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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이 남긴 회한

생각해 봐야 할... 조회수 : 413
작성일 : 2009-05-26 06:02:36
  '구시대 막내 대통령'의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비극
[기자의 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이 남긴 회한
기사입력 2009-05-25 오전 7:05:49

     "그냥 촌놈은 촌놈답게 합시다."

그가 대통령은커녕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난 2002년 1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하룻동안 동행 취재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날 저녁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사이버 유세'를 할 예정이었다. 한 보좌진이 정호승 시인의 시 3,4 편을 들고 와 노 전 대통령에게 '사이버 유세'에서 낭독을 하자고 제안했다. 운동권 변호사, 5공 청문회 스타, <조선일보>와 소송, 거기에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까지, '싸움꾼'의 이미지만 가득한 그에게도 예상 외로 감상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전략이었다. 참모진들은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척'하는 건 죽어도 못 하는 게 그의 천성이었다.

"촌놈답게 합시다"

햇수로 10년째 기자일을 하면서 '노무현'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5년 동안 쓰고 살았다.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마크맨'(담당기자)이 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3년 반 동안 청와대 출입기자를 했다. 그가 임기 반환점을 돌 때 기사의 한 대목에 썼던 것처럼 꽃다운(?) 내 청춘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보냈다.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그랬듯이 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내게도 충격적이었다. 재임시 왕성한 활동과 문제적 발언 때문에 매일 격무에 시달렸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이렇게 젊은 대통령은 뽑은 사람들이 누구냐'는 푸념을 쏟아졌던 기억이 났다. 아직은 한창 나이인 그가 퇴임 1년 3개월 만에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다니.

그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하고, 또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유서를 보면서,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이 8년 전 그 모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언론 일정을 앞두고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하면서도 "우리 마누라가 딱 분만 약간 바르라고 했는데", "이거 야반도주하겠다는 말 나오겠네"라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인터뷰 중간에 거울을 보며 '2대8' 가르마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신경 쓰며 머리 손질을 하던 당시 유력 후보와는 매우 상반된 모습이었다.

▲ 노 전 대통령은 '촌놈'이라며 낯간지러운 정치적 이벤트는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는 역대 대선 후보 중 가장 감성에 자극한 후보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진은 2002년 대선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대선 TV 광고 '노무현의 눈물' 중 한 장면. ⓒ프레시안

"우리 사회 지식인들에게 실망했다"

또 한 가지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지만 그해 6월 지방선거와 8월 재보선 참패 이후 그는 후보 사퇴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해 9월 노 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했다. 오전 11시께 시작한 인터뷰가 끝난 뒤 노 전 대통령이 돌연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1시간 넘게 점심을 함께 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힘든 속내를 드러냈다. 당에서 정한 방식대로 경선을 해서 뽑은 후보를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낙마시키려는 당의 모습에 대해 그는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원칙대로 하는 게 아니라 반칙을 하더라도 무조건 이기면 되는 게 마치 '정치'인 양 여겨지는 현실에 대해 그는 분노했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그가 불쑥 내뱉었다. "우리사회의 인텔리(지식인)들에게 실망했다."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못 했다. 아마 후보 사퇴 및 후보 단일화를 종용하는, 그 논리를 만들어내는 지식인들에 대한 실망일 것이라고 넘겨 짚었다. 상고를 나온, 부산출신의 노 전 대통령은 진보진영 내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리고 대선 과정에서 '주류' 운동권들에게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진보든, 보수든, '주류'는 그를 '자기 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이처럼 그를 흔드는 사람만 주변에 가득했으니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 '빚'이 많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성격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척'하는 것을 유달리 못하는 것도 그놈의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수천억 원의 뇌물을 받았던 전직 대통령들도 예우 받으며 잘 살고 있는데 수십억 원을 받은 대통령이 자살하냐고. 이번 국면만 넘기고 나면 다시 전직 대통령으로서 잘 살 수 있지 않냐고.

평생 정치적 자산이자 자부심으로 여겼던 도덕성이 무너지고 난 뒤, 노 전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의 실망이나 비난 여론도 잦아들 것이고, 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일들로 만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척'하지 못하는, '빚'지기 싫어하는 그의 결벽증 때문일 수도 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것 같았다.

박연차 사건…계속되는 '정치 일정'


▲ 퇴임 후 봉하마을에 돌아가 소박한 생활을 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재임시 잃었던 인기를 일부 회복시켰다. 자전거 뒤에 손녀들을 태우고 산책을 즐기는 노 전 대통령. ⓒ연합
재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 환경운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4대강 살리기'를 추진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믿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재임시 새만금, 천성산 사태 등을 겪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발언도 그때는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일단 고향인 경남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5년 내내 대체로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퇴임 후 모습은 큰 박수를 받았다. 청와대 내부기록문건 유출 사건 등 이명박 정부의 소소한 견제가 있었지만 다시 '촌놈'으로 돌아간 듯한 노 전 대통령에게 큰 흠집을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길게 가지 못했다. 2008년 12월 형 건평 씨가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연루, 구속되면서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총 64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직접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였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그는 스스로 정치적 사망 선고를 하며 자신의 홈페이지를 폐쇄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3일 새벽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그의 자살로 검찰 수사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더 큰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해 자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살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 사건이 터진 시점, 검찰의 언론플레이, 그의 소환 일정 등 일련의 과정이 잘 짜여진 정치적 각본에 따른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평생 큰 정치적 라이벌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은 퇴임하고 나서 오히려 정치적 라이벌을 얻은 것 같았다. 그 라이벌의 정치적인, 너무나도 정치적인 압박이었다.

현 시점에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그가 정치를 좀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 국면을 넘기더라도 앞으로 4년 동안 너무나도 '정치적'인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자살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 역시 너무나도 정치적인 것이 됐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은 조문을 어떻게 해야할 지 판단하기조차 힘든 수세에 몰렸다. 검찰에도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원망말라"고 했지만 지지자들의 가슴이 원망이 쌓인다.

'구시대 막내' 노 전 대통령의 죽음


▲ 환하게 웃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영정 사진. ⓒ연합
안타깝다.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젊은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 단지 그의 나이 때문은 아니다. 그는 재임 당시 자신이 "새시대를 여는 맏형(대통령)이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라고 시인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고질병이었던 친인척 비리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구시대'로 묶일 수 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대통령 친인척 비리의 고리를 끊어내는 외부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십억 원이 오간 사건으로 전임 대통령이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이명박 정권에게는 권력 비리와 연관된 평가 잣대가 될 것이다. 그것도 집권 초반기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더욱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개인적인 도덕성을 떠나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 비리로부터 자유로운 첫번째 대통령이 된다면 그건 노 전 대통령의 '선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해서라도 '부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가장 큰 성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분명 다른 행보를 보일 '여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60년이 넘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재임시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퇴임 후 사회적으로 더 큰 기여를 하는 대통령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젊고 소탈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의 존재는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후임 대통령들에게 적잖은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봉하마을에 내려간 초심이 변치 않는다면 그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새시대 맏형'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홍기혜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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