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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한라산

| 조회수 : 1,968 | 추천수 : 3
작성일 : 2018-12-16 03:17:48




들머리는 516 도로의 중간 지점에 있는 성판악 휴게소.

백록담 찍고 관음사 하산.

동에서 북으로.



한라산 등산 코스는 5개.

이중 남녀노소 누구나,드라마틱한 풍광, 가장 제주 다운 코스는?

어딘들 떨어진게 있으랴만은 서남쪽 영실코스! 문제는 백록담을 못 오른다는 것.

그러면 정상 백록담에 오를 수있는 코스는?

성판악 과 관음사 코스 둘.

보통 동쪽 성판악에서 출발해 북쪽인 관음사로 하산합니다.

성판악코스는 5개 등산로 중 가장 긴 코스로 편도 약 9.6㎞,,, 정상까진 4시간 30분 소요,,,하산 까진 9시간.


 자,성판악 탐방로(750미터)에서 출발!!!

속밭(3.5㎞)~사라오름 갈림길(5.6㎞)~진달래밭 대피소(7.3㎞)~정상 백록담(9.6 ㎞)으로.


성 판 악휴게소(750미터)는 제주시~서귀포 돈내코 간  5.16도로 중간지점에 .

 해안 쪽은 분명 해가 떴는데 중산간 지대에 들어서자 비가 주룩주룩.



등산로가 워낙 잘 정비되어있고 경사가 완만해 사라오름 까지는 그냥 트레킹 코스.

이는 진달래밭대피소 까지.

등산로 주변은 조릿대 세상.

요즘 산림청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중 하나가 조릿대일듯.

사슴,노루,토끼,조랑말등 조릿대 잎을 먹이로 하는 개체들이 급속도로 줄어들며 초지를 밀어내고 있기 때문.

한반도 식생의 보고 한라산! 저 조릿대 때문에 '종의 다양성' 문제에 봉착했다는.


뭐지?

우산을 펴듯 이파리는 해를 향하지 않고 땅을.


상록교목 굴거리 나무

잎 표면이 진한 녹색인데다 광택이 있어 여름 한라산을 더욱 짙푸르게 하죠.
하얀 눈으로 덮힐 때는 또다른 느낌으로.
북방한계선이 정읍 내장산,,,그래서 내장산 굴거리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고도100미터 마다 검은 화산석으로 이정표를 새겨놓아 제주도스럽 고.




땀 많은 나로선 이런 날씨가 최악.

우비를 입으면 열기에 땀이 비오듯해 한여름에는 우산을 들던지 그냥 맞으며 걷습니다.



어느 하나 작지도 크지도 않는 평등의 세계.

늘 궁금한게 저 조릿대 안에는 뭐가 자라고 있을까?



그러나 표정이 비슷한 길이 쉼없이 이어져 지루하기도


삼나무 숲도 지나고.



해방 직후 까지만 해도 일대는 조랑말 목장


말을 빼고 제주도를 얘기한다는 건 어불성설.

제주에 조랑말이 들어 올 때는 몽골 지배기,,,이전엔 과하마라고 토종말이 있었죠.

몽고는 전 세계적으로 10여개의 국영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엔 탐라목장을.

한반도 중 제주도만 다루가치라는 관리를 두어 직접 지배했죠. 그래서 제주 조랑말의 모태는 몽고.

징기스칸도 몽고군도 조랑말 타고 세계를 정복.

이성계 부관이 제주도 출신이였는데

그도 위화도회군 개경 진입 때도 제주 조랑말을 타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1702년 제주도 지도

탐라순력도의 기록화 배경지 43곳.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아시는지?

巡歷은 요즘말로 기관장들의 초도 순시.

1702년(숙종18년) 당시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도의 각 고을을 순시하면서 남긴 기록화로

제주지도(윗사진) 1면과 각종 행사 그림 39면 등 모두 43면의 채색 화첩.

18세기 초 제주 관아와 성읍,군사 시설, 지형, 풍물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제주사에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료라는.


그런데 지도에 제주마 목장을 상세하게 표시하고 있다는.

중산간에 설치된 10 소장 ( 所場 )을 중심으로

자둔장 ( 字屯場 ), 녹산장 ( 鹿山場 ), 침장 ( 針場 )의  산마목장,

그리고 특별목장인 별목장 ( 別牧場 ) 의 명칭이 다 나옵니다 .

이형상 목사 당시 제주 목장수는 63 곳으로 이는 제주의 목장역사에 있어 중요 자료 .

진본을 이형상 후손들이 간직해오다 지금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상설 전시중.


아래 그림은

성판악 등산로 일대가 목장이였음을 보여주는 증거!!!

탐라순력도엔 제주마 관련 그림이 많은 데 산장구마(山場駈馬)가  대표적.

산장이란 목장이란 뜻으로 그림에서 보면 성판악 일대가 방목장이였음을 알수있네요.

산장구마 부분도

성판악 일대가 그려져 있고.



전체도

봉긋한 봉우리는 오름들.

제주도 동쪽 오름 주변들이 죄다 목장이였음을 알수있죠.

(그림의 시점은 동쪽인 성산일출봉에서 한라산 향해)


山場駈馬

山場은 목장, 駈馬는 말을 일정한 곳으로 몬다는 뜻.

그러니까 성판악 인근 여러 산장(목장)에 있는 말들을 일정한 장소에 모은 후 그 수와 상태를 확인하고

중앙 권력에 봉진할 우량종을 골라내는 장면입니다.

그림에서 사선은 목책 역할의 잣담(돌담).

잣담은 말들을 가운데 원형마당(미원장)인 검진 장소로 유도하는 역할.

