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에 날 잡아서, 하루에 3군데 절을 돌면 좋다고 해서,
윤달이 들 때마다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요,
몇년전에는 집 근처에서 멀지않은 흥국사, 진관사 그리고 삼천사를 다녀왔어요.
그때도 좀 멀리 있는 고찰들을 돌고 싶었으나 여의치않더랬어요.
이번에는 몇달전부터 5월7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충청권의 삼사를 돌리라 맘 먹고 있었습니다.
5월7일이...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만 90세가 되는 날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생일을 뭐 그렇게 챙기냐 싶으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제 맘이 그래요, 올해 돌아가신지 만 5년, 탄생 90주년...그래서 인지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암튼, 계획은 대전국립현충원과 동학사, 마곡사, 수덕사 였습니다.
지난번 아버지 기일에 대전 다녀오면서 얼핏 얘기를 꺼내니,
친정오빠가 흔쾌하게 "같이 가자, 내가 운전해줄게" 하는 거에요.
어제 새벽 6시15분쯤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셋이서 출발했습니다.
아침 7시도 안된 시간부터 차가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서부간선도로를 거쳐서 서해안고속도로의 한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목적지를 바꿨습니다.
동학사는 현충원에서 5분거리라 언제든지 갈수있는 절이고,
마곡사도 현충원 다녀오면서 가본 절이고, 또 역시 다음에 현충원 다녀오면서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절인지라,
어머니가 추천하시는 간월암과 마애여래삼존상, 그리고 몇년전부터 제가 노래를 부르던 예산 수덕사엘 가기로 했습니다.
간월암은 작은 섬에 지어진 작은 암자입니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줄을 당겨서 움직이는 작은 배를 타고 가야하는 곳입니다.
저희가 갔을 때는 마침 물이 빠져서 걸어서 갈 수 있었어요.
좀 아쉬웠던 건, 해무가 심해서 바다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요,
바다 안개도 걷히고, 물도 가득 들어오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마애석불을 좀 좋아합니다.
마애석불이 있는 절들을 좀 많이 좋아하는데요,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을 제가 그동안 보아온 마애석불 중 최고였습니다.
그저 마애석불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찾아갔는데요, 가보니 국보 84호인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있는데 은근히 힘이 드는데요, 올라보니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중앙의 본존불인 석가여래입상, 사진 왼쪽의 제화갈라보살입상, 그리고 오른쪽의 미륵반가사유상이 바위에 새겨져있는데요, 돌에 새긴 섬세한 조각이며, 또 부처님의 미소가 참 좋았습니다.
마침 문화해설사 선생님께서 먼저온 관람객들에게 해설을 해주고 계셔서 저도 같이 들을 수 있었는데요,
삼존불의 앞쪽으로 약간 숙여져 있어 비가 와도 부처님이 젖지않구요,
또 해가 드는 아침에는 세분 부처의 미소를 모두 볼 수 있으나 오후에는 그늘이 져서 잘 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간 시간은 오전 11시 40분쯤이었는데 그늘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애여래삼존상을 보고 나서, 근처에 있는 개심사로 향했습니다.
저는 마애여래삼존상이 절에 있는 건줄 알았는데, 여기에는 절이 없더라구요.
개심사에 가보니, 여긴 아직 왕벚꽃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했던 꽃구경을 제대로 했습니다.
첨엔 개심사는 안 들르려고 했는데 마애삼존여래 앞에서 절도 한번 제대로 못한데다가,
어머니께서 "개심사 유명한 절이야!" 하시길래 발을 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고찰들은 거의 꿰고 계시는 울 엄마도 이곳 개심사에는 못와보셨데요.
가보니, 들르지 않고 그냥 갔더라면 정말 후회했을 뻔한...아주 예쁜 절이었습니다.
다만, 이곳저곳 보수중이라서 좀 어수선했지만...
아무 사전지식 없이 다녀온 이곳이 충남 4대 사찰 중 하나래요.
(충남 4대 사찰이 어디 어딘지 찾아보니...찾을 수가 없네요..ㅠㅠ...아시는 분?? )
백제 의자왕때 창건되어 고려 충정왕때 중건되었으며, 조선 성종때 다시 중건했다고 하는데요,
가람양식이 제가 자주 가보던 여늬 절과 사뭇 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절은 예산 수덕사였습니다.
수덕사는 10여년전, 서해안 고속도로가 한창 건설중이던 당시에 제가 운전해 다니며,
남편과 충청도 일대를 여행할때 가보았는데, 당시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남편과 말다툼같은 걸 할때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당신 그러면 난 수덕사로 들어가 불목하니라도 한다!" 했던 곳이에요.
그런데 제가 너무 오랜만에 간 탓인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뭐랄까 당시에는 엄숙한 분위기를 지닌 절이었는데 어제는 국민관광지 같은 느낌!
암튼 이곳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초파일 백등도 하나 달았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즐비한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산채비빔밥 한그릇씩 먹고 부지런히 현충원으로 가니,
오후 4시30분.
대전국립현충원 문 닫는 시간이 5시인줄 알고 부랴부랴 가보니, 오후 6시까지라는 거에요.
사실 삼사(三寺)를 돌고 내려가면서 카네이션 바구니도 사고, 과일도 몇가지 사고,
생일케이크도 사서 큰 초 9개 꽂아 '생신 축하합니다~~' 노래도 부르고 싶었는데,
살만한 곳을 지나쳐오지도 않았고, 케이크를 사려고 번화가로 들어설 시간적 여유도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현충원안에 있는 매점에서 흰색과 붉은색 카네이션 조화 다발과,
캔커피, 캔콜라, 과자 몇봉지를 올렸습니다.
노래는 큰 소리로 불렀구요, 한시간 정도 아버지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도 피우고, 늙은 고명딸이 재롱도 떨었지요.
올라오는 길에...친정어머니께 어버이날 저녁대접을 미리 했습니다.
오늘은 오빠 내외가 한다고 하니까, 저는 미리 해야죠.
회 한접시와 조개찜 한 냄비를 먹고 올라왔는데, 밤 11시가 다 되어오는 시간에도 서울은 어찌나 길이 막히는 지...
어머니 모셔다 드리고, 오빠도 집 앞에서 내려주고 집에 와보니 밤 12시가 거의다 되었습니다.
18시간만의 귀가였습니다.
이제 5월에 꼭 하고 싶었던 일들, 꼭 해야만 할 일들은 모두 다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할 일을 다 못하면, 늘 뭔가 얹혀있는 느낌인데요, 이제 후련합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게 서비스인지 민폐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우리 모녀의 행복한 한때 사진 한장 올립니다. 사람보다는 꽃을 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