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도서관 이 주일에 한 번 나들이를 가는데요, 아무래도 일요일 오전이 조금 한가하게 시간을 쓸 수 있어서
이제는 고정적으로 일요일 오전에 가게 됩니다.

도서관 밖에 잠시 앉아서 빌린 책을 뒤적였습니다. 무엇을 먼저 읽을까 견주어보느라고 뒤적이는 이 시간의
즐거움은 책을 빌리러 다니는 사람들의 공통된 즐거운 고민이 아닐까요?
그런데 책을 올려놓은 탁자에 낙서가 한가득입니다 .자신의 집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네요.
카바레라니 ? 무슨 야리꾸리한 책제목 같지만 사실은 카바레에서 싹튼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해서 빌린 책이지요. 파시즘은 금요일 읽고 있는 모던 타임즈의 서술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껴서
조금 균형잡힌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빌린 책이고요.

돌아오는 길 이 주전에 지나던 그 길의 꽃밭이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공간이 되었더군요. 흐드러지다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작약 ,작약, 작약의 향연이었습니다.

만개한 꽃보다는 이런 상태가 더 눈길을 끄네요.


요즘 뇌에 관한 글을 자주 읽게 되는데요, 우리가 뇌를 고정적인 실체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우리의 행동에
의해서 뇌가 가소성을 갖게 된다는 구절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요즘 카메라를 대하는 제 태도, 그로 인해서
생긴 변화를 생각해보면 그런 말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처음에는 그저 대상을 무조건 찍으려고 들기만 하다가 요즘은 조금 더 생각해보고 이런 저런 각도에서 찍어보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어서 바라보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처음보다는 버리는 사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요일 나들이가 도서관이 목적인가 사진찍는 재미가 우선인가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네요.


사람이 살면서 만나게 되는 우연한 기회가 자신의 삶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가끔 있지요.
제게도 그런 경우가 여러 차례 있는 셈인데 그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혹은 그 때 나의 상태가 어떤 가에 따라 그 일이 주는 영향이나 지속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그 일에 반응하는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오늘 한 남학생이 물어보더군요.제게 ,선생님은 어떻게 모르는 단어가 없어요?
모르는 단어가 없다고 ?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물어보거나 모르는 정도의 단어를 아는 것은 기본이지
그러나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 천지야. 그러면 어떻게 읽어요?
당연히 이해가 되는 한에서는 그냥 넘어가고 몰라서 이해가 불가능하면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지.
고등학생들이 알아야 하는 단어를 선생님이 공부를 통해서 아는 것이 신기한 것이 아니고
사실은 어떻게 잊지 않고 있는가가 궁금한 것이었다고 질문을 정정하더군요.


그래서 덕분에 뇌에 관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단기기억을 관장하는 부분, 그것이 장기 기억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길에서 지름길은 없지 않을까? 그러니 장기기억을 원하면 네가 주인이 되어서
해마를 자극해야 한다고.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도 결국 잊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해봐야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을 버리는 것. 우리는 보통사람이므로 될 때까지의 기간을 오래 잡고 그대신 그 때까지 즐겁게 반복할 것
반복하다보면 그 나름의 근육이 생기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 알게 되는 지식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지난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함께 반복하는 것이 중요한 것같다고 강조를 했지요.

아무래도 영어에 관해서 말하면 이미 선생님은 알고 있으니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다고 오해할 것 같아서
불어공부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니 오히려 더 잘 듣는 느낌이더군요.
한참 이야기하고 나니 그 녀석의 반응 ,그런데 선생님 불어는 어디에 쓰려고 배우시나요?
글쎄, 미술사 책에 나오는 인용구가 불어가 많아서 답답해서 읽고 싶거든,
단지 그 이유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느라 고생하는 선생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표정의 아이를 바라보다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스스로 터득하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