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의 일입니다. 수업중에 역사를 바꾼 예술가 100명이란 타이틀의 영어책을 읽고 있는 하민이가
제게 내민 페이지, 선생님 이 화가 아세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림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르네상스 시대 여성화가가
연달아 몇 명 소개되고 있네요. 어라, 한 번 보자 그런데 그림을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줄 수 있니?
그렇게 부탁한 것은 제가 갖고 있는 미술책에는 그녀들의 그림이 소개된 것이 없어서였지요.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특히 소포니스바에 관한 글이 한 편 올라와 있어서 간단히 그림도 보고 그녀에 관한 글도 맛을 본 상태였는데요
금요일 하루 일과를 보내고 집에 와서 조금은 숨돌리게 된 날씨 덕분에 오랫만에 그림 보러 들어간 싸이트에서 마침
르네상스 여성 화가들에 관한 소개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무슨 즐거운 우연의 일치인가 싶어서 기쁜 마음에 찾아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의 눈이란 얼마나 선택적인가 오늘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시간이네요. 만약 어제 밤 그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아마
스치고 지났을 기사를 관심있게 보는 것에 지나지 않고 그녀들에 관해서 이런 저런 탐색을 하게 되는 그런 절묘한 타이밍이
재미있네요.
그녀는 1530년대에 아들과 딸들을 동등하게 교육시킨 계몽적인 아버지 덕분에 그림 교육을 받았다고 하네요. 당대에 상당히
알려진 화가에게 사사받고 로마에 갔을 때는 미켈란젤로를 만났다고 하네요. 그녀의 재능에 반한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드로잉
몇 점을 주면서 공부하고, 결과물을 들고 오면 그림을 보아주겠노라고 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어서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체스는 남성만 두었다는 속설을 깨고 여성들이 체스를 두는 장면을 그리는 동시에 인물의 표정을 통해 그 상황속의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는 기록을 보면서 체스는 여성들에게 금지된 것이었구나 새삼스럽게 시대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언젠가 아츠히메라는 일본 역사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과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모가 여자가 바둑두는 것에 대해서 끌끌대면서 걱정하던 장면이 오버랩되네요.
르네상스 여성화가들의 소개글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여성 화가들 전부를 한번에 보고, 글을 쓸 예정이었으나 이 화가를 발견하고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한 점 한 점이 눈길을 끌었지만 특히 이 두 점에서 오랫동안 시선을 떼기가 어렵더라고요. 아래 그림은
막 철자를 배우게 된 늙은 여인의 진지한 얼굴이 인상적이네요. 글을 배우는 그녀는 누구일까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기도 하고요.
오늘 밤 오랫만에 대구에서 올라온 미야님, 한동안 만나지 못한 캘리님 이렇게 셋이서 그동안 밀린 수다로 한참 놀고 나니
새롭게 기운을 얻은 일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하철역에서 두 사람이 내리고 나서 가방안에 있던 심리학 책을
펴들었습니다. 아마 한동안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다음 모임까지 못 읽을 지 모르니 지하철안에서 일단 맛을 보는 의미로
읽어볼까 싶어서 3꼭지의 글을 읽었지요. 그 중 한 글에서 음악이나 그림을 듣고 보는 일은 단순히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성하는 작업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럿이서 모여 함께 읽기 시작했던 심리학 책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 책을 마치고 나면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원서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함께 3시간 꼬박 앉아서 영어책을 번역하고 이야기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혼자서 무엇을 읽다보면 다른 것에 치여서 그 책을 다 못읽고 부담만 느끼고 책장에서 잠드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렇게 함께 읽는 일에는 아무래도 책임감이 있어서 끝까지 마무리하게 되더라고요.
저절로 거의 많은 것을 미루고, 기본적으로 할 일만 하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음악도, 그림보는 일도, 읽고 싶은 책도 챙겨읽게 되니
살 것 같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군요. 그림을 찾아서 보고 있자니 일상으로 이제 겨우 돌아오는구나, 그렇다면 미루고 미루던 운동을
새로 시작하고, 마음 다급하게 먹지 말고 내일 아침부터 조금 이른 새벽 동네 한 반퀴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볼까, 마음을 먹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