(바닷가에서 돌담을 쌓아 고기를 잡는 원시적인 고기잡이인 독살처럼)

원형마당인 미원장 앞에선 제주목사,제주판관,정의현감,대정현감 등 제주 권력 빅4가 검진장면을 보고 있고.

이때 말몰이에 동원된 장정만 천여명으로 이날 검진한 말의 수만도 약 9천여두.

제주도 당시 인구가 5만여명이였으니 1만 마리를 키운다는 자체가 언밸런스.


그래서 고통 호소가 끊이질 않았고 이런 상소까지.

/제주는 땅은 좁은데 축산은 번성합니다. 가난한 백성의 땅은 한두 뙈기 밖에 안 되는데,

농작물의 싹과 잎이 조금 클 때면 권세 있는 집에서 마소를 마음대로 풀어놓아

그 싹을 다 뜯어 먹어도 가난한 백성은 감히 고소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소를 놓아 먹여 백성의 곡식을 손상시킨 자는 그 집의 주인을 관직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법에 따라 죄를 내려 백성의 고통을 구제해주십시오./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


말을 몰아넣은 '미원장' 유적인 돌담.

제주도에선 이를 '잣담'이라 합니다.

이 방식은 유라시아 몽고 점령지의 방목장에서 주로 사용하던 방식으로

다른 곳은 목책이라 흔적이 사라졌지만 제주도는 돌담이라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제주도엔 담이 넷!

집담,밭담,산담(산소) 그리고 잣담,,,제주도에서 뺄수 없는 제주의 얼굴들이죠.

아니다 백록담도ㅎㅎ,,,여긴 潭





속밭 대피소 도착,,,,속밭은 內田이라는 뜻.

한라산 1천미터가 넘는 깊숙한 곳에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어서죠.

이곳에 조랑말 목장이 있었다는.

태우리를 아세요??

목동의 제주어!


사라오름 향해 고고




삼나무(사이프러스) 숲


주변 민간 목장들이 해체되고 해방 이후에 조성한 조림입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초지였겠죠.

저 삼나무 숲을 보면 생각나는 곳,그리고 사람이 있으니,,,사려니숲과 고흐.

그는 삼나무 그림을 참 많이 그렸죠.

삼나무,,,삼나무가 있는 보리밭,,,삼나무가 있는 푸른 보리밭,,,두 여인이 있는 삼나무,,, 등등
 뭔가를  갈구하는듯 이글거리며 치솟는 삼나무들을.

그래서 한때는 고흐의 삼나무는 내가 아는 삼나무하곤 다른가?,,,,했다는.



성판악 휴게소서 가까운 '사려니 숲길' 13키로.

초입부터 고흐 그림에서 볼 수있는 삼나무숲이 장관이죠.


삼나무 울타리가 있는 꽃 만발한 과수원(Orchard in Blossom, Bordered by Cypresses)

Vincent van Gogh, April 1888

고흐 사이프러스 중 이 사이프러만은 변형없이 있는 그대로 그렸네요.


1324m 사라오름(산정호수)


30여분 지났을까,,,왼쪽으로 사라오름 이정표가 있네요.

성판악휴게소 기점 6 ㎞ 지점.

등산로에서 잠시 벗어나 20여분 발품 팔면 정상에 산정 호수가 똻!

등산로에서 400미터 위쪽에,,, 자연이 빗여낸 명품이죠.

사라오름,,,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이지 않나요?.

오름이란 산봉우리 뜻의 제주어,,,기생화산이라 배웠죠.

정말이지 오름을 모르고 제주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꼴!  

' 오름의 천국 ' 제주도의 총 오름 수는 368 개 .

단위 섬으론 세계서 가장 많은 수라네요.

그 중 백록담과 같이 정상부에 호수를 가진 오름은 9 개 .

분화구에 빗물이 고이는 백록담,,,그리고 사라오름,금오름,물찿오름,물영아리 오름.,,등등.

이들 9 개 중 사라오름이 수량이 가장 풍부하고 또 가장 높은 1324m에 위치합니다. 

 예전 인근 주민들은 사라오름 화구호를 제 2 백록담이라 .

사라오름 아래로는 완만한 경사가 펼쳐져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고

그들은 호수에서 내려주는 지하수를 먹고 살았습니다.

여기에는 제를 지내는 제단에,전설 또한 없을리가요.



 368개 오름 중 산정호수가 있는 것으로는 제일 높은 1324m.

가장 높은 데 있는 오름은 영실코스의 윗세오름(높은 곳의 삼형제 오름이라는 뜻).

비가 많이 온 후에는 이렇게 데크까지 차올라 신발을 벗고 전망대로 이동합니다.


그런데요

사라오름의 진짜 가치는 정망대에서 발해욧!

전망대서 바라본 서남 방면.

우측 끝이 서귀포,,,왼쪽이 남원.표선.


분화구 호수 풍광은 차치하고,

전망대서 펼쳐지는 파노라마가 기가막혀 가히 오름의 왕.

흔히들 다랑쉬오름이나 따라비오름을 '오름의 여왕'이라 하죠.

혹자는 용눈이 오름이나 거문오름을 '오름의 왕'이라.

보는이 마다 미학적 관점서 차이는 있겠지만,

사라오름에 오르면  다른 오름에 대한 칭송이 무색해진다는.

그리들 칭송하는 다랑쉬오름 정상서 보는 오름들의 분위기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죠.

사라오름에선 하계(下界) 오름들은 천자를 향해 읍을 합니다.

어슴프레 엄마 찾는 갓 깨어난 간난아기들 같기도.


