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의 지휘자였던 주인공이 유대인 연주자를 내보내라는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브레즈네프 때
쫓겨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청소부를 한 지 30년, 리허설 시간에 들어와서 들여다보지 말라는 지시를 어기고
늘 자신이 지휘자가 되어 음악을 듣던 그가 영화가 시작된 순간에 울린 휴대폰 소리로 영화는 시작을 합니다.
영화는 지금도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이라 더 이야기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것이라 자제하고, 러시아와
파리가 무대라서 불어를 영화대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몇 마디 알아듣게 된 것이 즐겁고 나오다 보니 영화제목이
실제로는 the concert가 아니라 le concert인 것도 반가워서 아하 소리가 절로 나더라고요. 그림에서 문자가 되어
가고 웅성웅성 소음에서 소리가 되어가는 새로운 언어와의 만남도 그렇고요.
지난 금요일의 백조의 호수에 이어 월요일의 le concert에서 연속적으로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만나고 나니
역시 집안에 있는 음반 목록을 뒤적여보게 되네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그의 음악을 찾아서 연달아서 듣게
됩니다.그래서 역시 after가 더 즐거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대화도서관에 이주일에 한 번 정도 다니고 있는 중인데요, 보람이와 둘이서 유일하게 서로 돌려읽는 것이
일본 소설입니다. 소설만 빌려오는 아이라서 5권 빌리면 제게 보여주지요.,이번에 빌린 목록을,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두권 혹은 세 권 정도 저도 읽게 되는데 이번에 빌려온 작품중에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이 두 권
있었습니다. GO라는 작품의 작가이기도 한 가네시로 가즈키는 민족 학교를 다니다 (재일 조선인으로 ) 일본 학교로
옮겨간 이력이 있는 작가이기도 해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소설속에 많이 묻어나오기도 합니다.
그 중 한 권이 영화처럼이란 제목의 소설인데요 그 소설을 읽던 중이라 그런지 코로의 그림중 이 그림에 눈길이
멎어서 그림을 골랐습니다.
이미 이 작가의 소설을 네 편이나 읽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뢰가 생긴 상태라서요. 역시 첫 장을 여니 바로
이야기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네요. 왜 소설을 읽는가, 가끔 생각합니다. 이론적인 글을 읽다가 마음이 지치거나
아니면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역시 저는 소설을 읽게 되거든요.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시는 읽어도
소설은 심심해서 못 읽게 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겐 아직도 소설은 고향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어린 시절 활자의 매력에 사로잡혀 동화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된 서점 나들이, 그리고 책읽기
다양한 형태의 책을 읽어왔지만 늘 언제나 돌아오게 되는 자리에 소설이 있었습니다. 소설속에서 만난 매력적인
주인공은 한동안 제게 꿈꾸게 하는 힘을 주었고, 그 혹은 그녀와 닮고자 노력하는 경우도 생겼지요.그러다가
다른 소설에서 또 다른 주인공을 만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마음이 바뀌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요.
이상하게 코로의 그림에서 책읽는 소녀가 자꾸 나오니 음악과 더불어 지난 시간으로 타임 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연말이란 시간적인 겹침때문이겠지요?
지난 12월,그리고 이어서 올 12월, 아들의 수능결과,입학 시험에 어느 학교 어느 학과를 써 넣어야 하는가로
머릿속이 너무 분주해서 가끔은 리셋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네요. 그럴 때 역시 소설은 리셋이 가능한
매개체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바람이 매섭게 느껴지는 화요일, 집에 들어와서 마음속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바이올린의 선율과 소설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서 한참 몰입하다가 조금 쉬고 싶어서 골라서 보고
있는 코로 그림이 어울려 멋진 그림이 되고 있는 시간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