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숭어 매운탕]을 끓이며...

| 조회수 : 7,302 | 추천수 : 384
작성일 : 2002-11-25 21:55:10
요즘, 제가 긴축재정을 꾸리고 있어요. 책 나오고 나서 아무 생각없이 방만하게 살림을 꾸린 탓에 엥겔계수가 높았던 데다가 꽉꽉 차있는 냉동고 안도 좀 비울까 싶어서 시장엘 잘 안가죠. 그덕에 '시장에 가보니'나 '식당에 가보니' 구경하신 지 오래됐죠?

오늘 아침 어제 김장의 노고를 씻어내기 위해 불가마에 가면서 숭어 한마리를 냉동고에서 꺼내뒀다가 저녁에 그걸로 매운탕을 끓였어요.

멸치국물 팍팍 끓여내고, 그 멸치국물의 일부를 덜어내서 고추가루와 다진 마늘 불려 고추장처럼 만들고,
나머지 멸치국물에 숭어랑 콩나물이랑 호박이랑 파랑 넣어서 매운탕을 끓였어요. 그 숭어가 이미 간이 되있는 거라 소금은 나중에 조금 더 넣었어구요.


오늘 숭어매운탕을 끓이면서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만나서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생각해봤어요.
매운탕 거리인 숭어는 저의 작은 올케, 그러니까 책에 강미중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작은 올케의 친정아버지가 손수 낚시로 낚아올린 것을 작은 올케의 친정어머니가 머리 떼어내고 내장 발라내고 간까지 간간하게 한 다음 냉동해서 보내주시는 거예요. 참 놀랍죠??


저희 작은 올케 친정이 원래는 서울인데 지난해 사돈 어른 부부께서 피붙이 하나도 없는 100%객지인 제주도로 살러가셨어요. 제주도에서 바깥사돈어른께서는 낚시로 소일하시는데 그 노획물(?)들을 하나하나 손질해서 당신의 딸이며 아들네 보내시면서 저희 친정어머니와 저에게 까지 몫을 지어 보내주세요. 작은 올케에게는 "예림이 고모같은 사람없다"시면서...
감성돔, 숭어 쥐치 따찌 등등 '고모네' 이런 딱지가 붙어있는 꾸러미를 열어보면 정말 정성이 눈에 보이는 그런 생선들이 잔뜩 들어있죠.

사돈댁에야 그런 선물을 보낼 수도 있지만 딸의 시누이에게까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물을 보내는 사돈댁어른들, 상상이 가세요??


여기에는 배경설명이 좀 필요해요.
제 동생은 우리나라 나이로 34살에 6살 아래의 우리 작은 올케와 결혼했어요. 그게 벌써 10년전 일이네요. 경제학 박사인 제 동생은 참 특이한 조건을 내걸며 거기에 부합하는 규수를 찾았는데 그 조건이 '딸 많은 집 딸이 아니어야할 것'(딸 부잣집 딸들은 서로 친정부모에게 효도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남편들이 피곤하다는 거죠), '특정 종교가 아니어야할 것'(시어머니와 종교갈등을 벌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보자는 거였대요), 마지막으로 '맞벌이를 하지 않아야할 것'(아마도 제 누나랑 형수랑 직장생활한다고 아이들을 손수키우지 않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에게 떠넘기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에요)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이 조건중 마지막 조건에 부합하는 규수 참 찾기 어려워요. 노총각 소리를 어지간히 듣고있던 어느 가을, 우리의 강미중양이 나타난 거죠. 그것도 원래 소개팅 주인공이 다른 급한 볼일이 있는 관계로 대타로 등장했는데 그만 파바박하고 눈에 스파크가 일어난 거죠.

그래서 만난 지 6개월도 채 되지않아서 결혼을 했어요.

솔직히 처음 작은 올케를 가족으로 맞았을 때부터 이렇게 가까웠던 건 아니에요. 저도 낯가림이 좀 심한 편이라 누구랑 친해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대신 한번 가까워지면 배신이란 건 없죠.