서귀포 쪽을 당겨보면

왼쪽 끝부터 우측으로 남원,서귀포.




가까운듯 먼듯 한라산 정상이 보이고.

사진 등 매체가 만들어낸 이미지란게 좀 무서운게 바로 이런 것.

사진을 보노라면, 그냥 산책하듯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갈수 있을 거 같은.

그러나 현실은 -,,-


자, 이제 등산로로 내려와 진달레밭휴게소 향해 고고!



진달레밭휴게소 도착

시간 제한이 있어 12시 이전에 도착해야.

워낙 한라산이 변화무쌍해 안전상 관리공단 직원들이 통제합니다.

시간을 못맞추면 오던 길로 하산.

비는 진눈깨비로 변하며 오락가락

일대는 봄이면 진달래가 울긋불긋 만발합니다.



 정상 쪽은 다시 구름에 가렸고.

이곳 진달래밭 까지는 숲에 가려져 전망은 좋지않지만 피톤치트만은 원없이 마신다는.

그러나 진달래밭에 이르면 시야가 확 트입니다.

정상까지 2.3km,1시간 30분 정도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산 아래로 제주 동쪽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그러나 오늘은 아니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나무는?

가시 틈도 아랑곳 않는 저 조릿대 의 생명력.



제주도 식생 중 까마귀 또한 뺄수없죠.


시선을 반대로 하며 안본척하네요.

설악산 등산로엔 다람쥐,청계산은 직박구리가 그러하듯 한라산은 까마귀가 다가 옵니다.

등산객이 떨어뜨린 음식들 때문이죠.

그런데 다람쥐,직박구리와 달리 절대 한번에 다가오질 않아요.

서너번 날개짓으로 슬금슬금.

방향도 등산객을 향하지 않고.

 관심 없는척 머리를 90도 각도 꺽은 후 곁눈질한다는.

한마리 더 달라붙고.

우측 까마귀는 고개를 살짝 돌려 눈치를 보네요.



그리고 한 마리가 빵쪼가리 가까이  내려옵니다.

여전히 시선은 90도로 꺽었고.

위에 것은 아예 시선을 반대로,,,양동작전인듯.

순간!

파닥 날개짓하며 물고는 휙 날아가 버린다는.

날라오고 날라가는 속도가 중력 이탈속도 초속 7.5키로는 될듯,,,느낌상.


다음은 저 녀석 차례

뭔가 저 오묘한 표정을 보니 고구려 상징으로 삼족오(三足烏)를 삼은 이유을 알듯도.

(세발까마귀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태양 속에 산다고 여겨 해를 상징하는 원 안에,

두꺼비는 달에서 산다며 두꺼비를 그렸죠)

20년 전인가,신칸센 철도가 알수없이 탈선이 자주,,,이유는 선로 위 조약돌 때문.

범인 잡으려 1년여 시시티비를 설치해 놓고 살펴보니,

 까마귀가 돌을 물어 선로에 놓고 가더라는.

생김새로 보나 ,행동을 보나,표정을 보나 영물은 영물인듯.



일대는 이 땅 최고 구상나무 군락지


구상나무는 가장 인기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용.

1910년대 미국인 식물학자 윌슨에 의해 한라산에서 미국으로 건너갔고,그곳 식물원에서 개량.

 학명은 Abies koreana Wilson (1920).

윌슨 식물학자가,,,Abies는 분비나무와 비슷하다는 의미,,,koreana는 한국 토종.

구상이란 이름은 윌슨이 제주어 '구살낭'에서 명명.

구살은 성게의 제주어로 성게 까시처럼 구상나무도 가시가 있어서,,,낭은 나무라는 뜻.

당시 가져간 구상나무는 시카고 어딘가 식물원에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답니다.

구상나무는 솔방울 처럼 자주빛 원뿔형 솔방울이 열리죠,,,보노라면 기하학적인게 참 탐스럽고.

솔방울? 이유는 소나무과라서.

주목과  비슷하지만 둘은 핏줄 부터  많이 달라요.

구상나무는 주줄기 수피가 거칠고 까칠하지만 주목은 붉은 빛을 띠며 매끈.



습기찬 안경을 벗었다 썼다,,,비 속이라 힘드네요.

이제 고도 250미터만 높이면 백록담.정상


다시 진눈개비가.

변화무쌍이야 한라산 속성이니 그러려니 하며 마지막 피치를.






이분들은 건너편 제주시 관음사 쪽에서 올라와 성판악 쪽으로 하산중



50미터 남았네요.



구상나무 고사목


산불일까요??

아뇨! 한라산 식생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읽을수 있다는.


6500만년 전 공룡이 멸종하고 신생대 시작.

신생대는 포유류와 꽃피는 식물 또는 속씨식물(과일)의 시대.

신생대는 3기,4기로 나누어지는데,4기는 250만 년 전(직립원인인 호모 에렉투스 시작) 부터.

 3기에는 조산운동으로 오늘날의 북아메리카의 대산맥계, 안데스산맥, 알프스산맥,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융기에 수반된 화산활동으로 대부분의 현재의 화산지역이 형성. 

 4기 후반에는 연속적인 빙하의 전진과 후퇴가 있었으니 3번의 빙하기와 4번의 간빙기.

빙하기와 간빙기의 반복은 북반구에서 동식물군의 생존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현생인류는 500만년 전 유인원에서 이같은 변화를 잘 적응한 산물.

한라산 구상나무도 이런 지질 변화 관점에서 해석된다는.

마지막 빙하기가 시작되자 북방 한대림 구상나무는 빙하와 함께 남하 해 한반도 전역에 퍼집니다.

그러나 지금는 간빙기.

