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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꽃게가 최고여~~ [꽃게찜]

| 조회수 : 11,952 | 추천수 : 82
작성일 : 2007-09-08 20:21:17


제가 국민학교 5학년땐가, 6학년땐가..암튼 그 무렵...
저희 가족들이 대천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습니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시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라 전용 지프차가 있긴 했지만, 사사로이 가족들 피서갈 때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옷가지에 이부자리에, 들통이며 석유풍로 등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기차 버스 타고 도착한 대천해수욕장!
아마도 가는 길이 퍽 고생스러웠을텐데도...어린 마음에는 좋기만 했었습니다.

어느 민박집에 묵으면서 하루 종일 물놀이하고,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거 먹고...
그러던 중 아침부터 물놀이를 하다가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지르는 거에요.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아직 눈은 뜰 수 없고, 코와 귀부터 깨어났는데,
코는 맛있는 냄새를 맡느라 벌름거리고,
귀는 우리 엄마 아부지가 다정하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정말....그 때의 그 행복감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음악처럼 달콤한 부모님의 이야기소리와 너무 맛있는 냄새에 얼른 눈을 비비고 일어나보니까,
엄마랑 아버지께서는 우리 삼남매가 낮잠을 자는 동안 들통 가득 꽃게를 쪄놓으셨어요.
요즘은 대천 바닷가에 고깃배가 들어오지 않지만 40년전쯤에는 해수욕장까지 고깃배가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자는 새벽에 엄마 아버지께서 고깃배에 가서 사오신 꽃게를 간식으로 쪄주신 것이었습니다.
제 평생, 이날 먹은 꽃게보다 더 맛있는 꽃게는 먹어본 적 없습니다.
걸신 들린 것처럼 먹어대는 우리 삼남매를 그저 빙그레 웃으시면 바라보던 우리 부모님들...



어제밤 문득 kimys가 랍스터가 먹고 싶다는 거에요.
속으로는 '뜬금없이 웬 랍스터?!' 했습니다.
왜냐하면, TV의 음식프로그램에서 걸핏하면 랍스터가 나오니까,
kimys, "전세계 랍스터는 다 한국으로 들어오나? 웬 랍스터를 저렇게 먹나?", 뭐 이러면서 혀를 끌끌 차곤 했거든요.
그러던 사람이 자려고 누워서는 랍스터 타령이니...이건 꼭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낼 농수산물시장에 갑시다. 랍스터 사러.."이러고 잤습니다.

오늘 낮, 마포 농수산물시장에 갔었어요. 랍스터 사려구요. 아무리 비싸도 산다 싶었습니다.
전에 두어번 사다가 쪄먹은 적도 있고, 나가서 사먹은 적도 있지만, 사실 좀 부담스런 음식이긴 합니다.
랍스터 킹크랩 대게, 이런 걸 전문적으로 파는 집엘 갔더니,
랍스터 1㎏에 3만5천원이래요. 4인 가족이 먹으려면 적어도 2㎏짜리는 사야한대요.
갈 때는 '어쩌다 한번인데 까짓 랍스터..값이 얼마든 사고야 만다, 10만원이 되겠지, 뭐'이러면서 갔는데..
막상 1마리 7만원이라고 하니까 사알짝 결심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읽었는지 kimys는 "그만 두자"하고 저를 잡아끄는데...
못이기는 체 하고 랍스터 가게를 나왔습니다.
우리 식구 나가서 외식하면 거창하게 하면 10만원 한장은 금방 깨지는데도,
랍스터 한마리 7만원은 간이 떨려서요..^^;;

대신 꽃게를 샀어요.
살아있는 꽃게, 오늘 시세는 1㎏에 1만5천원. 아주 큰걸로만 골라 담았더니 4마리 담았는데 3만원 이래요.
랍스터 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지않아도 며칠전 kimys가, "요즘 꽃게철이냐"며 꽃게찜 먹고 싶다고 하던 차에 잘됐죠.
돌아오는 길에 다짐해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먹고 싶다고 하는 꽃게찜은 그냥 찐 거지?? 콩나물넣고 맵게 한거 아니지??"

저녁에 꽃게를 김오른 찜통에 쪘습니다.
얼마나 큰지 긴변의 지름이 37㎝나 되는 접시를 거의 다 차지하네요.
kimys랑 저랑은 밥도 안먹고, 저녁으로 꽃게 한마리씩 해치웠습니다.
어머니는 드시고 싶지 않다고 하고, 아이들은 없고...

살이 어찌나 꽉 찼는지..정말 맛있었어요.
대천해수욕장에서 먹었던 그 꽃게의 맛은 아니지만,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랍스터 안사고, 꽃게 산 것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헤헤...아주 기분 좋은 저녁상이었습니다. ^^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안개그림자
    '07.9.8 8:29 PM

    제가 정녕 처음 인가요?
    저녁 어릴적 엄마가 해주시던 꽃게찜이 넘 그립습니다 ~

  • 2. 김명진
    '07.9.8 8:30 PM

    얼마전에 먹긴 했는데 또 땡기네요. 곧 저희 결혼 기념일과 제 생일이 오니..파뤼 함 해볼까 하네요.

  • 3. 안개그림자
    '07.9.8 8:34 PM

    떨리는 맘 진정도 못한채 글을 쓰느라 맞춤법도 틀리고 ^^;;
    TV에서 그렇찮아도 꽃게가 나오길래 제철인가부다 하면서 조만간 저도 먹으려했는데
    예전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이 안나드라구요...
    혜경쌤의 꽃게의 색이 너무 곱네요~
    아! 먹고파라~

  • 4. mimi
    '07.9.8 9:39 PM

    4등. 난 찜보다 게무침이 더 좋은데 요새 오염된 바이러스로 못먹게하네요.
    역쉬 익혀 먹어야 안심이죠

  • 5. 잠비
    '07.9.8 9:47 PM

    납작 엎드린 꽃게의 먹음직한 자태!!!