동생은 본가가 있는 은평구 갈현동과는 멀리 떨어진 화곡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어요, 왕복 2차선 도로만 건너면 처가가 있는 곳에...
처음에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우리 엄마 막내아들 강씨집안에 뺏겼네..'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우리 작은 올케 결혼 하자마자 매일 자기 시어머니에게 문안전화를 하고, 매 주말 방문을 하는 거예요. 전 또 속으로 '지 남편이 어지간히 군기를 잡는 모양이군...'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 이 사람(자기 남편)이 새우젓찌개 먹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끓여요?"
"어머니 이 사람 고추장찌개 찾는데요?"
자기 친정어머니도 서울여자랑 음식솜씨가 자기 시어머니 못지않은데 음식만드는 거며 김치랑 간장 된장 퍼나르는 거 꼭 시댁에서 하더라구요.

'어머 얘봐라!!'이렇게 생각하고 지켜보니 그냥 의무감에서 그러는게 아니더라구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결혼을 결심한 것도 사실은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 때문에 별 고민없이 했었다고 해요. 노총각 아들이 누군가를 새로 만났는데 그 집에 집에서 딴 감을 좀 보내고 싶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작은 과일상자에 그해 감을 차곡차곡 담고 맨위는 감잎을 깔아 장식해서, 그렇게 해서 보냈는데... 바로 그 감상자로 인해서 두세번 만난 남자에게 일생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했고, 이런 가족들이라면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했다는 거죠.


사실 전 kimys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친정부모 모시고 살았을 거예요.
늘 마음속에 한자락 우리 엄마가 내 빈자리를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던 참에 이런 작은 며느리를 봤으니....제가 어떻게 이 작은 올케가 예쁘지 않겠어요. 제가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마음이든 시간이든, 아니면 조그만 물건이든, 이 작은 올케에게만은 뭐든 주고 싶어요. 저 대신 딸 노릇을 너무 잘해주잖아요.
아 그렇다고 해서 우리 엄마의 큰며느리, 제 큰올케가 잘못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큰 올케는 우리 삼남매랑 자기, 그리고 지금은 제 딸과 오빠네 큰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수님이에요. 그러니 얼마나 바쁘겠어요. 마음이 있어도 잘 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도 걸핏하면 '어머니 우리 백화점가요''어머니 우리 동대문 야시장 가요' 한대요.전 못그러는데....

하여간 우리 이 천연기념물 작은 올케는 요새도 '제부도에 새우 드시러 가세요''난지도 갈대밭 구경가요''두리랜드에 바이킹타러가요'하고 저희 가족들 나들이갈 때마다 시어머니를 꼭 챙겨요.

제가 가끔 "예, 미중아, 넌 파티에 도시락 싸가지고 가니?"하죠.
"엥, 형님 그게 무슨 말씀?"
"느네 가족끼리 좀 다니지 느네 시엄마는 왜 끼어주냐?"
"형님 전 어머니랑 가야 재밌어요. 이 사람이랑 예림이만 데리고 가면 재미없어..."해요.


오늘 제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친정자랑 하는 줄 아세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라는 참 쉬운 게 아니에요. 같이 살면 사는대로, 따로 살면 사는대로.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작은 아들인데 무슨 사정이 있어서 4년간 어머니를 모셨대요. 시어머니랑 사는 동안 위청수를 하루에도 몇개씩 달고살았는데 시어머니가 큰아들네로 살러 가는 그날로 위청수가 필요없더래요.

친정어머니와는 삐져서 며칠씩 전화를 안하다가도, 누구든 먼저 전화를 하면 그 삐짐은 눈녹듯 녹아없어지고 마는데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가끔가끔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서 마음을 괴롭게 하죠.

제게 쪽지를 보내주시거나 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중 시어머니와의 갈등에 대해 제게 말하고픈게 많은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참 어려운 관계죠. 또 어느 한쪽만 노력한다거나 희생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일단 마음의 문을 조금씩조금씩 열어가면 두루두루 참 좋아지는 것 같아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기면 친정어머니 생각해보세요.결혼전 친정엄마랑 살 때 친정엄마와도 무지 싸웠잖아요? 사람이 사는데 어떻게 갈등이 없나요?
우리 사이트에는 곧 며느리를 볼 분들도 계시죠. 앞으로 며느리 보시면 딸 생각 한번 해보세요. 우리 딸들도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때로는 싸가지 너무 없게 굴잖아요?