온도가 올라가자 저지대 구상은 멸종하고 생존을 위해 고지대로 고지대로 이동.

그러나 고지대도 1700미터라는 생존 한계지역이.

결국 한반도에서는 남쪽 한라산,지리산,덕유산,무등산 등에만 생존하는데,

한라산  백록담 부근의 구상나무도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멸종의 길을.


2만년 전 한반도는?

 마지막 빙하기로 수위가 150미터나 낮아 제주도와 한반도는 뭍으로 연결.

동해는 거대한 호수로 일본과는 부분적으로 연결되었으니

구상나무도 구석기인들도 손쉽게 제주도로 고고!!


백록담 도착


백록담 분화구는 운무에 안보이고

안경에 서린 습기로 더 안보이고. 바람은 세차고

국립공원 직원은 늦였다면 어서들 하산하라고 재촉하고.

땀흘린 등짝은 갑작스런 한기에 오싹오싹(이기 분 정말 싫어 -,,-)

생각나네,며칠 전 큰딸 애가 하던 말.

/아빠, 인생은 타이밍이야!/



지금 정상엔 다들 하산하고 남은이는 넷.

50대 부부,70대 남자 그리고 나.

부부 인증샷 찍어주고,,,나도 두번 찍히고.

어? 70대 아저씨 셀카를 찍는데 잘 안되는 모양.

/스마트 폰을 잘 몰라서요, 셀카가 안되네요..../

굽은 손으로 핸폰 받아 들고 이리저리 작동해봐도 안되더라는.

습기에 장시간 노출로 먹통된 것. 서둘러 하산.


총 둘레 약 3㎞, 동서 600m, 남북길이 500m 타원형 화구.

신생대 제3·4기의 화산작용으로 생긴 것으로 깊이는140m.

가장 최근은 1003년과 1007년 부분 폭발 기록이.



白鹿潭


잿빛 운무에 쌓여 흰사슴들은 안보이네요

사진이  뭔가 영기기 서린듯 신비스런 느낌이여서 좋고.

지금 보노라니 이 사진 하나만으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그래 만족하자!


하산길 심신이 나아져선지 시인 정지용 생각이.

정지용 시집 '백록담'에 들어있는 시 백록담.

'한라산소묘'라는 부제로 1939년 '문장지'에 발표.

이리들 평하네요.

/백록담은 우리 현대시의 가장 최고의 높이를 의미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백록담

(...............)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



마지막 연 보니 정상 의 기쁨 보단 뭔가 좌절한 느낌이네요. 왜지?

너무 힘들어서? 시대의 은유???

헬프 미!


원래는 북쪽 관음사로 하산 예정이였으나

오던 길로 되돌아 갑니다.

관음사 코스 하산에 좋은 날씨였다면 아래 풍광을 보았겠죠.

백록담 아래 장구목 능선

제주시가 보이고


북쪽 제주시.


한라산은 제주도 정중앙,,백록담은 그 한라산의 중앙.

그렇다면 이곳 백록담서 저 제주시 해안까지 직선거리는?

답은 15키로,,,뒤쪽인 남쪽 서귀포시 해안까지도 15키로,,

그래서 제주섬 남북 직선거리 30키로

제주도는 동서가 긴 전형적인 타원형.

그래서 지도 상의 평면으로 보나 비행기에서 입체적으로 보나 다 아름답고.

(이건 유홍준 제주 답사기에 나온 얘기).

동서는?

각각 35키로 총 70키로.

고로 제주도 해안선 총 길이는 200여키로. 면적은 서울시 3배 정도.



고사목 사이로 백록담 그 할아버지가 보이네요.

왠지 힘이 없어 보이고.

 후회막심,,,, 아,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내 핸드폰으로 찍은 후 보내주면 될걸...

카톡에도 올리고,,,늙으막 삶의 열기가 업업했을 터.



그 부부도 보이고


먼저 앞서 간 사람들도 보이고.


만약 짠!,,,하고 운무가 걷친다면??

아래 풍광이겠죠.


동쪽 성산일출봉 쪽이 시원하게 들어오죠,,,왼쪽 끝은 구좌.

아래 일대가 제주말 산장(목장)의 주무대.

봉긋한 오름들이 보는 이의 시선을 편하게 하고.

오름은 생태계의 근간이며 제주 풍광을 결정하는 중요한 존재.

380여 개 중 가장 많은 오름이 저 북동쪽에 분포합니다.


오름을 '연잎 위의 이슬방울'로 표현한 문장가가 있었으니..

/한라산은 한가운데 솟아 있고 여러 오름들이 여기저기 벌리어 있으니,

온 섬을 들어 이름을 붙인다면 연잎 위의 이슬방울 형국(연엽노주·蓮葉露珠)이라 할 수 있다./

캬~~~옛사람들의 표현력이란...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목사 이형상(1653~1733)이 한라산 정상에 올라 내뱉은 소감입니다. 

南宦이란 남쪽의 신하,곧 이형상 본인으로 남환박물은 제주도의 자연·역사·산물·풍속·국방 등에 대한 기록.


제주인들은,아니 탐라인들은 저 오름에 기대어 살았어요.

(백제,이어 통일신라에 조공을 바치던 탐라국에서 한반도 행정체계에 완전 들어서며 재주가  되던 때는 고려 초)

오름을 배산하며 마을이 들어섰고,,오름에 딩굴며 살았고,,,

오 름에 신당을 차리고,,,죽어선 오름에 산담을 치고 뭍혔죠.

로마에는 30만개 신이 있었다는데 제주도엔 18000여 신이 있었다죠.

오름은 또한 식수의 원천이자 방목지.

