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이유로 산행을 중단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려니 어쩌다 한번씩은 몰라도
정기적인 산행은 무리일 듯 싶어서 지난 달부터
걷기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가 오늘 첫 걸음을 떼었습니다.
행복한 걷기여행...이라는 터치아트 출판사의 책자를
구입해서 우선은 제가 사는 가까이 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지요~
사진은 작년에 구입한 광각렌즈가 잘 적응이 되질 않아
이 렌즈를 주로 사용하여 이 렌즈의 화각에 적응도 해 보기로 하였답니다.
사징기와 함께 하는 걷기여행으로 사진이 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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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아침
파란 하늘의 흰구름과 햇살은
사징기를 들고 집을 나서기에 충분한 유혹이었다.
남편 출근후 오늘부터 걷기로 한 코스를
다시 한번 훒어 본 후...
고구마를 쪄서 포트의 따근한 커피와 함께 담고
사징기 밧데리 점검후 10시 40분경 집을 나섰다.
집안에서 느끼던 온기와는 전혀 다르게
한 겨울처럼 차가운 바람이 몰아친다.
문득 옷을 너무 얇게 있었나 싶었지만 좀 걷다보면
괜챦겠지...하고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대화행 전철을 타고
11시 20분쯤 삼송리에서 하차를 했다.
삼송리역 5번 출구로 나올 때 만 해도 햇살이 참 좋았는 데.....
삼송리역 5번 출구를 나서서 바라 본 거리 모습이다.
5번 출구 바로 앞에 마을버스가 여러 대 서 있다.
서삼릉으로 가는 마을버스는 41번 이지만
오늘은 걷기로 한 길이므로 마을버스를 외면하고는
곧장 앞으로 걸어 가는 데 점점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고
뻥 뚫린 대로변으로 차가 달리는소리가 굉음에 가깝다.ㅜㅡ
한 정거장쯤 걸으니 생각지도 않은 두갈래 길이 나온다.
자세히 살펴보니 토지공사에서 아파트 공사를 시작하는 지
도로쪽으로 펜스를 쳐 놓아서 길을 걷기가 조금 위험했다.
바짝 펜스쪽으로 몸을 붙혀 걷다보니
농협대학과 원당으로 갈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중간에 펜스가 뚫린 곳을 들다보니 여기저기 공사 흔적이 보인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공사중이어서
기존 우측으로의 길이 막히고
조금 더 올라가서 우회를 하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큰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니
예전에 왔었던 분위기의 길이 아니다.
공사로 인해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길이
흐려진 날씨만큼이나 폐허를 방불케 한다.
그래도 일요일이어서 인 지 공사장 트럭과
종마공원으로 들어 가는 듯한 승용차가 빈번히 달린다.
멀리 서삼릉에서 출발한 듯 보이는 노란 마을버스도 보인다.
걷는 길은 예전 같지가 않고 군데 군데 공사로
심란하기 까지 하다.
공사장 안쪽으로 멀리 삼각산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셧터를 누른다.
삼송리 전철역에서 걷기 시작한 지 40여분 만에 농협대학이 보이고
농협대학에서 조금 더 걸어서 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서삼릉은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 왔던 낯익은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은사시나무길로 조금 일찍 단풍이 질 때 왔음 좋았을 걸 가로수가 모두
나목이 되어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2년만에 차가 아닌 뚜벅이로 걸어선 온 길에 낯익은 길을 보자
발걸음마저 가벼워 진다.
거의 1시간여를 걸어서 도착한 서삼릉과 종마공원 입구에는
목장인 만큼 푸른 잔듸빛이 남아 마음까정 시원해 진다.
올해 조선 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내가 걷기여행을 시작하면서 첫번째로
왕릉코스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걷기와 더불어 사진도 담고 역사 공부도 할 생각이다.
서삼릉의 출입문은 종마공원과 나란히 있었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나들이 나선 사람들이 조금 많았는 데
모두 서삼릉을 외면하고 모두 종마공원으로 향하였다.
나 홀로 입장권(1,000원)을 구입하여
조용한 서삼릉을 들어서니 적막함이 내 발길을 감싸 온다.
현재 서삼릉(西三陵)은
희릉, 효릉, 예릉등 3기의 능이 있어 서삼릉이라고 부르며
그밖에 의령원, 효창원, 소경원, 태실 등이 있다.
서삼릉 입구에서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의령원과 효창원이 자리를 하였다.
윗 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릉이 효창원으로 조선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묘소이다.
1782년(정조6년)에 태어나 5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처음에는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에 있었으나 1944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한다.
그러고 보니 효창공원의 지명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효창원 뒤편으로 자리한 의령원은 조선 영조의 아들 장조(사도세자)의 제1자
의소세손의 묘소이다. 의소세손의 이름은 정이며, 3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서대문구 북아현동(중앙여고내)에서 1949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한다.
비문의 글씨가 영조의 어필이라는 데 능안으로 울타리를 쳐 놓아서 들어가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
모두 이곳에 자리한 두 능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왕세자들의 능인지라 둘러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지만
흐렸던 날씨의 구름속에서 해가 반짝 나는 것으로
모두 왕생극락했으리라는 생각이 들며 다소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아담한 한옥의 서삼릉 관리출장소를 지나
예릉으로 향하였다.
예릉으로 들어서는 홍살문 앞에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국민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소풍을 오면 눈에 익었던 홍살문과 정자각
그리고 남자 아이들이 돌석상 위를 타고 철없이 뛰놀던 왕릉이
눈앞에 추억처럼 펼쳐졌다.
그 옛날...동산같던 그 아래를 지금은 막아 놓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잠시 어찌해얄 지 갈등이 생겼지만 나이들어 찾은 왕릉을 보고도 싶고
사진도 담고 싶어 큰맘 먹고 막아놓은 나무빗살 담을(?) 넘어 올라 갔지만
가까이도 닥아서지 못한 채 멀리서 묵념과 함께
셧터를 눌렀다.
이 능은 예릉으로 조선 제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이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이며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이다.
헌종이 재위 15년만에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순원왕후에 의해
강화도 촌거에서 불러들여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철인왕후는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딸로 대왕대비에 의해
1851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원자를 낳았으나 곧 죽었고
1878년 고종 15년에 창경궁 양화당에서 승하하였다.
부귀영화를 누렸을 듯한 왕가의 왕릉에서....
후사를 얻지 못하고...또 얻은 세자도 일찍 여위는
슬픈 사연들에 권력의 무상함을 깨닫게 한다.
마지막 참배는 희릉이다.
역시 희릉도 능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아 놓았다.
주위에 견학온 교회의 어린아이들도 있고 하여 담을 넘기가 눈치가 보여
그 가까이에서 사진 한컷을 담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 하였다.
희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운씨의 능이다.
1506년 중종의 후궁인 숙의로 책봉되었으나 정비인 단경황후 신씨가 폐위되자
정비인 1507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세자인 인종을 낳았으나 산후병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경복궁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조선의 역사의 한 부분이 자리한 서삼릉에서
짤막하게나마 서삼릉 안내지를 보아 가며 참배하는
뜻깊은 걷기여행이 되어 뿌듯함을 안고 다음 코스인
종마공원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