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까지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에 캘리님이 고른 오페라가 70분짜리 베르디의 잔니 스키키였습니다.
그 오페라속의 아리아 한 곡만 귀에 익은 상태라서 오늘 감상하는 오페라는 어떨까 궁금한 마음 하나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김미라씨가 그녀의 선생님이 찬조 출연해주신다고 기대하라고 한 첼로 연주가 또 하나
물론 거기에 여럿이 서로 분담하여 장만하는 음식이 기대되는 날, 정발산의 백명자씨 집에 도착하니 벌써
부엌의 열기가 느껴집니다.


드레스 코드를 정한 것도 아닌데 세 명이서 나란히 빨강으로 눈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네요.

오늘의 청일점인 주인장도 역시 부인과 나란히 커플 룩으로 빨간 옷을 입고 잘 타고 있는 벽난로 앞에서 웃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본 얼굴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요.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지혜, 지혜나무님의 딸인 지혜는 수요일,목요일 어른들 모임에 마음이 동하면
자주 참석해서 이제는 그 아이가 있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는데요, 학교에 가면 그런 자유로운
참석이 불가능하겠지요?

길담에서의 송년 파티때도 맛있는 음식에 혀가 ,마음이 즐거웠는데 오늘도 역시 서로 거드는 손이란
참 놀랍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 날이었답니다.

오늘은 순서를 바꾸어 첼로 연주를 먼저 들었습니다. 저와 거의 같은 시기에 바이올린을 새로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김미라씨가 수소문해서 시작한 첼로, 그런데 과연 같은 시기에 시작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나 싶게
놀라운 성장을 보여준 그녀를 보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 놀라서 아마 내년에는 악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소리 소문없이 늘지 않을까 싶네요.
그녀의 첼로 선생님은 그녀와 동갑이라고 하네요. 소리없이 조용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첼로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연주하는 편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연주를 듣게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있답니다. 연주회장에서 듣는 음악이 좋지만 그래도 서로 마주 보고 이렇게 실내악
분위기에서 듣는 소리도 역시 새롭고 더 친밀한 맛이 있거든요. 바흐의 곡을 합주한 다음 솔로로 바흐의
무반주 조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는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여주고
있는 깊은 신뢰를 보고 있으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커플이랍니다. 주인장들이기도 하고요.


1부가 끝나고 오페라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네요.


베르디의 대작들이 워낙 많아서 상대적으로는 덜 알려진 오페라이지만 사실 그 속의 아리아 한 편이 아하
바로 이 곡이 이 오페라에서 나왔던 말이지 하고 귀 쫑긋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침 배경이 피렌체이고 단테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 그리고 그 곳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도 많아서
그 곳을 곧 만나게 될 제겐 더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했지요.

연주도 오페라도, 그리고 음식도 다 좋았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4부, 몸으로 내 안의 우주를 만나자고
우리들에게 음악과 더불어 몸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시범을 보여주면서 유도해준 이 연실씨, 덕분에
제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내년에는 정말 머리 쓰는 일을 줄이고
몸으로 놀고 몸으로 일하고, 몸으로 협동하는 법을 배우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다면 바로 이 사람이
사부로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느낀 날, 여러 차례 사진을 찍었지만 움직이는 동작을 제대로 찍기에는 실력이
턱없이 모자라서 이 한 장으로 그 때의 기분을 대신하려고 하니 아무래도 미진하기 짝이 없네요. 그래도
그 즐거움은 제 안에 그대로 남아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셈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