란 남자는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5월 21일, 22일 쯤인가, 문제가 생겨요. 묵비권을 행사하는 마이클을 더이상 구속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유력한 물적증가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24시간 구속 이후에, 별다른 추가 증거가 없는한 풀어줘야 된다고 하더군요.

    현재까지 증거로는 그남자의 여자친구인 테리의 증언밖에 없고, 그 증언은 물적증거의 뒷받침 없이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아직 시체를 못찾았고, 그남자가 연루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단지 범행에 사용된 차가 그 남자 거라는 것 밖에...

    시체도 없고, 살해무기도 없고, 시체가 없으니 시체에 묻은 dna 도 없고,....

    정황증거와 증언만 있습니다. 테리는 마이클이 주범이고, 자신은 도왔다고만 합니다.

    그런데 증거가 없으니....

    이상황에서 마이클을 법적 최고 구속시간인 24시간 경과한 후 풀어줘야 합니까? 아니면 그를 더 구속시켜야 하나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이클이 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그녀가 거짓말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는 경찰이 무슨 죄인가를 더 만들어서 마이클의 구속상태를 유지합니다.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방송에서 쉬쉬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한참 후인 7월 21일 토리의 시체(토막시체)가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지금 재판중입니다.

    정황증거는 있는데, 물적증거가 없는 경우.....
    예를 들어 남녀 둘이 모텔에 있다가 여자가 떨어져 죽었습니다.(실제 사건입니다. 한 10여년 전에)
    남자는 여자가 스스로 뛰어 내렸다고 합니다.
    검찰은 남자를 살인죄로 기소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여자를 밀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후에 부검의가 떨어지가 전의 폭행 흔적을 발견합니다.)

    그랬다 하더라도 그 남자가 그 여자를 직접 밀어서 죽게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심증은 가도 물증은 없어요....

    그 남자를 살인죄로 기소하고,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그 남자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는 처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게 아니라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이클을 더 구속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를 법대로 해서 풀어주려는 경찰을 바보라고 욕했지요. 법대로 하면, 물적 증거가 (아직) 없기 때문에 혹시 범인이 아닐지도 모르는 마이클을 풀어주는게 맞지요.
    (실제로는 마이클을 더 묶어 두었고, 거기에 반발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고, 지금 재판중..)

    ---------------

    어려운 문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형제 존립 여부도 사실 댄서님의 주장이나, 저의 주장 외에 훨씬 더 많고,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역시 사법적 살인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런 그런 어려운 문제를 푸는 최고의 방법은 '공정'함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담보됨이 없이는....
    어떤 문제도 이상한 논쟁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이게 맞는것 같기도 하고, 저게 맞는것 같기도 하고...

  • 17. 프리댄서
    '09.10.26 12:27 AM (218.235.xxx.134)

    아우, 저 사춘기적 반항을 어찌할겨? ㅎㅎ
    한편으로는 꼭 하드코어 포르노를 찍고 있는 것도 같네요. (켁) 이런 논쟁을 하려면 좀 섹시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섹시한 게 아니라 뭐랄까... 꼭 하드코어 포르노를 보는 것 같다구요. 군인 업무까지 꼭 얘길해야 할까요?--; 그들과 사형집행인은 다릅니다. 또 사형집행인의 고통을 부각시키는 주장의 허점을 공박한다면서 기계가 100%처리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사실상 그런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형제 존치론자들 주장도 그런 식으로까지 하면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흉악범죄자에 대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쎈' 벌을 내리자는 거죠. 그들이 생각할 때 가장 '쎈' 벌은 사형이라는 거구요.

    그렇다면 정말로 가장 '쎈' 벌이 사형일 수밖에 없겠냐는 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사형제존치론자들도 그런 식의 논의는 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가장 '쎈' 벌이 목적이지 꼭 죽이자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자꾸 같은 말이 되풀이되잖아요. 법집행의 '공정함'을 담보하는 건 중요합니다. 그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죠. 위 댓글에서 소개해주신 사례들도 '잘'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번 천번, '잘' 해결되야죠.

    그런데 저런 식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된 사람들은 그냥 놔두고 왜 사형제만 가지고 그러느냐? 혹은 사형제 폐지론에 몰두하면 저런 폐단을 낳는 법집행의 공정함 문제가 물타기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거듭 되풀이되는 제 대답이에요. 우선 사형제는 그것과는 별도로 떼어놓고 생각해볼 문제라는 거구요, 또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다고 해서 저런 문제들과 정말로 뚝, 떼어진 채 논의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거듭 말씀드리는 바, 사형제 폐지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사회는, 그래요 톡 까놓고 말하자구요, 일정 수준에 올라선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도 아주아주, 더럽게 후진 단계는 벗어났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지난 10년 세월 동안 김대중, 노무현 같은 대통령과 천정배, 강금실 같은 법무부장관을 거치면서 실제로도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러고도 극악스러운 반대가 없었다는 것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아고... 사형제 폐지를 놓고 그런 논의와 그런 생각들이 오가면서도 꾸준히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그게 우리 수준에서는 확,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요. 그러니까, 우리가 확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형제 폐지 논의는 그것대로 이루어지면서 다른 중요한 문제들이 그 주제 때문에 물타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말이에요. 아.. 지쳐서 더는 못쓰겠네. 흑흑. 막 <치열한 법정> 글 작성해서 올린 터라.. 기운이 없시유..ㅠㅠ

    암튼 사춘기 여인^^ faye님의 집요한 문제제기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말씀하시는 바도 잘 알아들었어요.^^ 근데 하드코어 포르노는 찍지 말자구요. 전 무엇보다 그걸 찍을 만큼 몸매가 받쳐주지 못해요. 그렇다고 성형을 할 수도 없고... 그렇잖아요.ㅠㅠ

  • 18. faye
    '09.10.26 3:55 AM (209.240.xxx.179)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센 벌.... 은 아니지만...

    윗동네에 '노동 교화형'이란게 있더군요.
    노동을 통해서 교화시키는 벌......

    인간이 만든 사법형 중에서 가장 훌륭한 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인간의 사법제도 자체에 대해 사실 별 기대를 안해요.
    인과 응보를 믿지는 않지만, 삶자체에서의 행위는 자신 스스로에게 댓가가 돌아온다고 믿고 있어요. 아니, 실제로 긴 세월을 통해서 보니, 많은 경우 그러더라구요.

    단지 보다 공정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DJ정부와 참여정부시절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에 극악스러운 반대가 없었다는 부분은 참 부연할게 많지만... 다음기회에^^

    앞으론 좀 섹시한 반론을 연구해 봐야 겠네요....^^
    답변 고마와요. 그나저나 감기는 나았나요?

  • 19. 프리댄서
    '09.10.26 1:04 PM (218.235.xxx.134)

    감기는 걸리지 않고 지나가네요. 걸릴 기미가 보이면 얼른 '잘 먹고 푹 자버리기' 때문에?^^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호되게 걸린 이후로 쌩쌩... 카카카카.
    faye님께서도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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