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초고추장에 무친 냉이나물 [냉이 초고추장 무침]

| 조회수 : 7,055 | 추천수 : 297
작성일 : 2003-01-10 23:29:29
저희 집 낼모레 제사에요. 시아버님 제사요.

일년에 단 한번 있는 제사, 차례 두번까지 합쳐봐야 일년에 세번 큰 일을 치르는 거니까 별건 아니죠. 여자가 남의 집에 시집와서 그 집 식구가 됐다면 이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런데 이성적으론 그래도....
아직도, 이 나이가 돼도, 벌써 제사나 차례가 열흘 앞, 1주일 앞에 닥치면 증세가 나타나죠. 이름하여 명절증후군. 가슴이 벌렁벌렁 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열이 나기도 하고...이런 증상들이 중복되기도 하고, 하나만 나타나기도 하고...
제가 생각해도 참 우스워요. 여자 치곤 대범한 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인데도 제사나 차례를 앞두면...
하여간 이번 시즌엔 우울증 비슷한 증세가 가볍게 나타났어요. 명절증후군 증세는 시장을 보는 걸 고비로 사그라들고 막상 '그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해치우죠.그래서 동서들이 "큰엄마는 큰 일 치르는 게 재밌나보다"는 진실이 왜곡된 얘기를 듣곤하죠.

하여간 그래서 오늘은 시장을 갔었어요. 제수 마련하러요.
아침 9시쯤 집에서 나서서 kimys 출근시키고 곧장 코스트코를 잠시 들러서 일산 하나로클럽을 거쳐서 홍은동 인왕시장까지~~. 집에 들어가니까 2시대요, 장 빨리봤죠? 한군데서 해결하지 왜 3군데냐구요? 그게 제 병이에요.

kimys는 토요일날 자기랑 둘이서 보자고 했지만 머리 허연 남편, 손에 물건 들리는 게 싫고,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도 "장 언제 보냐?"는 전화 한 통화 없는 동서들로 인해 늘 그랬지만 또 심정이 상하는 내 자신이 싫고(이젠 면역이 될 때도 됐는데)....
맏며느리가 되서 당연히 장보는 걸 가지고 왠 생색 싶으시죠? 여기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그만 다음 기회를 미루구요....


하여간 현금자동지급기에서 수십만원을 찾아가지고 세군데서 펑펑 장을 보고 나기 명절증후군- 우울증이 사라져버렸어요.
제수 마련하면서 반찬거리도 사서 이것저것 해먹고..., 알탕 끓이고, 봄동겉절이하고, 냉이나물하고..

오늘 특히 성공먹은 반찬이 냉이나물이에요.
하나로클럽에 가면 이런저런 나물들 데쳐서 파는 코너가 있어요. 오늘은 딴날보다 더 여러가지를 마련해놓고 시식하도록 하고 있더라구요. 판매원 아주머니 쭈구리고 앉아서 연신 참나물 냉이나물 취나물 고춧잎나물 등등 무쳐내는데, 특히 냉이나물이 일품이구요.
"아주머니 이거 어떻게 하면 이 맛이 나요?"
아주머니  옆에 쭈구리고 앉으면서 물었더니 아주머니 말씀이,
"고추장하구요, 파는 초고추장을요, 반반씩 섞구요, 다진 파마늘 넣구요, 그리고 다시다 아주 조금..."
그거더라구요, 시식코너의 나물은 그렇게도 맛난데 내가 하면 영 제 맛이 안나는 그 이유가 조미료 탓이었던 거예요. 매운탕에는 화학조미료를 아주 조금씩 쓰면서 나물에는 안쓰거든요. 왜 그랬는지 몰라요...

용기를 내서 데친 냉이나물을 사가지고 왔어요.
냉장고에도 시판 초고추장이 있었지만 그냥 고추장을 꺼낸 김에 식초랑 설탕이랑 넣고 새콤달콤매콤한 초고추장을 만들고 거기다 다진 파 마늘, 통깨, 그리고 소고기맛 감치미를 아주 조금, 우리 조카딸 어거지로 흘리는 눈물의 반의 반만큼 넣었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맛이 훌륭할 수가...