제가 음식을 빨리 맛있게 싸게 해먹겠다는 생각은 과욕이며, 세상사 모든게 뭔가 하나쯤은 포기해야 하는 게 있다고 했죠? 인간관계, 특히 태어난 지 20,30년후 느닷없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함께 살아가야는 하는 사람들과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손해인듯 싶게...' 그렇게 살면 좀 편한데.


그런데 말이죠, 제가 정말 괴로운 건, 이런 걸 너무 잘 알면서, 때로는 마음의 빗장을 꽁꽁 걸어잠그는 상대가 생긴다는 점이죠.

오늘은 참 이상한 얘기를 장황하게 했네요, 요리 얘기는 없고, 정말 슬럼프는 슬럼픈가봐요....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권성현
    '02.11.25 11:29 PM

    행님, 왜 행님 얘긴 안하세요? 행님도 시어머니 모시고 사시니 힘드신 일도 많으실텐데...
    오늘 얘긴 요리는 아니지만 생활의 일부이니 . 저도 결혼 11년이 돼서야 시어머님이 원하는 며느리가 아닌걸 알았어요. 그때의 기분이란 분노,배신감,나중엔 절망감까지 느껴지더라구요.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겠지만 (강도에 따라)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쟎아요.
    저 역시 시어머니께 인정 받고자 노력 많이 했어요. 어린 시절 완벽해야 한다고 교육 받고 자란 탓에 모든 일에 그럴수 없는 도달할수 없는 목표란걸 살면서 느끼네요.
    친정 어머니 역시 저희 친할머니께 인정받지 못해 두고두고 한이었는데 저 역시 그러고 있으니
    시어머니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제가 상처 받으 만큼 시어머니 도 힘드시겠죠. 상처는 서로 주고 받는 것이라쟎아요. 가까이 사는 시어머니를 사랑스런 마음으로 바라볼수 없다는 것도 힘들고 그냥 물흐르듯이 살아야겠죠.

  • 2. 김혜경
    '02.11.25 11:33 PM

    아우님, 나도 내 얘길 톡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수?
    그런데 일차검열(kimys)에 걸리고, 2차검열(우리 시누이들 셋이 모두 여기 회원이라우)도 그렇고...
    검열을 피해가는 방법은 우회노선 뿐인데...
    다른 사람 이야기 하듯 슬쩍슬쩍... 이 리플도 1차검열에 걸릴 듯....

  • 3. 드레싱소녀
    '02.11.26 10:54 AM

    전... 결혼5년차이지만... 절대!!로 시댁식구들에겐 인정받고 싶지 않아요. ^^;;
    피곤;;;해요.
    ㅋㅋ 그저 시댁엔 반만.... 딱 반만 잘하면 편할듯.. 칭찬도 반만 듣고 욕도 반만 듣고...
    시댁식구 아니어도 절 인정해주는 자린 많잖아요? ^^;;
    굳~~이 거기까지가서 인정받고 싶진 않더라구요. ㅋㅋ
    무지 이기적이죠? ^^;;;;;

  • 4. 건이맘
    '02.11.26 4:05 PM

    ㅎㅎㅎ 혜경님..드됴 올케 이야기를 풀어놓으셨군요. 궁금했어요.
    그게..참..체질적으로 그런 성격..서글서글..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첨보는 사람과도
    낯 안가리고..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 있는거 같아요.
    저희 남편이 그래요..여러운 사람도 여러운 자리도 없어요..얼마나 부러운지..

    전..그냥 그런 성격이 아닌걸 어쩌겠어요..그리구 저희 시댁 식구들이 바라는건 그런성격이구..
    그냥 전 겨우 4년차지만..쿨하게..'맘에 안드셔두 어쩔수 없어요. 그래두 당신 아드님은 절 얼마나 좋아한다구여,저 이렇게 삼십년 살았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변하겠어요. 그냥 봐주세요 미워두." 뭐 그렇게 생각해요.
    저두 이기적이지요. 그렇지만. 그게 제 생존 전략이에요

  • 5. 김혜경
    '02.11.26 7:19 PM

    리플을 보니 성현아우나 드레싱소녀, 건이어머니 모두 저보다는 나이가 아래일텐데 참 의젓하고 어른스러우며 나름대로 생존전략을 확실히 세우고 있네요. 부러워요.

