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제가 곶감을 너무 좋아해서,
앉은 자리에서 10개 가까이 먹은 적도 있어요.
예전 곶감은 지금 같은 모양이 아니라 나무 작대기에 끼워서 말린 그런 곶감이 많았는데요,
속담처럼 곶감꼬치에서 곶감을 살금살금 빼먹는 재미가 꽤 쏠쏠했더랬습니다.
나무개비 하나에 곶감 10개씩, 그런 나무 개비가 10개,
이렇게 곶감을 한접 단위로 팔았는데요,
엄마가 곶감 한접 사다놓으시면 엄마가 보는데서, 혹은 엄마가 안볼때 몰래 꺼내먹어,
곶감귀신이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곶감 볼수가 없어요. 아, 그리운 옛날 곶감 이여~~.
암튼 곶감을 그렇게 좋아하던 어느날,
제가 대학을 막 들어갔을 때인데, 그때 막 강남에 입성한 친척언니가 집에 놀러오라오라 하여 갔습니다.
그 먼 친척언니는 이쁜 그릇 자랑과 함께 곶감쌈을 주었습니다.
그 언니는 그때 한창 불어닥친 강남 개발붐을 타고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에 한발 담그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던 때이죠.
그러면서 옷이며 집안의 가구는 물론, 식탁의 메뉴나 그릇, 또는 간식까지 예전의 그 언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 속의 곶감쌈은 곶감쌈 그 자체라기보다는 좀 거창하지만 신흥 부호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후 곶감쌈을 보면 그때 그 언니가 자신이 일군 부를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으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인 친척동생에게,
"이건 여름에 쓰는 그릇 세트고, 이건 겨울에 쓰는 그릇 세트고..."하는 자랑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납니다.
암튼, 언제고 곶감쌈을 만들어봐야겠다 했었어요.
그러다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곶감쌈 레시피를 보니, 저는 평생 못하겠더라구요.
왜냐하면, 호두의 속껍질을 벗겨서 쓰라는 거에요.
호두의 속껍질을 벗기다니!!! 헉~~~
사람의 뇌처럼 생긴 호두의 그 요철심한 면의 속껍질을 어찌 벗긴단 말입니까?
저처럼 급한 사람이 어떻게 차분하게 앉아서 호두 속껍질을 벗길 수 있겠어요, 안 먹고 말지.
집에 호두도 있고, 곶감도 있는데, 단지 호두 속껍질 벗기는 거 무서워서 십수년동안 벼르기만 하다가,
드디어 오늘 해봤습니다.
물에 소금을 좀 넣어서 팔팔 끓이다가 호두를 넣어서 삶았어요.
그리고 이쑤시개로 속껍질을 벗겨봤는데, 잘벗겨지는 건 잘 벗겨지고, 잘 안벗겨지는 건 잘 안 벗겨지고,
벗길 수 있는 만큼 벗겨서 배를 가른 곶감에 넣어 김발에 말았습니다.
해보니 참 별 것도 아닌데...이걸 그렇게 오래 벼르기만 했다니..
이젠 심심할 때 심심풀이로 곶감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