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길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책 고야 4권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화가 고야만이 아니라 고야를 낳은 스페인의 빛과 그림자부터 시작하여 그가 나고 자란 사라고사 (물론
그는 사라고사에서 조금 떨어진 푸엔데토도스란 곳에서 태어났지만 ) 는 어떤 곳인가부터 시작하여
이야기가 중층적으로 여러가지 것들이 섞여 있어서 도대체 고야는 언제 나오는 거야? 하면서 읽었던
책이었지요.
그렇게 읽고 나서는 여럿이서 돌려 읽어서 책은 상당히 손 때 묻고 낡은 상태로 책장 한 귀퉁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역사 모임에서 스페인 내전에 관한 글을 읽기 전에 발제자 고 선씨가 스페인 역사의 전반적인
개요를 설명해주는 덕분에 다시 스페인에 대한 글을 읽고 싶은 의욕이 생겼고, 마땅한 책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그렇다면 하고 다시 뽑아든 책인데요, 여기저기 오래 전에 책에 줄 그은 것들에 시선이 머물기도
하고, 지금은 거의 내용을 잊어서 새롭게 읽게 되는 대목들도 많아서 이것이 과연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나
싶어서 재미있어 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조금 스페인어 공부 했다고 그 이전에는 그저 글자에 불과했던 말들을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말들도 생기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중의 하나인데요, 그가 태어났던 마을 푸엔데토도스는 푸엔테
즉 샘물, 토도스는 모두 즉 말하자면 모두의 샘물이란 뜻이라고요. 그 지방은 물이 귀한 편인데 이상하게
지하수란 축복을 받아서 모두가 물을 마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 이름이 모두의 샘물이란 의미의
푸엔테 데 토도스인데 줄여서 푸엔데토도스가 되었다는 일화를 읽고 아하 그래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물장수가 등장하는구나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기도 했고요.
고야를 후원했던 백작의 성도 역시 푸엔테스였답니다.
스페인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레콩키스타 운동이 과연 레콩키스타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기도 하고, 스페인 역사상 어쩌면 유일하게 카톨릭교, 유대교, 이슬람교도들이 어울려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이후의 무리하게 카톨릭교로 전향해야 했던 유대교와 이슬람교도들이 자신의 전향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무리하게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시대, 그 상황을 넘어서 결국 밖으로 추방되어야 했던 시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스피노자 집안에 관한 이야기, 이슬람이 남긴 문화의 흔적, 이렇게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퍼져 나가지만 읽다보면 그것이 다 복선이었고 필요했구나 고개 끄덕이면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가는
재미가 솔찬한 독서가 되고 있습니다.
스페인 역사공부의 after로 읽기엔 4권은 역시 분량이 대단한 책이지요. 그것만으로는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보려고 하는 동기가 불충분하지만 (다른 책들도 쌓여 있으니까요 ) 지난 목요일 미술사 시간에 발제자가
프라고나르의 빗장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이 작품처럼 비어 있는 공간이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작품이
있는데 혹시 생각나는 작품이 있는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섬광처럼 떠오른 작품이 바로 고야의 개 였지요.
섬광처럼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마드리드의 프라도에 갔을 때 자석으로 된 세 점의 작품을 구해 온 것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개여서 냉장고 앞에 설 때마다 눈길이 가기 때문에 제 안에 무의식적으로 저장된 이미지가
있어서 였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빈 라덴의 사살이 불러일으킬 여파에 대한 걱정으로 고야의 전쟁의 참화나 변덕을 보고 싶어진
때문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누리는 평화가 가끔은 온당한 것인가 고민이 될 정도로 삶의 뿌리가 여기서 저기서 뿌리 뽑히는
현실을 동네 가게에서도 보고 있는 중입니다. 금방 생겼다가 얼마 있으면 문을 닫는 가게가 이전보다 빠르게
생겼다 사라지고 있는 현실, 작은 동네에 자꾸 늘어나는 대형 수퍼마켓,이것은 지역의 문제라면 더 큰 규모로
일어나는 회사의 도산이 있겠지요? 말로는 간단하게 도산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가정의 아픔이
수치로 드러나지 않게 들어 있을 겁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란 패배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조금씩 물꼬를 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래, 조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간,
고야의 그림을 달라진 마음으로 반응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내가 거기에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