  • 6. 김보경
    '02.12.2 1:05 PM

    사람 관계라는게 참으로 이상해요. 시댁 식구들도 '시'자가 않붙으면 참 좋은 사람들인데 그 관계가 사람 사이를 결정하는것 같아요. 그래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시부모도 우리 친정부모 생각하면 잘 하고 싶은데도 그 마음 열기가 정말 힘이 드네요. 그래서 왜그럴까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시부모님한테서 받은게 없어서 그런것 같아요. 친정부모님은 우리를 키워주셨잖아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제도아래서 처음 만난 부모님을 어떻게 친정부모님처럼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 마음열기가 힘든것 같아요. 저는 홀 시어머니랑 사는데요. 어려움이 많아요.
    정말 잘 해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저를 딸이 아닌 며느리로 느끼게 할 때 정말 화가나고 잘하기 싫어져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는지요? 며느리도 정말 딸처럼 생각한다면 며느리들도 친부모님처럼 대할 수 있을거예요. 저의 잘못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계속 저의 생각들을 정리해서 좋은 결론을 내려 시어머니 잘 모시고 살아야죠. 이런 고민속에서 성숙해지는것 같아요.
    모든 가족들 화이팅! 작은 행복을 향해서.....

  • 7. 박하맘
    '04.11.13 12:44 AM

    좋은 올케 만나신것 정말 큰 복인거같아요....
    울 오빠도 어여 좋은 사람 만나야할텐데....

  • 8. 잠비
    '05.3.30 9:51 PM

    덤덤한 며느리, 무심한 시어미로 살고 있습니다.
    샌드위치는 중간에 들어 가는 것이 맛을 내지요.
    그런데 아무 맛이 없으려고 노력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날짜 조회
3347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233 2013/12/22 32,978
3346 나물밥 한그릇 19 2013/12/13 22,598
3345 급하게 차린 저녁 밥상 [홍합찜] 32 2013/12/07 24,898
3344 평범한 집밥, 그런데... 24 2013/12/06 22,270
3343 차 한잔 같이 드세요 18 2013/12/05 14,901
3342 돈까스 카레야? 카레 돈까스야? 10 2013/12/04 10,916
3341 예상하지 못했던 맛의 [콩비지찌개] 41 2013/12/03 14,987
3340 과일 샐러드 한접시 8 2013/12/02 14,098
3339 월동준비중 16 2013/11/28 17,015
3338 조금은 색다른 멸치볶음 17 2013/11/27 16,720
3337 한접시로 끝나는 카레 돈까스 18 2013/11/26 12,477
3336 특별한 양념을 넣은 돼지고추장불고기와 닭모래집 볶음 11 2013/11/24 14,808
3335 유자청과 조개젓 15 2013/11/23 11,833
3334 유자 써는 중! 19 2013/11/22 9,710
3333 그날이 그날인 우리집 밥상 4 2013/11/21 11,216
3332 속쌈 없는 김장날 저녁밥상 20 2013/11/20 13,679
3331 첫눈 온 날 저녁 반찬 11 2013/11/18 16,483
3330 TV에서 본 방법으로 끓인 뭇국 18 2013/11/17 15,742
3329 또 감자탕~ 14 2013/11/16 10,501
3328 군밤,너 때문에 내가 운다 27 2013/11/15 11,565
3327 있는 반찬으로만 차려도 훌륭한 밥상 12 2013/11/14 12,918
3326 디지털시대의 미아(迷兒) 4 2013/11/13 10,955
3325 오늘 저녁 우리집 밥상 8 2013/11/11 16,523
3324 산책 14 2013/11/10 13,361
3323 유자청 대신 모과청 넣은 연근조림 9 2013/11/09 10,822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