제주 삼다수가 조천읍 교래리(사진 왼쪽,사려니숲 인근)에,,,

송당목장에다 조랑말 타운(공식 이름은 제주마)도,,,조랑말 타운은 사진 우측 흰 타원형 트랙.

조선시대 말 목장들도 동쪽인 저곳에 집중되었죠.


그러면 반대로,

저 아래 동쪽 오름의 여왕 '다랑쉬 오름'에 올라 이곳을 보면 어떤 모습일까?

 

다랑쉬오름서 바라본 서쪽 한라산

다랑쉬오름서 찍은 사진 중 최고일듯.


다랑쉬오름서 바라본 동쪽 .

가운데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바로 앞은 다랑쉬 동생 '아끈다랑쉬 오름'. 왼쪽 바다 건너 우도도 보이네요.


만장굴,김령사 굴의 시작은 어딜까요??

바로 거문오름!!!

거문오름이 터지면서 용암이 해안가로 흘러내려 간 족적(튜브)이 바로 만장굴이요 김령사굴입니다.


제주도는 곧 한라산.

수백만년 동안 한라산 형성의 부속물이 제주도.

한라산 형성과정을 보면 제주도 인문지리가 보여요.

다시 지리공부!

250만년 전 부터 알프스산맥,히말라야 산맥등을 만들어지고.

그 즈음 바다 밑에서 부터 화산활동으로 한라산 기초공사가 시작되요.

그리고 120만년 전 부터 4번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드디여 지상부가 드러납니다.

초기 2번 분출은 용암의 점도가 약해 넓게 넓게 펴져가고,,, 그 결과가 바로 저 넓은 평원들.

그리고 최종 두번에 걸친 폭발은 점도가 강해 용암이 위로 솟구쳤네요.

마지막 폭발은 1만 5천년 전으로 지금의 백록담이 형성.

이후 규모 폭발은 역사서에도 등장하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중엽인 1002년,1007년 분출했다는 기록이.

그리고 대분출 이후 수만년 전까지 오름의 기생화산 분출합니다.


오름이 중요한 게 또 있어요.

제주도에서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셋.

한라산 7 00미터 이상 ,,성산일출봉,,그리고 만장굴 ,김령사굴등의 용암돌굴계.

그런데 제주도 내 수십개 용암돌굴의 모태가 오름이라는 것.

생성 시기가 약 30만~10만 년 전 사이로 추정되는 동굴들로

북쪽 해안의 만장굴,김령사굴도 굴 속 시원을 찾아 오르면 거문오름 분화구에 이른다는.



출발지 성판악 휴게소 옆 봉우리가 성널오름,,,그 앞이 사라오름.

성널오름이란 정상쪽 암석이 널판지를 세운듯 하다해서,,,성판악(城板岳)도 성널오름서 유래.


제주를 이해하는 또하나 키워드가 있으니,

해안도로,중산간도로,산간도로,,,라는 독특한 도로망.


1.해안도로는 주민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1백미터 이내 해안을 따라 이어집니다.

1132번 도로로 총 240키로 정도.

2.중산간도로는 한라산 허리 아래 100~600미터 사이에서 한라산을   빙돌 고.

1136번 도로 로 총 180키로.

중산간도로는 제주도 지리를 한눈에 볼수 있어 제주도 초심자에겐 이보다 좋은 코스가 없다는 .

한나절 한바퀴 돌면 제주도 지리가 스캔됩니다.

 돌다 보면 위쪽으로 한라산과 오름들,검은 화산석으로 쌓은 산담들,밭담들,,,

아래로는 어촌과 포구,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죠.

3. 제주시,서귀포를 중심으로 제주도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5개의 횡단도로.

제주시~중문,제주시~서귀포,제주시~대정(추사 유배지),제주시~표선,조천~남원.

모두다 한시간이면 오케이. 이중 일명 516도로는 저 성판악 휴게소(750미터)를 지납니다 .

그 리고 4,3사태 희생자들 대부분이 중산간지대 사람들이었다는.

그들은 학살을 피해 많이들 용암동굴로 들어갔고 대부분이 몰살.

지금 중산간지대에 마을이 별로 없고 산림이 우거진 이유도 바로 4,3서 연유.


하산길 진달래밭 대피소

비도 그치고 사람도 그치고.


사람주나무

상록수와 낙엽 활엽수의 공존.

상록수인 굴거리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설악산에서네요.

사람~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어 호기심이 일었죠.

사람 피부같이 희고 매끈하고 보드라워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었고.

만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촉감이 벨벳처럼 질감이 느껴지더라는.

산에서 사람이 그리우면 사람주나무를 만지면 되요.

그런데 단풍 또한 참 곱다는.


지리산 피아골 사람주나무


왕복 19키로 8시간 만에 성판악 휴게소로 원점 회기,,,끝.


&&&&&....

섭지코지에서 성산일출봉

뒤쪽은 우도.




예나 지금이나 성산일출봉은 제주도 얼굴같은 곳.

올레길 제 1코스가 성산부터 시계방향으로 시작해 성산에서 끝나죠 .

올레? 집 대문에서 마을 길 까지 이어주는 좁은 골목 을 뜻하는 제주어.



성산 분화구


성같이 보여서 城山

십만년 전 수중에서 용암이 분출한 것.

높이 182m, 지름 약 400m. 예전엔 사람이 살았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저 분화구를 보면 뭐가 생각나시는지? 탐라인들은 빨래 바구니로 봤답니다.


설문대할망!!

제주도의 창조 여신이죠,,정확히는 할머니 여신.

설문대할망이야말로 제주도 인문 정신,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

제주도 여기저기 지명에 설문대할망의 손길이 안들어 간 곳이 없어요.

