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화는 지는데"
제 5 부
수술을 했을 때, 의사는 아내의 위장 중 아직 암이 침투하지 않은 부분에 구멍을 뚫어 옆구리로 연결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이 장치를 통해서 아내는 약국에서 파는 죽처럼 생긴 음식을 섭취할 수 있었다. 이 음식은 고 칼로리 식품으로 하루에 몇 번만 주입해 주면 기본적인 일상 생활은 할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종교인을 소개 받았다. 어차피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신의 도움이나, 신의 도움을 통한 불같은 뜨거움의 은사를 받아 몸이 하루 아침에 신통하게 치료되기를 바랬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아는 사람의 기도는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정말로 병이 낫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의 기도 소리는 천지를 진동할 것처럼 컸으며 귀신을 쫓아내는 내용이 많이 포함된 기도다. 그리고 소위 방언이라고 하는 이상한 말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쳐댄다. 이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한 바탕 기도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좀 가벼워지기도 했지만, 극심한 피로로 아내는 몸살을 알았다.
우리 집에 자주 왔던 신도는 ***이라는 목사를 따르는 교회 사람들이었다. 그 교회는 이단이라고 누가 말했다.
이단이건 말건 병만 낫게 하면 되지 무엇을 따지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효험이 있는 일이라면 못할 일이 없었기에, 그 목사의 신통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강서구에 있는 어떤 체육관에서 일요 예배가 있었다. 물론 아내와 나는 그런 곳은 처음 가 본다. 체육관을 가득 채운 수 천 명의 신도들이 음악에 맞추어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실내는 영화 촬영을 하는 것처럼 대낮보다도 더 밝았다. 드디어 *** 목사가 등장했다. 그는 흰 양복을 입고 흰 구두를 신고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천천히 걸어서 앞으로 나왔다. 그곳에 모인 신도들은 마치 예수의 재림을 보는 듯이 숨을 멈추고 그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신도들을 휘어 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약 1-2시간 진행된 기도회에서, 이목사는 신도들의 숨소리까지도 조절할 만큼 놀라운 카리스마로 신도들을 웃기고 울리며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손짓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기도식이 진행되었다.
기도가 끝난 후, *목사가 머리를 짚어주는 은사를 받기 위해, 환자들이 줄을 서서 그의 앞을 통과했다. 목사의 은사를 받아 병이 나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라고 했다. 걷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되고, 암환자가 낫게 되고, 허리가 구부러진 사람이 펴졌다고 했다. 눈먼 사람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귀가 들리게 되었다고 했다. 이 정도로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면, 예수에 버금가는 사람일 것이다. 온갖 환자, 특히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구름처럼 *** 목사 앞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도 그의 앞으로 갔다. 병만 낫는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병만 낫는다면 평생 그 교회에서 심부름이라도 하라면 할 심정이었다.
드디어 아내 차례가 되었다. * 목사는 아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악마와 병마가 물러가라고 크게 소리쳤다. 잠시 뒤, 걸어가는 아내 앞에 하얀 물수건이 떨어졌다. 어떤 사람이 주워서 아내에게 건네 주며 이것은 *목사가 땀을 닦던 수건인데 하필 아내 앞에 떨어졌으니 아내에게 대단한 길조의 표시라고 했다. *목사가 쓰던 것이면 무엇이든지 신통력이 있다고 했다. 나는 아내가 정말 병이 나으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아내에게 그 수건을 주었을까? 아내는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목사님 덕분에 병이 나으려나 보다"라고 말했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는 말을 증명해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으며, 죽음 앞에서 조그만 희망이라도 끊을 놓지 않으려는 처절한 인간의 본능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그 집회에 참석했을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아내를 위한 것이라면 내 몸을 맡겨보자."라는 생각으로 기도를 했다. 사실 나의 머리 구조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 믿어지지 않는 머리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무아지경에 이르도록 큰 소리로 기도를 했고, 통성기도가 좋다고 하여 일부러 울면서 기도도 해 보았다. 큰 소리로 기도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방언이라고 하여 아무 것이나 큰 소리로 말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나왔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그것이 방언이라고 했다. 사실 그 말은 다른 사람이 기도할 때 내는 소리를 그냥 따라 해본 것인데, "~ 스키"와 같은 말이 많이 들어가는 말이다. 나의 이러한 노력은 "남편이 저렇게 기도를 하니, 남편의 기도 때문에라도 내가 병이 낫겠구나."라는 생각이 아내에게 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병세는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또 새벽 기도가 좋다고 하여 새벽에 동네에 있는 교회에도 나갔다. 새벽에 교회에 나가니 이미 약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예배를 보고 있었다. 찬송가를 부르고 목사님의 말을 듣고, 여기서도 각자 통성 기도를 했다. 통성기도가 몸을 뜨겁게 달구어 암을 녹여 버릴 지도 모른다는 내 나름의 "과학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통성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내에게는 통성기도가 맞지 않든지, 또는 여기에 회의적인 생각이 있었덨 듯 했다. 며칠을 다니다가 아내는 새벽기도도 그만두었다.
사당동에 한 아주머니가 암을 잘 고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넓은 방에 암 환자가 6명 정도 있었다. 이 아주머니는 주로 환자를 안마하여 낫게 한다고 했다. 돈은 받지 않으나, 성의 표시로 얼마간의 성금을 내면 된다고 했다. 어디가 아픈지를 묻더니, 아픈 곳을 중심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이 아주머니는 보통의 아주머니처럼 보였고, 보통의 말을 하는 평범한 시골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안마를 받으면, 신통하게 병이 낫는다고 사람들은 순번을 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그녀의 안마가 통증으로만 느껴졌다. 결국 두 세 번 가다가 말았다.
유럽에서는 암 환자를 미즐토라는 식물에서 나온 액을 주사하여 치료하는 법이 개발되었다고 했다. 황성주 박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하는 요법인데 충무로 어딘가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박사의 진찰을 받고, 미즐토 주사액과 그리고 주사기를 구입해왔다. 집에서 일정한 기간 주사를 맞고 다시 와서 혈액을 조사하여 백혈구 수가 증가했는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의사의 지시대로 내가 주사를 놓았다. 집에서 며칠 간 주사를 맞고 오라는 날짜에 다시 그 병원으로 가서 백혈구 수를 조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백혈구 숫자는 줄어 들었다. 의사는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다고 말하면서 계면쩍어 했다.
그러다가 작은 처제의 결혼이 있었다. 우리가 말렸지만, 아내는 작은 처제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옆구리에 난 상처를 붕대로 잘 묶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하고, 원피스를 입었다. 매일 환자복과 툭툭한 바지만 입는 것을 보다가,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것을 보니 아내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이 떠 올랐다. 우리는 처녀 총각 때 같은 학교에 근무했었다. 언젠가 눈이 오는 날 아침 학교에 등교하는 중 같이 가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갔는데, 그 당시의 아내가 멋있는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먼 훗날 우리가 결혼한 것이 그 날 아침 같이 걸어간 것이 씨앗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떻든 그 날 행사가 그녀가 참석한 마지막 가족행사가 되었다.
이런 저런 방법이 효과가 없고, 세월은 지나갔다. 아내의 통증도 점점 심해졌다. 아내는 점점 눈에 띄게 몸이 말라갔다. 결국 아내가 마지막으로 시도해 볼 항암 주사를 맞을 날이 가까워 왔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항암 주사에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항암 주사를 맞으러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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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화는 지는데"(8-5)
... 조회수 : 294
작성일 : 2009-01-08 23:25:46
IP : 121.134.xxx.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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