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은, 제가 오늘 어디서 떡을 배웠습니다.
삼색무리병과, 커피와 잣가루를 넣는 설기떡을 배웠는데...
2그룹으로 나눠서 진행된 수업에서 유독 제가 만진 떡만 두가지 다 문제가 있었습니다.
커피와 잣가루를 넣은 떡은 물을 적게 내려 잘 안쪄졌고, 삼색무리병은 치자물이랑 승검초 가루가 덜 들어가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면서 절대로 떡을 다시는 만들지 않으리라 굳은 다짐을 했습니다.
한번 찔 수 있을 만큼 싸준 쌀가루는 호박죽이나 쑤리라 했죠...
그랬는데, 만들어온 떡을 가족들에게 주니, "진짜 맛있다"는 거에요...나름대로는 실패작인데...
하루종일(심지어 떡 수업중에도) 아프다고 빌빌 하다가, 정말 새우탓인지, 아니면 야행성이라서 그런지 밤 11시가 넘어가니까 팔팔해지네요.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가지고온 쌀가루로 유자설기를 하기로 맘 먹었습니다.
부엌에 나가 도구를 찾아보니 제대로 가지고 있는게 하나도 없더군요. 대나무찜통, 수업에 쓴 건 27㎝짜린데 제가 가지고 있는 건 20㎝짜리고, 커피필터도 동그란게 없고, 시루받침도 없고, 체도 수업시간에 쓴 것과 같은 것 없고.... 핫케이크가루로 쿠키를 굽겠다고 설치다보니 밀대도 없고, 유산지도 없던, 몇달전 황당사건과 같은 경우더라구요. 그래도 '무대뽀 정신'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대나무찜통 작은 거 쓴다.
커피필터 잘라서 대충 깐다.
베보자기 물에 짜서 바닥에 깐다.
체는 대충 스텐체 아무거나 쓴다.
이러고는 일단 유자를 잘게 썰었어요. 그리곤 쌀가루에 물을 내리기 시작했죠. 적당히 된 것 같아서 거기다가 유자를 섞었더니, 아뿔싸...가루가 다시 응얼응얼해지는게 아니겠어요? 다시 체에 내리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에잇 그냥 찌자' ,'누군 떡배우느라 쌀 반가마니를 썼다는 데 쌀가루 6컵 정도 망치는 것야 새발의 피지, 뭐' '쪄지기만 하면 숟가락으로 퍼먹든, 먹기만 하면 되잖아' 이런 배짱으로 떡을 안쳤어요. 마치 무지개떡이라도 하듯 고운 가루 한켜 깔고, 유자건더기 때문에 응얼응얼한 것 한켜 깔고, 다시 고운 가루 한켜 깔고...이런식으로 ...
하다보니 찜통이 작은건지, 쌀이 많은 건지, 쬐끔 남을 듯 하더라구요. 남기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가운데를 수북하게 쌓았죠. 선생님은 위를 평평하게 골라주라고 했는데, 전 오히려 언덕처럼 쌓았아요.
그리곤 대나무찜기랑 지름이 꼭 같은 냄비에 물을 끓여 김이 오른 다음 쪘어요. 지름은 좁은데다가 높아서 잘 쪄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25분을 쪘는데, 잘 쪄진 것 같더라구요. 5분 뜸들여서 완성시켰는데...
정말 너무너무 잘쪄진 거 있죠?!
고운 가루 부분과 유자건더기가 들어있는 부분의 질감이 좀 다르긴 하지만 아주 잘쪄졌어요.
한조각 잘라서 kimys랑 나눠먹었는데...유자가 들어간다고 설탕가루를 넣지 않았더니, 떡 전체에 단맛이 모라자긴 하지만 그래도 유자의 쌉싸름한 맛과 백설기가 잘 어울러져 먹을 만 하네요.
핫, 이러다가 떡에 재미붙여서, 몇 시간 전의 결심을 잊고는,
밤이면 밤마다 내일 아침 먹을 떡을 찌는 건 아닌지...
내일 당장, 도구 장만하러 방산시장으로 뛰어가는 건 아닌지...
그래서, 떡까지 찌느라 신세가 더 고달파지는 건 아닌지...
암튼, 저에게까지 떡바람이 불고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