아마 할머니 여신은 전 세계 신화 역사에서 최장신일 겁니다.

제주 앞바다를 걸어다니는 데 물은 겨우 무릅정도 밖에.

그녀는 먼저 제주도 만들기 역사에 들어가는데,

앞치마에 흙을 담아다가 바다 속부터 기초공사를 시작해요.

그리고 난 후 7번을 더 퍼날라 쌓으니 이게 한라산.

한라산이 넘 뾰쭉한 게 마음에 걸렸는지 오른발로 윗부분을 걷어찼어요.

파인 부분은 백록담 분화구가 , 윗부분은 서남쪽으로 날아가 산방산(산방굴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산방산을 옮겨와 백록담에 넣으면 딱 맞는다는군요.

그리고 치마폭에서 떨어 진 흙들은 오름이 되었고.

탐라인들은 할망이 빨래하는 포즈도 그렸어요.

할망 엉덩이는 백록담 분화구에 맞추고

오른발은 제주도 최남단 마라도에 왼발은 제주시와 추자도 사이 관탈섬에 두었죠.

그리고 동쪽 성산일출봉 옆 우도는 빨래판으로 빨래 담는 바구니는 바로 성산일출봉 분화구를.

밤에 바느질 할 때는 성산 일출봉 등경대를 등불로 삼았답니다.

빨래바구니 같나요?

그런데 섬 전체를 보면  ' 한떨기 연꽃 '.


청초 우거진 골에,,,,그 임제는 '연꽃'으로 보았군요.

 임제(林悌,1549-1587)는 아버지가 제주목사로 있을 때 문과에 급제했어요.

아버지에 알리려고 어서화 꼿은 채로 단숨에 제주도로 들어왔고,,,그리고 한라산도 올랐죠.

그의 제주탐방기가 바로 '남명소승(南溟小乘)'

남명은 남쪽 바다 제주도란 뜻,,,성산도 올랐는데 남명소승에서 성산을 이리 표현했네요.


/성산도(城山島)는 한떨기 푸른 연꽃이 바다 물결가에 나온듯한데 그 위에는 돌 절벽이 빙둘러 있어 마치 성곽 같다. 

그속은 대단히 평탄하고 넓으며 풀과 나무가 나있다. 그 아래로는 바위봉우리가 기괴하게 서 있는데 더러는 돛대와 같고, 

또는 천막 같고, 또는 휘장 덮개 같고, 또는 새나 짐승과 같아 만가지 천가지 모습을 이루 다 기록하기 어렵다./


그리 보니 빙두른 분화구 벽은 성곽이면서 곱게 편 연잎 같네요.

전체로는 연꽃 한송이.

역시나 임제는 인사이더에서 아웃사이더로 넘어간 낭만주의자!

임제,,,,??

이 시 보시면 아하! 하실듯.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뭇쳣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여기서 백골은 물론 황진이.

평양 가는 길 그녀 묘택 앞에서 술 따르고 노래했죠.

사대부가 체통을 지키지 못했다면 이 시로 파직을.

이후 산천 주유하다 39세에 단명,,,황진이도 39세,,, 나주에 묘가 있음.


임제

/수중에 핀 연꽃같다/

맞죠?


10만년 전에 수중폭발로 생겨났고

육지와 연결은 1만년 전 조수의 반복으로,,,그래서 왼쪽 가느다란 연결 지점을 터진목이라 합니다.

왼쪽 멀리 다랑쉬오름이 보이고.


출처,오마이뉴스,,,,드론 촬영.


드론 사진이 좋은 건 입체적으로 볼수있다는 것,,,소위 부감법.

정말 멋지군요.

연꽃이 씨앗을 맺고있군요.

하산~~

독수리

머리 위로 붉은 벼슬도 있네요.



우도(牛島)


예전 사람들은 그냥 소섬이라 불렀어요.

물론 소가 누워 있거나 머리를 내민 모양과 같아서. 여기서 보니 도마뱀 같기도.

통영에도 고흥에도 우도가 있는데 물론 둘다 소에서 유래.

그런데 우도와 성산 사이 물살이 무척 쎄다네요. 여기에 다시 설문대할망이 등장합니다.

제주인들은 용녀급 파워 그녀의 '쉬' 때문이라고 믿고있다는군요.

이는 유자 들이 제주 토신인 설문대할망을 폄하하려는 의도였겠죠.


아래는 성산읍

종달이 해변 지미봉도 보이고. 뒤쪽에 별방진성이 있습니다.


진성(鎭城)으론 가장 큰 별방진성(別防鎭城)


동쪽 우도에서 들어오는 왜구 대비 차원.

우도는 제주도 최 동쪽에 있는 섬으로 1800년대 이전엔 목장만 있고 민가는 없었다는.

왜? 왜구들은 제주 본토를 노략질할 때 우도를 전초기지로 삼았어요. 

우도에 일단 정박한 후 정세를 살폈겠죠.

그래서 제주목사는 대응으로 본토 쪽엔 별방진성을 쌓았다는.

정반대 서쪽 한림읍 맞은 편의 비양도도 그런 숙명,,,한림엔 명월성을.

당시엔 왜구만 온게 아녀요.

하멜 표류에서 알수 있듯 각종 이양선에 중국,베트남 배들도 수시로 제주도에 닿았으니 대책을 세운 것.

제주목,정의현,대정현 3개의 읍성과 해안가 포구엔 9개 진성,,,이리 총 12개의 방어성이.

그리고 진성 간 소통은 연대나 봉화,그리고 기동력 넘친 조랑말 타고.

제주도 전체가 군사요새 .


