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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화는 지는데" (8-4)

... 조회수 : 317
작성일 : 2009-01-08 03:09:00
목련화는 지는데"

제 4 부


아내의 수술 성공여부는 수술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에 달려있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본래 의도한 대로 식도와 창자를 연결하는 수술을 한 것이요, 그 시간이 짧다면, 이미 너무 암이 퍼져 있어서 다시 덮고 일찍 끝내는 것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긴장된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시간이 좀 지나서 아내의 이름이 수술 완료 환자의 명단 전광판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아내는 적어도 다섯 시간 뒤에나 수술실에서 나와야 했다. "왜 이래? 왜 이렇게 일찍 나오지? 일찍 나오면 실패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해? 어떻게 하지? 나, 어떻게 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겨울에 목욕탕에 들어가면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리듯 갑자기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죽다가 살아나온 아내에게 수술이 잘 됐다고 말해 주었다. 아내는 정말이냐고 물었다. 정말이라고 말했다. 그냥 그 말만 계속했다. 얼마 뒤 의사는 나를 불렀다.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해보려 했으나 암이 이미 식도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에까지 번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열었다가 다시 덮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아내가 있는 병실로 왔다. 처제가 아내 옆에서 아내를 돌보고 있었다. 나는 말도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얘야. 네 형부는 기분이 좋으면 저렇게 왔다갔다 한단다. 내가 수술이 잘 되어서 저러는거야."라고 아내가 처제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복개했다가 어쩔 수 없어 다시 덮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내에게 알릴 것인가? 왜 이리 하늘은 무심한가? 나는 허탈인지, 울분인지, 분노인지 모를 응어리를 가슴에 안고, 계속 병원 문을 들락거렸다.  

저녁 회진 시간이 되었다. 의사는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복개했다가 다시 덮었다는 사실을. 의사가 간 후, 나는 아내를 껴 안고 울었다. 아내도 울었다. 아내는 정해진 절차와 시간에 따라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도 나도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는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적이라는 것은 반드시 있는 법이며, 그 기적은 내 아내를 위해 준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내는 암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거기에 있는 환자는 모두 암 환자다. 어떤 환자는 대장에 암이 발생하여, 수술한 후 항문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 옆구리에 대변이 모이는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친구 문병 왔다가, 시험 삼아 검사를 해보았는데, 위암으로 판명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초기이므로 간단한 수술로 목숨을 건진 대단히 운 좋은 사람이다. 어떤 처녀는 자궁암에 걸려서, 애기 못 낳을 걱정만 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상당히 퍼져 있어서 풍전등화에 처한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기도 했다.  

환자들 중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도 있었고, 어촌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다. 학생도 있었고, 선생님도 있었다. 심지어는 의사의 부인도 암으로 사경을 헤맸다. 암은 출신이나 직업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아무에게나 저돌적으로 공격해 오고 있었다. 멀쩡해 보이던 환자가 하루, 이틀만에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갔다. 죽은 숫자를 하나 더 늘려주기 위해, 죽은 자의 침상에 새로운 예비 사자(死者)가 제발로 걸어오기도 하고,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기도 했다. 암병동은 총성없는 전쟁터요, 피비린내 없는 저승사자의 한판 놀이터였다.  

어떻든 아내는 수술한 상처가 나으면 일단 집으로 갔다가 다시 와서, 마지막 수단으로 항암치료를 받기로 했다. 사실 아내의 경우, 항암 치료라는 것은, 죽어가는 환자를 그냥 둘 수 없어서, 그저 해보는, 치료아닌 치료 시험에 불과했다.    





수술의 상처가 아물자, 항암 주사 맞는 날짜를 정하고, 아내는 퇴원하여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짐 보따리를 트렁크에 싣고, 아내를 차 뒤에 앉히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병이 나아서 퇴원을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냐만, 다시 이곳에 와서 엄청난 시련을 겪을 아내를 생각하니 운전대가 손에서 헛돌았다.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형벌은 "너는 이제 희망이 없다"는 형벌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거나, 적어도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희망이나 조짐이다. 겉으로는 자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산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왜 아내라고 모를 것인가? 아마 자기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말이라도 그렇게 해보는 것일 게다.

잠실을 거쳐 외곽 순환도로에 접어들어 안양으로 향했다. 아내가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백미러에 보인다. 부석부석한 머리, 수척한 얼굴, 근심에 찬 눈 빛, 나는 아무런 말 없이 차를 운전했다. 아내는 계속 차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침묵이라는 어색함을 덜어보고자 음악을 틀었다. 아내는 음악을 끄라고 했다. 아무 말이 없이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더니,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쿵쿵 거리며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왔다갔다 했다. 아내는 나를 오라고 하더니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는 다른 사람이야. 옛날의 내가 아니야. 나도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할거야. 당신도 각오해." 그 말을 하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이 방 저 방을 또 돌아 다녔다. 아내를 끌어 안고, "나보고 어쩌라고 이러는 거야. 당신 좀 진정해."라고 말하면서 나는 울었다. 아내는 가만히 있더니 또 중얼거리며 왔다 갔다 했다. 자기 앞에 한 발짝식 다가 오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 앞에 극도의 공포에서 오는 무의식적인 또는 자포자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  

병원에 있을 때는 문제가 생기면 간호사를 부르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런데 이제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 문제를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걱정도 되고, 겁도 나고, 나도 뭐가 뭔지 몰랐다. 다행이 집에는 처제와 장모님이 함께 계셔서 세 명 중 한 사람은 잠을 자지 않고 아내를 보살폈다. 우리는 쥐 죽은 듯이 큰 숨도 쉬지 못하다가, 아내가 잠든 사이 잠깐 눈을 붙였다. 당장 날이 밝으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치도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감으로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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