    이불까지 싸들고 가진 않았지만 수십 년 전, 아이들이 어렸을 적 공주에서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타고 산을 넘어서 대천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새벽에 먼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잡아온 싱싱한 생선을 바닷가에서 회로 떠 주었지요. 가끔 그때의 휴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덩달아 기분좋은 밤입니다.^^

  • 6. 5년차
    '07.9.8 9:57 PM

    6등?이네요^^ 이런 적 처음~~
    이른 저녁을 먹고 지금껏 티비 보고, 컴 보고 하고 있습니다.
    배가 조금 허전해지는 시간이네요
    맛있는 꽃게찜, 눈으로만 맛보고 갑니당~

  • 7. 꽃순이
    '07.9.8 10:10 PM

    벌써 가을 꽃게철인가요?

  • 8. 맘이야
    '07.9.8 10:55 PM

    저희도 어제 꽃게 사다 쪄먹었어요.
    숫게 키로에 만원이더라구요.
    3키로 사다가 세식구 아주 포식했네요.
    암게는 아직 알이 차지 않았다구,9월말쯤 되야 꽉찬다구 하시네요.
    그땐 가격이 많이 오르겠지만 게장한번 담글려구요..

  • 9. 꽃게장
    '07.9.8 10:59 PM

    요즘 대천에 꽃게 많이 잡힌 답니다
    양념게장 담그면 넘 맛있어요

  • 10. Pinkberry
    '07.9.9 1:07 AM

    잘하셨네요!!^^
    랍스터는 비싸기만 하지 정작 먹을 수있는 부분은 꼬리밖에 없쟎아요
    미국에서는 랍스터 꼬리만도 살 수있는데...^^

  • 11. 루시
    '07.9.9 7:40 AM

    어머 마포 농산물 시장 꽃게 가격이 싼편이네요
    며칠전에 전어만 사왔는데
    오늘 꽃게사러 출동해야겠어요 ^^

  • 12. 코코샤넬
    '07.9.9 8:46 AM

    꽃게 고녀석 아주 때깔 좋습니다.
    오늘 마포농수산물시장으로 떠야겠어요.
    키로에 15,000원 이라니...세상에...가격 너무 착합니다.

  • 13. 도현맘
    '07.9.9 2:11 PM

    선생님 글을 읽으니 어릴적 엄마가 해주신 꽃게찜이 생각납니다.
    가끔 꽃게를 사다 쪄먹어도 웬지 그 때 먹던 그 맛이 안나는거 같아요.
    오늘따라 엄마생각이 간절해집니다.

  • 14. 탱글이
    '07.9.9 10:12 PM

    저도 20몇년전 속초의 어느 해수욕장 민박집서 새벽에 고깃배들어오는데 가셔
    사오신 털게를 쪄 주시던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돌아가신지 7년이 지났지만 낼이 아버지 생신이라 더욱 생각이 나나봐요.
    처음먹어보는 털게가 조금 징그러웠지만 그 맛은 잊혀지지 않아요.

  • 15. 연주
    '07.9.10 9:39 AM

    진짜 벌써 가을 꽃게철인가요?

    저도 선생님 덕택에 어릴적 생각 잠시 했습니다.
    어릴적 부모님이 우리 사남매 데리고 여행 많이 다녔던 기억 때문에 아직도 가끔 행복해 합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엄마 구두신고 나왔다 다~~ 똑같은 파라솔이라 미아됐던 기억, 포항 바닷가에서 꽃모자 쓰고 사남매 쭈루룩 서서 찍은 사진, 바닷가에서 튜브 4개 이어서 끌어 주던 아빠~

    다른 식구들 다 모여 사는데 아빠만 우리곁에 없군요^^
    언제나 마지막은 아빠 생각이군요 아부지 하늘에서 잘 계시죠? 보고 싶다 -.ㅜ

  • 16. 오로라 꽁주
    '07.9.10 10:36 AM

    우리도 어제 시댁에서 꽃게찜을 먹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침만 꼴딱 거려야 하나~~ 했는데 의외로 넉넉히 하셨던걸요
    사실 요즘 꽃게 값이 많이 떨어져서 그렇지 작년엔 1관에 20만원이었거든요 ㅋㅋ
    여튼 저도 간만에 아주 실~~컷 먹고왔어요.

    혜경 쌤~~ 정말 맛있쬬? 전 랍스타보다 꽃게가 열배 좋아요^^

  • 17. 모밀이
    '07.9.10 6:01 PM

    저도 어릴적 생각나요..
    엄마아빠 도란도락 이야기하시는 소리.. 고소한 전냄새.. 밖엔 빗소리도..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눈감고 한참을 그러고 있던 기억....
    그 행복감.. 저도 기억이 나네요.. 잊고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신기하죠..

    우리 아빠도 지금은 하늘에 계세요.. 아빠..보고싶어요...ㅠ.ㅠ

  • 18. 아네스
    '07.9.12 3:51 PM

    꽃게가 저를 울리네요..-.-
    남편은 랍스터보다 꽃게를 좋아하는데, 이 글 봤으면 얼릉 한마리 사서 쪄줄 것을.
    중동간 지 삼개월 만에 휴가 받아 귀국해서 열흘 보내고 어제 다시 들어갔거든요.
    열흘 내내 돌아당기느라 집 밥 많이 못 먹여 보냈는데...
    먹음직한 꽃게 보니 남편 생각이 나서 눈물이 찔끔..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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