다시 탐라순력도 중 성산 관일!


城山 觀日

예나 지금이나 성산에 오르는 첫번째 목적은 성산에서 일출을 보는 것.

돌계단을 타고 정상까지 이형상목사 일행이 올랐군요.

현 등산로 위치에 각교라는 돌계단도 보이고.

왼쪽으로 붉은 부채꼴 모양은 해가 떠오르는 장면 .


지나는 길마다 귤세상.

요즘 제주도 드라이브 길  가장 멋진 경관은?

검은 화산석 밭담 너머로 '나 봐달라 '며 삐죽삐죽 내민 감귤들.





제주도의 가을 표정은 단연 주황색의 감귤.


그래서 귤림추색(橘林秋色)을 영주십경으로 삼았고

(한라산을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이라고도)

제주도에서도 남쪽 서귀포 쪽 그 중에서도 남원!!! 귤이 으뜸.

감귤이 제주도에서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탐라순력도에 감귤과 관련된 그림이 모두 3개.

감귤봉진(柑橘封進),,,귤림풍악(橘林風樂),,,,고원방고(羔園訪古).


탐라순력도 중  '감귤봉진'

제주마와 더불어 제주도 2대 진상품은 감귤.

귤을 조정에 보내기 위해 선별하는 장면입니다.


부분도


주황색 귤이 바구니에 가득. 담을 궤짝을 만드는 목수도 보이고.

품종도 다양해 구체적으로 갯수까지 하단에 적어놓았다는.

감자(柑子)가 가장 많은 2만5842개. 당유자 4010개, 동정귤 2804개, 유감 2644개, 유자 1460개,
금귤 900개, 청귤 876개, 산귤 828개.
다 합치면 8개 품종에 4만개. 지금은 12품종이라죠.
감귤을 매년 20차례 올려 보냈고.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일 간격으로.
그 부담이 너무 커 일부 농가에서는 귤나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몰래 고사시키기도.

 귤림풍악(橘林風樂)

제주성 안에 있는 감귤원을 그린 것.
감귤원 주변은 대나무를 심어 방풍 역할을.
감귤을 진상하기 위해 국가가 과원을 직접 관리하기도.
당시 과원은 제주성 안에 동서남북 4개 과원과 6개의 감귤원이 있었다는.
기록상으로는 최대 41개 과원이 있었고.
대나무 잎은 찬 성분이 있어 귤을 궤짝에 담을 때 함께 넣었고.
그래서 대나무를 방품림으로 심은 것.

 고원방고(羔園訪古)

이형상 목사 일행이 귤나무 숲에 들어 풍악을 곁들인 잔치를 여는 장면.


1132번 해안일주도로서 바라본 한림읍.

왼편 가운데 검은 빛은 콜라비,,,앞은 배추

앞 섬이 비양도


명월성

왜구들이 동쪽에선 우도를 전진기지로 삼았듯 서쪽에선 비양도에 정박했다는.

이양선도 자주 출몰. 그래서 한림읍에 명월성을 쌓았고.



배추밭 안 '산담' 보이시죠?


산담이란 산소를 둘러싼 돌담이라는 뜻.

마을에는 집담,밭에는 밭담을 두르듯 무덤 주변엔 검은 현무암으로 사각형의 산담을 둘렀다는.

앞에는 하르방같은 망부석 둘을 세우고.

제주도에선 묘를 보통 산이라 합니다,,,'산에 간다' 하면 산소에 간다는 의미.

산담은 밭이나 과수원,오름에 위치한 것이 많은데

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제주 특유의 삶의 세계관이기도.
저 콜라비 밭들도 밭담으로 둘러쌓여져 있습니다 .


당오름 산담들

산담은 탐라인들의 죽음에 대한 세계관 표현이자 현실적인 대응 수단.
소나 말을 방목하 다 보니 이들로 부터 산소를 보호해야 했다는.

또 흙이 적고 바람이 쎄니 봉분 보호 차원도.
그리고 오름은 죽은자의 최고 귀의처.

제주인들은 오름에 뭍히는 걸 가장 고귀하게 여기고.

그래서 오름은 있는 자들의 차지.

아무리 제주도에 돌이 많다 한들 묘에 다 산담을 칠수는 없는 법.

오름 위쪽에 뭍힐 경우 돌 하나하나 올릴 때  마다 돈 계산 되었다는.

결국 산담은 신분의 상징!


동거미오름

이 정도면 공동묘지가 아니라 야외 설치미술.



밭담

밭담 속 산담

제주도엔 4대 담이 있으니

집담,,,밭담,,,산담,,,잣담,,,


아래는 잣담.

잣담


제주도는 전역이 말목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처음에는 해안지대 까지 방목이 이루어졌으나 말들이 민간 밭에까지 기어들어와 피해가 컸고.

결국 목장은 중산간지대로 옮기게 하고 목장마다 돌담을.

돌담쌓기는 몽고 지배기 부터 시작 .

몽고가 운영하던 전세계 10여개 직영 목장 중 유일하게 제주도만 돌담,,, 유라시아 타지는 목책.

 한라산을 중심으로 중산간 초지를 삼등분해 상, 중, 하잣 담을 쌓고는

그 잣담을 기준으로 마장( 목장)을 구분하였고.


그랬던 제주에 초지가 사라지고 나무들이 우거지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4.3사건과 산림녹화 그리고   감귤과수원의 방풍림 조성 때문.

4.3사건 당시 토벌군은   중산간 지역 마을들을   강제로 해안가로 소개( 疏 開)시켰고

결국 초지에는 나무들이 자라나게 되었네요 .


