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시
류근
우산을 접어버리듯
잊기로 한다
밤새 내린 비가
마을의 모든 나무들을 깨우고 간 뒤
과수밭 찔레울 언덕을 넘어오는 우편배달부
자전거 바퀴에 부서져 내리던 햇살처럼
비로소 환하게 잊기로 한다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문학과 지성사, '어떠게든 이별'
다 좋은데
꼭 눈물로
술자리를 마무리하는
선배 형같아서
요번 송년회에도 불러 말어
고심하는 같은 무게로
시집을 들었다 놓았다
끝내 외면 못하고..
하아..하였다
옛 애인 이야기만은 부디 말아요
형의 청춘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음이 절창이었듯
형의 중년은
강릉 차밭 지나다 무위사를 만나고,
추억의 배후의 고단함과
봄의 눈에 젖고
혼자 서서 충만한 겨울나무들로
무럭무럭 근육을 키울 터이니
그러니,
이젠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된
그래서 다시 탄생된 숱한 여인들을 방생해요
한꺼번에
한꺼번에 말이유
* 사진 위는 시인의 시
* 사진은 딴게이 cromcrom님 사진을 업어 옴
* 사진 아래는 쑥언늬 사설
* 쑥언늬 류근 시인 전혀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