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친정어머니의 [만두]

| 조회수 : 10,086 | 추천수 : 87
작성일 : 2004-02-29 17:57:09

저와 만두에 얽힌 사연, 기억하시죠?

저를 가져 만삭의 몸인 친정엄마가, 오빠를 데리고 몸풀러 친정에 가셨대요.
겨울이면 으레 김치만두를 해드시던 외할머니는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어서 만두를 준비하셨대요.
돼지고기가 많이 든 만두 먹고 힘내서 아이를 쑥 낳으라고...
만두소 준비하고, 밀가루 반죽하고, 할머니랑 이모들이랑 둘러앉아서 만두를 빚다가, 어머니는 그만 진통을 하셨고, 애써 빚은 만두는 드셔보지도 못하고 그날 밤 절 낳으셨대요.

그런 '만두의 추억' 때문인지 제 생일이 돌아오면 어머닌 늘 만두를 빚으셨지요.
속 털어서 잘 다진 다음 국물을 쏘옥 짜낸 김치에 숙주나물이랑 돼지고기랑 두부랑 넣고...
수동 이탈리아 파스타기계까지 장만하셔서 손수 피까지 만들어가면서 만두를 빚으셨어요.
피를 찍어내던 전용 스텐공기가 눈앞에 선하네요.
정말 많이 만두를 빚었는데..., 몇백개씩 빚었어요. 우리 삼남매가 엄청나게 먹었을 뿐 아니라, 두고두고 먹고 싶어해서 냉동실에 얼리기까지 했거든요. 그래도 엄마는 힘드는 줄 모르고, 즐겁게 하셨던 것 같아요.

자식들 다 짝채워놓으시고도, 겨울이면 한두차례 만두를 빚어놓고는 아들 며느리 몽땅 불러 먹이시는 게 엄마의 연중행사죠.
먹는 것 뿐인가요, 먹고 나서는 몇십개씩 싸주시고...
만두 빚는 날, 저만 빠진다고 아쉬워 하면서 냉동했다 몇십개씩 주시곤 했는데, 작년에는 어머니가 골절상을 입으셔서 못했고, 그 전해도 웬일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암튼 안하셨던 것 같아요.

어제 오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잠시 친정에 들렀어요.
너무 잘 쒀진 도토리묵, 저희만 먹으려니 맘에 걸려서 싸가지고 갔죠. 제가 쑨 묵 드신 후부터는 도토리묵 못 사드시겠다잖아요.
가보니 부엌은 만두 준비로 어지럽더군요. 벌써 김치는 다져두셨고, 두부를 짜시려고 하시더라구요.

"엄마 만두, 하는구나"
"그래, 먹고 갈래?"
"아냐, 가야지"
"그럼 언제 올래? 남겨놓을께..."
"글쎄"

묵만 전해드린 채, 부엌에 일거리가 잔뜩 널려있는 걸 보고 돌아서려니 발길이 안떨어지는데, 어머니는 제 맘을 읽으시곤 "만두피 샀어, 일도 아냐, 그리고 이제 애들 올텐데,뭐. 빚으면서 먹으면서 하면 돼, 괜찮아" 하시네요.
아버지는 "저녁에 다시 와. 와서 만두 먹어"하시구요.
그렇다고 갈 수 있나요? 매인 몸이...

오늘 아침에 한의원에서 침맞고 전화를 걸어봤더니, 어제 저녁, 오빠네 식구들이랑 동생네 식구들이랑 모두 와서 빚어가며 삶아 먹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몫은 냉동실에 넣어두셨구요.
그래서 잠시 들러서, 얌체처럼 만두만 싹 집어가지고 잽싸게 왔죠.
무임승차죠, 엄마 만두 빚는데, 하나도 보탬은 안드리고...


저흰 만두를 이렇게 먹어요.
아주 큼직하게 빚어서, 물에 삶아서 초간장에 찍어먹죠.
삶기 전에 엄마가 주문을 받아요, "혜경이 몇개?"
그런 저희 삼남매는 먹기 내기라도 하듯, 10개, 20개, 25개 막 이렇게 욕심을 부리죠.
다른 집들은 만두국을 끓인다고 하는데 저흰 한번도 만두국으로는 안먹어봤어요.