다시 탐라 순력도

한라장촉(漢挐狀矚)


한라장촉은 당시 제주삼읍인 제주목,정의현,대정현 의 경계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지도 .

제주방어의 거점 3 읍성과 9 진 ( 鎭 ) 을 비롯해 봉수와 연대 , 중산간 목장 이름과 구획 경계 , 마을 이름 등이 상세히 .

중산간에 설치된 산마목장들도 빼곡이 적었고. 이형상목사 당시 목장수는 63 곳 .

당시 제주도는 철저히 중앙권력 차원서 취급되었으니

탐라순역도 전체가 말과 관계될 정도로 중앙 력 입장에서는 '제주=말'


공마봉진


공마봉진 은 국가에 진상할 말을 살펴보는 그림 .

장소는 제주목 관아 관덕정(현 제주시) 앞.

당시 진상하는 마필은 연례공마 200 필 ,

3 년마다 실시하는 식년공마 700 필 ,

삼명일 ( 三明日 , 正朝 ㆍ 冬至 ㆍ 誕日 ) 각 20 필 ,

삼읍 수령이 벼슬이 갈릴 때 헌마하는 3 필이 있었다는 .

(수령이 제주를 떠날 때도 말을 바치다니..)

소는 삼명일에 흑우 연 60 두를 진상 . 

  이목사가 이날 점검한 마필은 삼명일과 연례공마 , 식년 공마에 쓸 것들로

당시 진상에 필요한 말은 433 필 , 검은소 ( 黑牛 ) 20마리 였네요 .

(그림 하단에 이를 적어놓음)

지금은 흑우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는 중요 특산품.

(제주도는 검은 현무암 때문인지 소,돼 지도 검네요)

흑우와 지금의 제주 검정 돼지는 다른건가?


우도 점마


우도점마 는 이 목사가 성산에서 해뜨는 모습을 보고 배를 타고

우도목장의 말을 점검한 것을 그린 그림.

  당시 우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민가는 그려져 있지 않았고 .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목장 개간 허가를 받은 1842 년 이후 .

재밋게도 그림을 정말 소가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렸네요.

머리 부분에 東頭라고 써놓고 머리카락은 상록수로 표현 ㅋㅋ,,,, 대상의 관념화.

당시 제주도 병사들은 기동성이 좋았어요.

병사 두명당 1명이 기병으로 보병 대 기병 비율은 2:1

비상시 말을 타고 진성 마다 연결! 연결!로 제주목의 목사에 쉽게 달려올수 있었다는.


끝으로,

탐라순력도가 흥미로운게 철저히 중앙권력,뭍의 시각에서 제작했다는.

그 실증적 증거가 기록화 마지막편 호연금서 ( 浩然琴書 )

호연금서 ( 浩然琴書 )


땅끝 해남 보길도(고산 윤선도가 말년을 보낸곳)에서 바라본 제주도입니다.

아랫쪽으로 육지 끝 해남일대가 그려져있네요.

사이에 배들이 육지와 제주도를 오가고.

탐라순력도의 마지막은 이렇게 호연금서 ( 浩然琴書 ) 로 마무리 하는데

이형상 목사가 보길도 ( 甫吉島 ) 에서 제주도와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호연한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며 책을 읽는다는 의미겠죠.

시점이 보길도인 이유는 당연 윤선도 때문. 그러나 보길도서 제주도가 보일리 없고.

그는 제주도를 떠날 때 한라산 단 향목으로 만든 거문고와 장서 몇권일 정도로 청백리에 풍류가.


공항가는 길,

우측으로 조천항과 연북정이 들어오네요

연북정 & 조천성


  戀主 도 아닌 戀北 이라,,,참 시적이네 .

동계 정온 , 광해군 , 우암 송시열 , 추사 김정희,면암 최익현의 공통점은?

제주도 유배자!

유배자,제주목사 부이임시는 주로 이곳을 통해 오갔고.

많은 문학 작품 중 제주도의 역사,인문지리,제주인의 정서를 잘 표현한 글을 하나 뽑으라면??

개인적으론 정호승의 연북정!!

누군 북을,  누군 서를, 누군 동쪽 태평양 너머를....


https://youtu.be/C1B85UQT4AY

Janet Baker sings "Che farò senza Euridice" from Gluck's 'Orfeo ed Euridice'  



연북정(戀北亭)

 

   정호승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다 여기로 오라

   내 책상다리를 하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가끔은 소매자락 긴 손을 이마에 대고

   하마 그대 오시는가 북녘 하늘 바다만 바라보니

   오늘은 새벽부터 야윈 통통배 한척 지나가노라

   새벽별 한두점 떨어지면서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고 가노라

   오늘도 저 멀리 큰 섬이 가려 있어 안타까우나

   기다리면 님께서 부르신다기에

   기다리면 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다기에

   연북정 지붕 끝에 고요히 앉은

   아침이슬이 되어 그대를 기다리나니

   기다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느냐

   그대의 사랑도 일생에 한번쯤은 아침이슬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갖게 되기를


 이런 시를 우린 왜 안배웠을까요?? 

어! 그런데 2013년 창비에 실렸네 -,,-.

    

ps,

스토 리를 엮다보니 가져온 사진들이 있습니다.

혹 저작권 주장이 있으시다면 응 하겠 습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바람과나무
    '18.12.16 10:33 AM

    와~ 제주도에 대한 책 한 권 읽은 듯합니다 ^^ 구상나무가 왜 산꼭대기에 있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오늘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올려주시는 글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 wrtour
    '18.12.28 12:22 AM

    제가 더 감사드려요.
    내년은 기해년(己亥年)이라네요.황금돼지.
    새해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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