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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굿바이 노짱 - 산하님 글

굿바이 조회수 : 295
작성일 : 2009-05-26 05:42:29
명문이군요......ㅜ.ㅜ
미디어몹에서 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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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노짱                            썸데이서울 | 2009-05-26 03:34


그제와 어제와 오늘 저는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스스로 하직했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을 접하고도 저는 일을 손에 잡았고
딸 아이 피아노 콩쿨에 다녀와서 외식을 즐겼고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사촌을 영접했습니다.  
솔직히 그건 제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7년 전의 겨울, 제 한 표가 당신에게 갔을망정,  
나는 당신을 한 번도 노짱이라 불러 본 적이 없는 제가,
빌어먹을 형 하나 단속 못하냐고, 취임 초부터 말썽 일으키고
급기야 사람 목숨 하나 잡아먹었던 형이
그렇게 설치고 다니는 거 하나 대통령으로서 쥐어박지 못하느냐고
당신에게 육두문자를 내뱉았고
대통령 된 뒤에 툭하면 사람을 조마조마 아니면 황당무계하게 만들었던 당신의 언행에
질릴 대로 질렸다고, 버릴대로 버렸다고 치부해 버렸던 제가,
당신의 죽음에 태연을 잃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덜에 푸러런 솔잎"을 보라는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문성근씨의 열변 속에 당신의 뺨을 흘러내리던 한 줄기 눈물을 보며,
당신에게 순결한 희망을 걸었던 방방곡곡 사람들의 땀과 목청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으나,
당신은 이후 세월 내내 제게 노짱이라 불릴만큼의 매력과 설렘을 유지하지 못하셨습니다.
결국 당신이 "나를 버리셔야 한다"고 비장하게 토로할 때
외람되게도 나는 이미 당신을 버린지 오래라고 엷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 이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멍함을 떨치지 못합니다.
오늘도 예정에 없던 술을 퍼먹고서야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당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시기 직전의 설 연휴 마지막날이었던가요.
숭례문이 불타오르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애정은 커녕 몇 수백번을 지나다니면서도 그 문짝 한 번 눈여겨 본 적이 없던,
왜 국보 1호인지 모르겠다고 투덜대기만 했고
고층건물의 홍수 속에 빈약하기조차 했고
그 문 앞으로 길이 열렸어도 굳이 가까이 갈 마음조차 없었던 남대문이
널름거리는 화마의 혓바닥에 휩싸이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숭례문의 현판이 땅에 떨어지고,
급기야 돌담만 남은 채 시커멓게 타 버린 문루로 화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얼마나 허망하던지요.
얼마나 슬프던지요.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요.

그것이 전제왕권을 둘러싼 도성의 상징이든
일제에 의해 좌우 팔 노릇을 한 성벽 다 잘려나간 일종의 잔해이든
국보 1호의 가치가 있든 없든
그것이 나의 생전에
그것도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를 듣보잡 인격장애자에 의해
(그가 보상을 받지 못한 억울함을 풀고자 했다는 말은 진실과 상당히 다릅니다)
잿더미로 무너져 내림에 얼마나 가슴이 텅 비어 오던지요.  


나는 남대문에 애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끔찍한 오체투지 앞에서 저는 그 느낌의 재연에 소스라칩니다.


그냥 조용히 봉하마을에서 전직 노릇이나 하면서
가끔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던 그 거침없는 어조를 좀 폼나게 다듬으시면서
막걸리나 먹고 아이들 자전거나 태우고 살아가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정말로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신에게 들릴 리야 없었겠지만 당신을 모질게 씹기도 했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목놓아 외치는 사람들에게 날선 비웃음을 꽂기도 했던
당신의 옛 지지자인 저는
남대문이 불타오를 때처럼 멍해지고
허망한 입만 벌어지며
이유없는 눈물에 가슴이 아립니다.  


어제 덕수궁 앞에서 당신의 미소 띄운 얼굴 앞에 절 두 번 반을 하려고
세 시간 반을 기다리면서
저는 계속 그 이유를 알려고 몸부림쳤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당신의 죽음에 이리 맥을 추지 못하는가.
왜 냉정을 잃어버리고 침착을 상실하는가.


물론 시간이 난 탓도 있습니다.  바삐 돌아가는 일정 때문에 내 코가 석 자였다면
굳이 덕수궁 포위군의 일원에 가담할 이유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당신을 만나기 전의 세 시간 반 동안 제가 본 풍경을 저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너살 난 아이들을 안고, 갓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언제일지 모를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
  자리 맡아드릴 테니 벤치에 앉아 있다 오시라고 권유해도  
  들은체만체 무릎 두들기며 서 있던 환갑 넘은 아주머니
  주말 데이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부둥켜안은채 몇 시간 팔을 풀지 않던 젊은 연인들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은 섹스폰으로 아침이슬을 연주하던 아마츄어 악사
  끝없이 이어지던 줄과 줄...... ..
  그리고 당신의 영정 뒤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절벽처럼 버티던 경찰 버스들.........


  당신은 누가 뭐래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의 그 누가,
  설사 대한민국을 수십년 쥐락펴락하고 누구나 그 눈치를 보아야 했던 아무개라 한들
  대통령 이하 세상 없는 감투를 마르고 닳도록 썼다고 한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의 정치적 행적을 떠나서, 생전에 뿌렸던 말과 행동을 넘어서서
  당신은 정말로 매력이 있었던 사람인가 봅니다.  