원래 엄마가 만두피를 만들어서 빚으면 더 만두가 커지는데, 기존의 찹쌀만두피를 사다가 빚은 탓에 평소 '김원옥 스타일'보다 사이즈가 훨씬 작네요.
오늘 점심에 만두를 제 양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먹어뒀어요.
왜냐하면요, 엄마가 자꾸 늙어가시니까, 이제 몇해나 더 엄마가 만두를 해주시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팔목도 시원치 않은 노인이, 자식들 먹이겠다고...그래도 그게 다 엄마 마음이겠죠?
만두피를 사다가 빚는 만두라면 저도 할 수 있을텐데..., 내년에는 제가 해서, 엄마 좀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아니, 생각해보니, 연중행사로 만두를 빚는 건, 엄마가 드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모두 모여서 북적이며 같이 빚고, 같이 먹는게 즐거우셔서 하는 거니까, 제가 대신 해드릴 수 있는 일도 아니네요.

아, 점심에 만두를 잔뜩 먹은 탓에 아직 배가 안 고픈데...그래도 나가서 저녁을 해야겠죠?
관련 게시물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candy
    '04.2.29 6:35 PM

    저도 얌체짓많이하고 살아요~저번 집들이에 엄마가 잡채며 이것저것해서 가져오셨더라구요~여기저기 주고도 남아서 아직도 맛있게 먹고있죠! 친정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어요~언제나 마음뿐인 딸의 맘을 엄니는 아실라나~

  • 2. 변진희
    '04.2.29 6:47 PM

    선생님 글에 댓글다는거 조금 쑥스러워요..아이의 선생님만 보면 괜시리 긴장되는것처럼요
    저희 친정두 크게 빚어서 물에삶아 초간장에 먹어요
    각자 접시에 하나씩 가져가서 간장뿌려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먹는맛....진짜 짱이죠
    근데 시댁은 만두국 아니면 찜솥에 찌더라구요
    삶아먹는건 모르고요..
    같은 만두라도 속도 조금씩 틀리구 먹는법도 틀리구...재밌어요
    남은일요일 잘 보내세요...

  • 3. 거북이
    '04.2.29 7:00 PM

    만두는 정말이지 홈메이드가 맛있죠!
    집집마다 재료가 조금씩 달라도 집에서 만드는 만두야말로
    그 정성에 힘입어 특미중에 특미인 것 같아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 4. 혀니
    '04.2.29 8:55 PM

    저희시댁도 만두 많이 해먹죠..친정에서두 많이 했었구요...
    근데 시댁서 빚는 만두는 왠지 맛이 없어요...빚는 것두 재미없구...시엄니랑 저만 빚어서 그런가...딸이 없으니 저보고 딸같다구 하시지만..(시누없는 걸 천운으로 알고 살라더군요..친구는)
    복작복작 동생들이랑 빚던 만두맛이 그립습니다..아...김치만두 먹구싶다...

  • 5. 아임오케이
    '04.2.29 8:58 PM

    선생님 글 보니까 저두 만두 만드는거 이제 배워야겠어요.
    딸이 둘이나 있으니, 엄마 만두에 대한 추억을 주어야하지 않겠어요.

  • 6. 쭈야
    '04.2.29 9:31 PM

    내용은 제쳐두고 저 만두 왜그리 맛나 보입니까? 피가 만두속에 찾 달라붙어 자글자글 한 자태가.. 쓰~읍

  • 7. jasmine
    '04.2.29 9:39 PM

    만두피가 무지 얇은데, 어디 거죠?
    저, 필 받으면, 당장 만들어 냉동실 채웁니다.
    제발, 자극하지 마시옵소서....ㅠㅠ

  • 8. 파프리카
    '04.2.29 9:41 PM

    어쩜 저희 친정엄마랑 똑같아요..
    저도 오빠랑 남동생이랑 내기를하면서 그큰만두를 10개,15개이렇게먹었었어요..배탈이나도록

    저희엄마는 빨간신김치에 돼지고기, 두부, 숙주 , 당면까지 정말 친정엄마엄마가 만들어주신 촌스런만두가 이세상에서 제일 맛있는것같아요...

    결혼해서 시댁에갔더니 시댁식구들 허연고기만두 2~3개씩먹고 배부르다고해서 깜짝놀랐잖아요...

