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좀 선선해진다 싶으면,
재봉틀, 아니면 레이스용 코바늘, 아니면 수틀을 꼭 붙잡아야할 것만 같은 ,
붙잡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것이 제 고질병 중 하나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부터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근지러운 손 참지 못하고, 기어이 수 바늘을 잡고 말았습니다.
멀쩡하게 저녁밥 잘 해먹고, 설거지까지 잘 마치고는, 결국 참지못하고, 깊이 넣어두었던 살림들 다 꺼냈어요.
수실, 수틀, 지난번에 사놓은 헝겊들,
그리고 지난 겨울에 놓다가 다 놓지 못한 수와,
수만 놓아두고 마무리를 하지 않은 용도불명의 수까지.
쉬워 보이는 걸로 고른다고 골랐는데...놓고 보니 그냥 그렇네요.
참, 미적 감각도 없어요.
자수책에 이쁜 도안도 많은데..., 실통에 수실도 많은데...
또 하나 문제는 이렇게 수를 놓기는 했는데,
뭘 할거라는 생각없이 그냥 놓기만 했다는 거!
이걸로 뭘 해야할지...^^;;
아, 그러고 보니, 저녁 준비하기 전에 유자차도 만들었군요.
올해 유자가 흉작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아주 작은 유자가 한개에 5백원일정도로, 값이 비싸네요.
일단 다섯개만 사들고 들어왔습니다.
작년에 어쩌다보니 유자차를 못만들어서, 지난 겨울에는 유자차 구경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차로도 마시지만, 음식에 여기저기 넣어야하는데 없으니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다섯개만 썰어서 올리고당 넣고 만들어 병에 담고, 병의 입구는 유기농설탕으로 설탕마개를 했어요.
그랬더니 작은 꿀병으로 딱 두병이네요.
그러고보니,
저는 겨울부터, 봄, 여름이 지날때까지는 베짱이처럼 삽니다.
겨울은 추워서 꼼짝 안하고, 봄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밖으로 싸돌아다니며 놀고,
여름은 덥다고 쳐져있고,
달랑 가을에 반짝, 이것저것 일을 하는데요, 딱 지금부터 김장할때까지입니다.
요때만 개미처럼 일하고, 나머지는 베짱이...
행주도 박고, 수도 놓고, 레이스도 짜고, 유자차도 만들고, 모과차도 만들고, 음식도 이것저것 만들다가,
아마도 추워지면 겨울잠 자는 곰마냥 잠만 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