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아들이 수시 논술 쓰러 가는 날, 준비도 되지 않은 논술이고, 성적우수자 전형으로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라서 본인이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제,오늘 이틀 논술을 쓰러 가네요.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말러의 교향곡을 틀어놓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일요일 새벽부터 말러라니, 게다가 교향곡을 ? 다른 때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금요일
KBS 정기공연에서 함신익 지휘로 말러를 듣고는 자꾸 귀에 어른거리는 소리가 남아서 챙겨서 듣게 되네요.
그러니 마에스트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시향에 비해서 늘 뭔가 모자란다고 느끼게 되던 KBS 공연이었는데 이번에는 함께 간 네 사람이 모두
한 입으로 달라진 연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시간도 생각나네요.
좋은 연주회란 그 때 그 자리에서의 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다시 듣고 싶게 만들고
그런 경험에서 파생된 다른 음악에로의 이끌림을 촉발하는 연주회라고 생각하는 내겐 집에서 교향곡을
자발적으로 듣게 만드는 연주회야말로 그런 정의에 적합한 연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기 공연이 끝나고 첼로만으로 연평도 참사를 생각하고 묵념하게 만드는 음악연주가 있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지휘자가 마이크를 잡고 오늘 기쁘고도 슬픈 날이라고, 그래서 이 곡을 준비했다는 멘트가 있었고요.
음악이 갖는 기능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그래서 사람의 상처를 보듬은 기능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는데요, 음악회장에서만이 아니라 찾아가는 음악이
점점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마지막 악장의 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악기 사이의 공명, 사람 사이의 공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시간, 음악에서만이 아니라
삶에서 특히 공명이 필요한 시대, 공과 명이 어울리는 데에 누가 먼저가 아니라 서로가 동시에, 서로가 함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주를 듣는 일요일 아침,
요즘 몰아서 보고 있는 NHK의 료마전에서 사카모토 료마와 다카스기 신사쿠의 공명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