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예술의 전당에 음악회가 있어서 가는 날, 한 주일동안 장한나의 연주를 듣다 보니 EMI에서 출시된 그녀의 음반중
아직 못 들어본 곡을 찾아서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 이미 들었거나 소장하고 계속 듣게 될 것 같지 않은
소프트한 음악을 모은 것만 있네요. (초기에는 이런 음반을 자주 구했지만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게 되자 아무래도 전 곡을 집중적으로
연주한 것에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런 음반을 더 자주 오래 듣게 되더라고요) 망서리다가 혹시 모르니 연주중 인터미션시간에 다시
오겠으니 제가 원하는 쇼스타코비치와 랄로의 연주가 있는지 찾아봐달라고 주인장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 연주회에 다니고, 같은 곳에서 음반을 구하다 보니 이제는 그 곳에서 일하는 여자분과 주인장, 두 사람에게 말을 트는
사이가 되었지요. 말이라고 해보아야 음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그런 곳에서 음반을 구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한 것을 보면
역시 저는 아날로그 방식이 더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네요.
제가 원하는 두 장 모두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일단 두 장은 다음 번에 올 때까지 구해주시면 좋겠다고
한 다음, 다른 곳을 보다가 만난 것이 안네 소피 무터의 35년 공연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내놓았다는 그녀의 다양한 연주가 수록된 음반과
세 명의 러시아 전설에 해당하는 키신, 마이스키, 그리고 아쉬케나지의 연주를 각각 한 장의 씨디에 넣은 세 장짜리 씨디가 있었습니다.
역시 망서리지 않고 후자를 고른 이유는 각각이 전 곡을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집에 와서 처음 듣게 된 것은 역시 첼로,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키신의 피아노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입니다.
3장짜리이지만 값이 저렴해서 세 사람 모두를 좋아하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음반을 선물할 일이 있는 사람들에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어제 음악회에 가니 노니님이 온다고 합니다. 노니님이? 알고 보니 산노을님의 표라고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올 수 없게 되자
노니님이 그 표를 받은 것이지요. 선물로
연주장에서 만난 그녀가 반가워서 서로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그녀의 차로 교대앞까지 오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이야기꽃이
피었지요. 늘 느끼는 것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신에 무엇보다 큰 자극제가 된다는 것, 제 생각에 갇히기
쉬운 부분을 돌아보게 되니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반가웠던 사실은 그 곳에서 만난 러블리걸님이 알고 보니 피아노를 베토벤과 슈베르트까지 쳤다고요.
그래요? 그렇다면 금요일에 만날 때 악보 가져갈테니 피아노 악보 모르는 것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에 미야님이 스페인어 책을 꺼내더니 그동안 공부한 것을 첵크 해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두 번째 언어를 시작해도 혼자 하면 계속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확인을 받는 시스템을
만든 것인데요 자주 만날 수 없으니 아무데서나 시간이 되면 책을 펴고 확인을 하는 것인데요 그동안 부진하던 것을 한 번에 만회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상당한 분량을 꼼꼼히 외어와서 놀랐습니다.
앗 소리가 날 정도였지요.
그렇다면 나도 하고 마음 가다듬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금요일에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그 안에서 저절로 에너지를 얻게 되는 제겐 풍부한 샘물을 마시는 날, 그래서 제겐
금요일 나들이가 늘 기다려지는 하루가 되고 있네요.
그녀가 건넨 보따리엔 그동안 빌려간 것, 그리고 제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열어보니 우선 로스코의 글을 나중에 아들이 책으로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은 ARTIST'S REALITY에
먼저 손이 갔습니다 .로스코의 그림을 보아가면서 이 책을 여럿이서 함께 읽는 상상을 저절로 하게 되었지요.
요즘 느끼는 일인데 어쩐 일인지 무엇인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그 일을 도와주거나 함께 할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
아, 드디어 물이 임계점을 넘은 상태처럼 그렇게 끓어서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그렇게 해서 주변에 함께
할 사람들이 마치 저절로라고 표현할 정도로 나타나는 것. 그것이 제겐 일종의 마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빌려온 밀레에 관한 책을 읽다가 바르비종파로 함께 활동하고 오랜 친분을 나눈 테오도르 루소에 관한 것, 쿠르베와 도미에
들라크루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니 자연히 루소의 그림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오늘 아침에 올려 놓은 그림은 전부 루소의 그림인데 이렇게 그의 그림을 제대로 찾아서 본 것은 처음입니다.
글의 저자가 제 마음을 움직인 덕분이지요. 그러니 내 마음이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란 것에 저는 한 표이고요
그래서 철학에서도 진리를 고정된 무엇으로 상정해놓은 것보다는 우연에 의해서 촉발하는 생의 의지에 대해서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읽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제 키신의 연주는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에서 스크리아빈의 곡으로 넘어갔습니다.처음 듣는 곡이라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것은
어렵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