오늘 저녁 앉은 자리에서 Sold Out!!
이런 일이 없었어요. 늘 남고 쳐지고 해서 결국은 누렇게 변해버린 나물 한종지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푹 집어넣곤 했곤데...
이젠 용기를 내서 초고추장으로 무치는 토속적인 반찬도 자주 상에 올리래요. 감치미 그렇게 조금 넣는데 건강에 무슨 큰 지장이 있을라구요, 외려 나물 반찬 맛나게 많이 먹는게 보약이죠, 안그래요?
이렇게 데친 냉이 초고추장에 무쳐먹고는 기분이 확 풀어져버린 저, 단세포동물인 것 같죠?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권성현
    '03.1.11 12:12 AM

    행님,오늘(10일)욕보셨어요.(힘드셨겠다는 경상도 버전)
    정말 주부들이라면 '명절 증후군'은 누구나 있는것 같아요.
    저역시나 그즈음이 되면 으례히...
    저희 시댁은 제사 나물 무칠때 소고기 다시다보다 조개 다시다를 넣어요.
    이유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주욱 그래왔어요.
    어느해인가 다시다를 안넣고 무쳤는데 영 감칠맛이 안나더라구요.
    아마 조미료맛에 길들여져 있는가봐요.

  • 2. 체리
    '03.1.11 12:55 AM

    선생님 힘드셨겠어요.
    맏며느리는 동서들 불러 군기 잡고 그러지 않나요?
    (주위에서 들은 얘기,저는 며느리가 저 혼자라)

    그리고 알탕 끓이는 방법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언젠가 요리책 보고 따라 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같은 경상도라도 이쪽 지방은
    "성님, 욕 봤심데이"

  • 3. 꽃게
    '03.1.11 9:28 AM

    저두요 담주 수요일 아버님 기일이예요.
    장을 몇군데서 보시는 병이 있으시다구요?
    그럼 저도 환자네요. ㅋㅋㅋㅋㅋㅋ
    벌써 1차 장보기 했구요.
    동서들 전화, 연락 그거 기대하고 있으면 실망하고, 속상하고 그래요.
    전날 아침 일찍 와서 일이나 같이 해주면 고맙다고 생각하죠 뭐.
    그래도 형님들이 맘씀씀이가 다른 것 같아요? 그쵸? ㅎㅎㅎㅎㅎㅎ

  • 4. 1234
    '03.1.11 9:47 AM

    꽃게님 자유게시판에서 애타게 누가 부르고 있습니다.
    빨리 가보세요.

  • 5. 원교남
    '03.1.11 11:50 AM

    냉이 참 좋아하는데 손질하기 짜증나서 안해 먹거든요. ^^;;;;
    손질해서 삶아서 파는 냉이 먹을만 한가요.
    흙같은거 안나오는지...
    다른 나물들은 삶은거 잘 사는데요,냉이는 엄두가 안나서요.
    그런데요, 그럼 장 혼자 다아 보시고 일도 혼자 다아 하시는거에요?허거걱....
    전 처음부터 철판 떠억 깔구 요고조고 사와아,,,알았쮜이? ^^했거든요.
    저보다 더 경험 많은 이웃 형님은 어차피 했다는 말 들을거
    뭐든지 똑같이 나누라고 하시지만, 차마 그리는 못하구
    제가 일거리 조금 더 차지하긴 하지만요.
    그래두,,,요즘 세상에..맏이라구 더 권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옛날엔 제사권이라고 했지요.
    제사라는 의무만큼 권리도 따라 오니까.
    세상이 변하면 사람들 인식도 변해야 하는데...
    이상 제 개인적인 허접 생각이였음다^^

  • 6. lynn475
    '03.1.11 12:14 PM

    제사.

    미리미리 메뉴 짜고 그래도 늘 한두가지 빼묵고,

    제삿상 차리다 말구 울신랑 뭐 사러가고.......

    맏형님두 아닌데 제사를 지내는 나.

    날 이뻐해주신 울 아버님은 덜 힘들으라구 무친김에 제사지내라구 추석 담날 돌아가셨구요.

    썩 살갑지 않으셨던? 울시엄니께선 덥디 더운 바쁘디 바쁜 한여름에 돌아가셨답니다.

    그래서 제사 지낼때마다 한분은 더 생각나구 한분은 더 나를 힘들게?하시는거라구 탱탱거리는 나.

    제사 지내시는분들 진짜 그리 마니 힘들지는 않지요?

    아주 쪼끔은 힘들기는 하지만 .