  
  결국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자발없이, 체신머리도 없이
  흑흑거리고 울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동네 강아지와 어린 장난꾸러기들을 청중으로 연설했던 그 참담함이,
  그래도 굴하지 않던 당신의 용기가 떠올라서였기도 하지만
  제 눈물의 이유는 서러움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선거권을 가지고 선거권을 행사한 성인 가운데 다수표를 획득하여
  쿠데타도 아니고 사기질도 아닌 정당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당신이었지만
  당신이 명패를 내던지며 깨뜨리고자 했고
  버스 아래에 몸을 던지며 항거하려 했고
  경박해 보일만큼 거침없이 발길질을 해 댔던 그 높은 벽
  그리고 그 높은 벽 위의 사람들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해방 공간의 한민당에 뿌리를 두었다는 보수정당 민주당
그 당의 대선후보로서 대권을 거머쥐었음에도,
하늘에 닿았던 벽 위에서 굽어보던 사람들에게
당신은 듣보잡이었고 얼치기였고 인큐베이터 속 어린아이였으며
천둥벌거숭이에 탄핵해서 치워버리고 싶은 흉물이었습니다.


결국 당신은 그 벽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되레 그 벽에 줄을 타고 올라서 내 발 아래 벽이 있노라 포효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벽은 부엉이바위보다 높았고
당신은 그 높이만큼 아프게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벽은 지금도 나를, 우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당신이 못견디게 불쌍한만큼, 나는 당신이 떨어져 내렸던 그 벽이 서럽습니다.
오르지도 못할 벽을 섣불리 깨려 한 놈의 말로를 비웃는 느물거림이 귀를 찢고
당신을 등 뒤에서 밀어놓고도 이제 더 이상 내 손에 피묻히지 말고
그냥 너희들은 벽 아래에서 놀라고, 그러면 싸울 일도 없지 않겠냐고
땅에 떨어져 곤죽이 된 당신의 뜻이 그런 거라고   점잖게 훈계하고 자빠진
짐승같은 귀족들을 보면 눈에 핏발이 백두대간으로 섭니다.


당신이 이렇게 당했는데, 당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피눈물을 흘려야 한단 말입니까.  
당신의 과거를 부인하는 듯 행동했을 때 당신을 비판했던 사람들
그들이 힘을 얻고, 당신만큼 사람들 앞에 사랑스럽게 다가서려면
대관절 어떤 우여곡절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당신의 영정 앞에서 나는 그 암담함이 서러웠습니다.  
갈수록 깊어만 가는, 차가와져만 가는, 무서워져만 가는 그 암담함이 싫었습니다.
당신조차도 용납하지 못했던 그 무정하고 냉담한 빙벽에
뭇 사람들의 체중을 감당할만큼 믿을만한 피켈을 박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웬만큼 올라갔다 싶은 빙벽에서 추락한 당신의 깨진 머리 앞에서
저는 서러웠던 겁니다.  


이제 영결식이 며칠 남았습니다.
아마도 그 기간 동안 당신 역시 여기 붙들려 계시리라 믿습니다.
다 놓고 가시라고 당신의 부인께서 호소하셨지만
아직은 다 놓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저 따위는 치부하고라도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노무현 개인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당신으로 상징되었던 상식의 세상
잔머리 굴리고 눈치 보지 않아도, 돈 거리 멀고 빽 아주 없어도
노력한만큼 인정받고, 최소한의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보장받는
그런 상식의 세상을 위하여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서 주도록 밀어 주시지 바랍니다.

이제 숨이 끊어진 당신에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미워하던 사람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당신만을 사랑하노라 목놓아 울 것이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서
당신이 가끔 보였던 오류와 실수를 극복하고
당신이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을 일구는데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제발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있기에 행복했다는 고백에 동의합니다.  
지금까지 내 위에 군림했던 대통령의 이름 가운데
가장 친숙하고 가장 매력 넘쳤던 대통령이 당신이라는 것을 저 역시 고백합니다.
그러나 당신만한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라는 추모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당신 또한 부림 사건 당시 말도 안되는 고문을 당한 대학생들을 보면서 변신하였듯,
시대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여 그들에게 몸을 맡깁니다.
당신을 기리는 것도 의미는 있겠으나,
결국 당신을 밟고 넘어가는 것이 역사의 진보이며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바였음을 우리 모두가 함깨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안 뒤에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을 노짱이라 부르면서 북받치는 감정을 이제 가슴에 돋는 칼로 자릅니다.  
노짱님 안녕히 가십시오.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일진대
이제 흙으로 돌아갈 이 땅 어딘가에서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를 축복하고 때로는 발을 구르며 꾸짖고,
속상한 사람들이 술 한 잔 먹고 넋두리할 때 그 뺨을 어루만져 주는 일렁임으로
사람들 마음을 다듬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꿈꾸던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상식적이며 정의로운 세상이 동터 왔을 때,    
당신이 대통령 직을 벗어던지고 고향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던졌던 그 흥겨운 말을
우리 함께 외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야 기분 좋다..........."



대통령님 안녕히 가십시오.    굿바이 노짱


http://www.mediamob.co.kr/sanha88/Blog.aspx?ID=234205
IP : 173.3.xxx.3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 글
    '09.5.26 9:26 AM (115.129.xxx.194)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그분의 뜻을 이어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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