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좀 다녀올 일이 있어서,
남편과 아들, 이렇게 셋이서 늦은 귀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는 길에 저녁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얘기가 나왔는데,
아들은 그냥 들어가서 짜장면이나 시켜먹자 하고, 남편은 곰탕이나 비빔밥을 포장해가지고 가서 먹자는 거에요.
저야, 어느쪽이든 편하니까 둘이 결정하라고 가만히 있었는데요,
그 두가지가 그리 마땅하지는 않은 거에요.
끝까지 부자(父子)가 의견의 일치를 볼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하는건데..
제 발등을 스스로 찍는 도끼병이 있는 제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합니다.
"그럼, 들어가서 밥이나 하고 돼지불고기 있는 거 볶아서 제육볶음 덮밥 먹읍시다!" 했습니다.
물론 우리 집 남자들이야 좋다고 하죠.
들어오자 마자 옷부터 얼른 갈아입고, 쌀 씻어서 압력솥에 안쳐 가스불에 올려놓습니다.
무침용 콩나물 한봉지 있던 거 얼른 씻어서 끓는 물에 데친 후 파 마늘 소금 참기름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칩니다.
김치냉장고 안에 얌전하게 들어있던 돼지고기 고추장 불고기는 꺼내서 한입 크기로 자르고,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설탕을 더 넣어서 간을 세게 합니다.
채소는 양파, 양배추, 당근 등 집에 있는 거 전부 꺼내서 썰구요.
볶음팬에 기름두르고 썰어둔 돼지고기부터 볶다가 절반 이상 볶아졌을 때 채소들을 넣어서 볶습니다.
밥 위에 얹어 먹을꺼니까, 물기 없이 보송보송하게 볶아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밥에 비비려면 국물이 좀 있는 것이 나으니까요.
.
밥이 다 되면 넓은 접시에 밥 담고,
콩나물도 담고,
제육볶음도 담고..
사실 저는 밖에서 와플을 한장 먹고 왔는데 영 소화가 안되고 부대끼는 것 같아서 밥을 안먹으려 했어요.
밥 딱 한숟갈에 콩나물 조금, 제육볶음 아주 조금 얹었더랬는데요,
이걸 먹으니까 부대끼던 속이 편해지는 것 같아서, 밥을 더 먹었다니까요.
압력솥 바닥에 살짝 눌어붙은 눌은밥에 물부어서 숭늉까지 만들어 먹었습니다.
제가 조금 움직이니까,
남이 만든짜장면이나 곰탕이나 비빔밥보다 더 알찬 한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