  • 7. 김소영
    '03.1.11 12:58 PM

    저도 어제 제사 지내고 왔어요.
    시댁증조모제사..
    울시댁은 아버님으로부터 3대를 여전히 지내고 있죠.. --;;
    결혼초엔.. 밤 11시에 지냈어요.. --;;;
    요즘이야 좀 나져서.. 어제는 10시쯤 지냈구요..
    전 결혼전엔 울할머니 제사밖에 없어서.. 그것도 몇번 안지내고 시집왔기때문에..
    1년에 몇번씩 제사 있는게.. 낯설었었죠.
    그래도 첨엔 전 얻어와 먹는 재미로 별로 힘든줄도 몰랐는데...
    이제 몇년 되니깐 정말 꾀 납니다. ^^;;;;
    아직 울어머니께서 다 하시고.. 전.. 전이나 부치고.. 설겆이하고.. 간맞추기하고.. 상차리는 정도인데...... 히궁.. 어젠 정말 힘들더라구요.
    너무 허무하기도 하구요..
    오후부터 밤까지 열~~쒸미 음식은 했는데.... 제사 시간은 우찌 그리 짧은지...
    절하는 시간은 별로 안걸리고.. 그-_-깟 음식 만드는 시간은 그리 힘들고..
    밥먹다.. 참으로 허무해지더라구요.. ^^;;;
    아... 그 제사 나중에 다 물려받게 될텐데......... 지금.. 생각만해도.. 짜증이 휘몰아쳐요.. ㅠㅠ
    ^^;;;;;;

  • 8. 윤희연
    '03.1.11 5:57 PM

    제사 이야기할 군번은 아직 아니지만...(시댁에는 제사가 없걸랑요...)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한마디만 보태려구요...
    왜 제사맡은 집 며느리만 며느리가 되는지...하기 싫은 거야 자기들 만큼이나 싫은 건데...
    맨날 입으로만 떼우는 사람도 싫지만 ...그 꼴난 전화한통도 안하는 큰엄마땜에 더 많이 속상한
    기억이 있네요...(지금이야...엄마도 그냥 내식대로 하련다 하시지만...)
    딸 된 입장이라 그런 거겠죠...

  • 9. 김수연
    '03.1.11 11:28 PM

    난 딴건 하나두 귀에 안들어오구, 어떻게 하면 세군데 시장 돌 수 있는지 그게 젤 궁금해요.^^
    인왕시장까....와....

  • 10. 김혜경
    '03.1.11 11:36 PM

    평소의 쇼핑과는 다르니까요, 어디가서 뭘 사겠다는 계획이 서 있으니까...게다가 코스가 절묘했죠. 코스트코에서 양화대교 건너서 강변북로 해서 이산포 분기점으로 나가서 하나로클럽, 돌아오는 것도 자유로로 해서 내부순환도로로 해서 홍제진출로로 나오니까...
    저희집에서 자유로 타고 가면 하나로까지 30분 정도면 끽~~.

  • 11. 김소영
    '03.1.23 4:49 PM

    진짜 유익한 정보였어요
    저도 냉이나물 참 좋아하는데 늘 무침에는 실패했거든요
    오늘 집에가서 한번 해봐야 겠어요
    맛있는 냉이나물 먹을생각을 하닌까 벌써부터 군침이 도네요

  • 12. 잠비
    '06.5.17 1:08 PM

    초고추장 만들 때, 설탕 좀 넉넉히 넣으면 조미료 없어도 됩니다.
    냉이 무침, 맛있겠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날짜 조회
3347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233 2013/12/22 32,978
3346 나물밥 한그릇 19 2013/12/13 22,599
3345 급하게 차린 저녁 밥상 [홍합찜] 32 2013/12/07 24,898
3344 평범한 집밥, 그런데... 24 2013/12/06 22,273
3343 차 한잔 같이 드세요 18 2013/12/05 14,901
3342 돈까스 카레야? 카레 돈까스야? 10 2013/12/04 10,916
3341 예상하지 못했던 맛의 [콩비지찌개] 41 2013/12/03 14,987
3340 과일 샐러드 한접시 8 2013/12/02 14,099
3339 월동준비중 16 2013/11/28 17,016
3338 조금은 색다른 멸치볶음 17 2013/11/27 16,721
3337 한접시로 끝나는 카레 돈까스 18 2013/11/26 12,477
3336 특별한 양념을 넣은 돼지고추장불고기와 닭모래집 볶음 11 2013/11/24 14,808
3335 유자청과 조개젓 15 2013/11/23 11,834
3334 유자 써는 중! 19 2013/11/22 9,710
3333 그날이 그날인 우리집 밥상 4 2013/11/21 11,216
3332 속쌈 없는 김장날 저녁밥상 20 2013/11/20 13,686
3331 첫눈 온 날 저녁 반찬 11 2013/11/18 16,483
3330 TV에서 본 방법으로 끓인 뭇국 18 2013/11/17 15,742
3329 또 감자탕~ 14 2013/11/16 10,501
3328 군밤,너 때문에 내가 운다 27 2013/11/15 11,565
3327 있는 반찬으로만 차려도 훌륭한 밥상 12 2013/11/14 12,918
3326 디지털시대의 미아(迷兒) 4 2013/11/13 10,955
3325 오늘 저녁 우리집 밥상 8 2013/11/11 16,523
3324 산책 14 2013/11/10 13,361
3323 유자청 대신 모과청 넣은 연근조림 9 2013/11/09 10,822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