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오바바 연설문 암기가 끝나고, 맛있는 점심과 더불어 종강을 하고 나서 3주 연달아서 이런 저런 after를 하기로 했지요.
오늘은 산으로, 다음 주 수요일은 덕수궁 미술관으로 그 다음주에는 영화를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요
중간에 개인적으로 여행일정이 있고 연말연시의 각자 할 일이나 모임도 있을 것이니 그런 번잡한 일이 다
끝나고 1월에 다시 수업을 시작하기로 해서요.
그렇게 해서 선택된 산이 심학산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언젠가 고양 올레와 함께 가 본 곳이기도 했지만
길눈이 어두운 저는 동행한 대장금의 말을 듣고서야 아하 그렇구나 바로 이 곳이 그 곳인가 둘레둘레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 온 사람들을 뒤로 하고 6명이 모인 산행인데요. 운동을 가장 우선시해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뒷전인 운동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북한산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산에 오는 것은 어떨까? 지금 당장은 그렇게 마음먹지만 내려가고 나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나
싶게 또 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을 자꾸 하는 일이 내겐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가지런히 놓인 나무를 보다가 그렇다, 인생에서도 이렇게 한 번에 건너기 어려운 곳에는 자잘한 징검다리가
필요하고, 그렇게 잘라서 무엇인가를 해나가거나 실천하다보면 삶의 무게가 한결 덜어질 것이 아닐까?
생각이 저절로 그렇게 번져서 카메라를 꺼내게 되더라고요.

앞서가는 일행을 뒤에서 찍으려고 하다가 그 뒷자리에 따라붙은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꼭 일행만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길에서 만나는 것도 다 인연인데 싶어서 찍고 나서 보니 노란 색이
뒤에서 받쳐주니 눈이 더 호사롭군요.

뒤에서 보는 심학산안의 절, 대불의 뒷모습에 눈길을 주면서 함께 걷던 사람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요.
그녀는 최근에 암으로 고생하던 언니를 다른 세상으로 보낸 사람이어서인지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한 것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노라고요. 생과 사의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지만 태어나고 죽는 것은
우리들 각자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무겁기도 하고 무력하기도 한 것이 아닐까, 특히 죽음은
그렇다해도 나는 어떻게 마지막을 맞고 싶은가, 할 수 있다면 ? 그런 생각을 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했지요.

수요일 모임의 요리교실을 통해서 제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그녀, 앞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모습을 찍으면서
생각했습니다.그녀는 과연 그녀가 내게 열어준 문의 놀라움과 소중함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고마워하는 마음도

정상에 다 올라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한 장!!
왼쪽의 그녀는 마침 내년 1월에 예술의 전당앞으로 이사를 간다고요. 그렇다면 역사모임과 월요일 미술사 책
읽기 모임에 참석해보면 어떤가 권했더니 벌써 미술사 책은 신청해서 읽고 있다고 하네요. 예술의 전당앞에서
살다가 이 곳으로 이사왔고, 다시 사정이 생겨서 그 동네로 간다는 그녀는 예술의 전당에 책 한 권 들고 가서
그 곳을 동네 사랑방처럼 이용했던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그 곳에 오면 집으로 쉬러 오라고 미리
초대를 하기도 하고, 좋은 음악회는 함께 가고 싶기도 하고, 좋은 전시도 함께 가자고 권해서 내년 금요일의
새로움이 기대가 되네요.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 산길 옆에 센스있게 만들어놓은 앉을 자리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쉬어가는 자리, 봄이 오면 그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혼자라면 들고 간 소설책을 읽으면서 잠시
쉬기도 하면 좋을 자리처럼 보여서요. 인생의 메타포처럼 보이는 징검다리, 작은 공간 이런 것이 오늘
산행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마 그런 주제에 대한 생각을 하는 중이라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헤어져서 백병원에 내려달라고 부탁한 다음, 보람이의 초진기록부 떼느라 응급실에
가보니 내가 알던 상식, 응급실에는 진료가 없는 밤에만 환자들이 오는 곳이란 상식이 틀렸더라고요.
그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응급환자들이 있던지요. 놀랐던 것은 요도인지 요로인지 결석환자가 왔는데
아파서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겁니다. 젊은 처자가 열이 너무 심해서 어른과 함께 와서는 얼굴도
못 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난 주 화요일의 새벽 시간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얼굴에 심한 상처가
생겨서 온 중년 남자는 아프다고,소리를 크게 내면서 사정을 설명하기도 하고, 말을 아직 못 하는 나이의
어린 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울상이 되어 있네요.

같은 공간,혹은 같은 지역에서 살아도 우리가 각자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다른가, 그럴 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일까, 병원에서 번호가 불리길 기다리면서 있었던 약 한 시간. 들고간
소설을 읽다가 ,응급상황을 요하는 환자를 바라보다가, 머릿속이 복잡하더라고요.

집앞 성당의 화단에 아직도 성성한 색을 보여주는 이 꽃들이 너무 반가워서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차례 다시 멈추어서게 되었습니다.

봉헌초를 보면서 오늘 응급실에서 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게 되네요. 사진을 찍는 행위가 무엇을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그 앞에서 그런 마음을 모아보는 것,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 일
없는 일상이 정말 고마운 것이라고 마음 깊이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