  • 9. 물고기
    '04.2.29 9:49 PM

    저희 친정도 고향이 개성이라, 겨울 김치만두 거의 죽음입니다..^^
    함 만들기 시작하면 손큰 저희엄마.100개에서 거의200개 만듬니다
    뜨끈할때 초간장 찍어먹으면,,,몇개먹은지도 모르고````````으그ㅡ배불러..미칩니다..히히
    그래도 또먹고잡다..이젠 엄마 늙으시니 제가해서 가져가야죠~쪼르르 친정에..ㅎㅎ

  • 10. 이론의 여왕
    '04.2.29 10:30 PM

    우리 외할머니는 8학년 4반이신데, 지금도 혼자서 그 만두를 다 빚으십니다.
    정통 평양만두... 심심한 이북식 김치에, 소고기(울 할머니, 돼지고기 싫어하심), 두부, 숙주...
    속을 어찌나 꼭 짜시는지, 만둣국 푹푹 끓여도 퍼지지 않고... 신기할 지경이에요.
    그리고 여지껏 만두피도 직접 반죽해서 일일이 동그랗게 손으로 떼어서
    밀대로 밀어서 만드시죠. 다행히 팔은 아직도 건강하세요.
    손녀딸들 따로 산다고, 올해도 어김없이 만두 잔뜩 빚어서 냉동했다가
    저희한테 앵겨주시곤 합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우리 할머니는 네모난 보자기 싸듯이 빚으시는데, 그 솜씨와 속도는 아무도 못 따르죠.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해마다 만두 빚어주셔야 할 텐데...
    정말 집집마다 만두에 얽힌 이야기는 참 많은 것 같아요.

    김원옥 여사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 11. scymom
    '04.2.29 10:45 PM

    저 만두 킬런데,,,,맛있겠당 쩝..
    만두 킬런데 만두 만들기 귀찮아서리,,,,사서 먹어요^^;;;
    친정엄마가 목 디스크 조금 나으신지 얼마 안됐거든요.
    딸래미가 만들어 드리면 좋으련만, 만두 만들 시간에 돌아다니자 주의라서.
    날 잡아서 함 만들어 볼까요.,
    친정엄마도 가져다 드리고 시어머니도 가져다 드리고,,ㅎㅎ

  • 12. 경빈마마
    '04.2.29 10:53 PM

    군침만 뚝뚝...정말 만두는 먹어도 먹어도 맛나요...

    전 엄두를 못냅니다...워낙 일이 많아서...후후후 파프리카님 넘 웃겨...

    저도 저 정도 크기면 엄청 먹어야 되는데....언제 만두 만들어 먹기 벙개안해요??? 반장~!!

  • 13. 물안개
    '04.3.1 12:18 AM

    저도 오늘 친정에서 떡만두국 먹고 왔는데....
    맛이 일품인 엄마표 만두, 한그룻 가득 먹고 왔답니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만두는 엄마표 만두가 최고!!!!!!!

  • 14. orange
    '04.3.1 12:37 AM

    저희 엄마께서 해주실 때도 빚는 동시에 삶아서 먹어가며 만들었어요.
    그렇게 먹다보면 몇 개 먹었는지 가늠이 안되고...
    저두 엄마표 만두가 생각나네요....

  • 15. 솜사탕
    '04.3.1 6:44 AM

    저희집도.. 할머니가 일일이 손으로 경단처럼 따로 반죽 떼어서 피 한개씩 방망이로 밀어서 만드세요. 만두 만드는 날은... 거의 하루종일 만들죠.
    큰 다라이 2개 정도로 속을 만들고...
    냉동실에 못넣고, 바로 바로 삶아서 먹어가면서요...
    집안일 안도와주는 못된 딸이자 손녀이지만.. 만두만큼은 군소리 없이 앉아서 빚어요.
    제가 만두 만드는 행사를 미리 알았다 싶으면.. 한다라이 만들것을 두다라이 만들게 되지요. 지금도 집에서 만두 만드는 날은... 새언니에게서, 엄마에게서 연락이 와요.
    미안(?)하다고도 하시면서요...
    정말.. 가족만이 느낄수 있는 '정' 인것 같아요.

  • 16. sca
    '04.3.1 2:56 PM

    저희집도 만두킬러들만 살아요 ㅎㅎㅎ
    엄마가 자식들 오면 만두해주시죠...
    뭐 해줄까? 하면 모두 다 만두요~ 하죠 ㅎㅎㅎ

    일인당 몇십개씩 먹죠...
    저희 큰올케 처음 시집와서 저희 만두 먹는것 보고 놀라더군요
    저음에는 만두 만들주도 몰랐는데 요즘은 눈 깜짝도 않하고 잘 만들죠... ㅎㅎ

  • 17. 방랑고양이
    '04.3.1 4:48 PM

    잉~~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어요.
    일 하는 것 같지 않게 언제나 뚝딱 뚝딱 음식을 해내셨던 엄마가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만두였죠. 막내동생은 물에 빠진 만두를 싫어해서 막내 것만 튀겨주고 나머지 식구들은 혜경님네 처럼 물에 삶아서 초간장 찍어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누가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싸준 김밥, 엄마표 손만두 이렇게 대답하는 제 자신을 느낄 때마다 콧날이 찡하답니다.

  • 18. champlain
    '04.3.1 5:09 PM

    일밥 읽고 저도 저렇게 만들려고 했는데
    아직은 비율이 않 맞는지 맛이 별로...
    저희 친정어머님도 만두 참 맛있게 하셨는데..
    선배님 글 읽으니 담에 한국 가서 먹으면 왠지 눈물이 막 나올 것 같아요...

  • 19. 김혜경
    '04.3.2 1:25 AM

    글을 쓰는 저도, 글에 '엄마'라는 단어만 나와도 글 쓰면서 눈물 찍어냅니다.
    엄마가 자꾸 늙으시는 것도 서럽고,더 잘 못해드리는 것도 서럽고...애틋하기만 해요, 엄마가...

  • 20. 국진이마누라
    '04.3.2 3:28 PM

    저도 어제 엄마아빠가 얼마후면 돌아가실까.. 10년 20년? 이렇게 베개닢에 눈물적시며 잠들었지요. 고생만 하면 사셨는데 호강 한번 못시켜드린거 생각하면 넘 맘 아프지요... 이 세상 인생사가 가엽지않고 불쌍하지 않은 인생은 없는거 같아요. T.T

  • 21. 울보
    '04.3.19 4:28 PM

    엄마...꼭 우리엄마식 만두군요...엄마..ㅠ.ㅠ..잉잉잉..엉엉엉....

  • 22. 로렌
    '04.5.28 8:36 AM

    어머나 ....우리친정에서 만두 해먹는거랑 샘님 친정이랑 똑같아서 반갑네요 ...ㅎㅎ
    아직 어떤집에서도 글케 먹는거 못봤거들랑요 ....중국식물만두하고는 다른건데 ...
    양념간장 맛있게 만들어서 물에 삶아 먹는게 지금 생각해도 젤 맛나게 먹는법인거같아요...
    근데 사람들은 고걸 모르고 국 아님 찌기 아님 튀겨서 먹던데 물에 삶아 맛난 간장에
    먹는게 만두맛을 제일 잘 느낄수있는거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날짜 조회
497 탄력받은 날!! [샤브샤브] 16 2004/03/03 8,703
496 부엌 서랍 청소놀이 21 2004/03/02 9,820
495 3월의 첫 날에...[유자청 드레싱] 15 2004/03/01 8,516
494 친정어머니의 [만두] 22 2004/02/29 10,086
493 어머니 귀가 기념 저녁 18 2004/02/27 7,759
492 아주머니 열전 (下) 17 2004/02/26 9,719
491 아주머니 열전 (上) 10 2004/02/26 7,887
490 사진을 속이랴!! 22 2004/02/25 6,742
489 삐곡 빼곡 빈 깡통... 29 2004/02/24 7,842
488 스크랩북에서 본 [김치찐빵] 16 2004/02/23 6,589
487 무엇의 재료일까요? [콩나물 국밥] 19 2004/02/21 7,524
486 불(火) 닭 매운찜 [닭매운찜] 23 2004/02/20 8,169
485 간단하지만, 대단한 밥상 31 2004/02/19 11,345
484 그냥 詩 한편 19 2004/02/18 4,797
483 오늘 저녁... 20 2004/02/17 7,104
482 이제는 오리고기!! 13 2004/02/16 5,725
481 점심으로 먹은 [해물밥] 21 2004/02/14 8,538
480 불어라 떡 바람!! [설기떡] 25 2004/02/13 8,087
479 오늘은 새우파티!! [찐 새우] 12 2004/02/12 8,018
478 초콜릿 대신 은행, 좀 우스운가요? 16 2004/02/12 5,672
477 굴비조림? [굴비찜]? 10 2004/02/11 7,123
476 moon식 [매운 홍합볶음] 23 2004/02/10 9,393
475 평범하지만, 시원한 [콩나물찌개] 16 2004/02/09 9,166
474 내일 꼭 닭고기 드세요 23 2004/02/07 7,265
473 카레맛 [춘권] 18 2004/02/06 6,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