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부터 갑자기 마음속이 떨려옵니다.
시험을 너무 잘 보아서 인터뷰하러 오는 것아닌가 하는 상상부터 시작하여 시험을 망쳐서
방안에 들어가 울면서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상상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변하는
아들을 지켜보면서도 그저 그렇게 반응을 하고 있었는데요, 정작 시험전날이 되니
차라리 내가 보는 시험이라면 이렇게 저렇게 대처하면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서 일까요?
새벽에 깨우고,아침밥을 깨적거리면서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버스타고 혼자 가겠노라 따라나서지 말라는
아이를 배웅하고 들어오니,갑자기 그림을 보고 싶어지는군요.

오늘은 목요일,파워 오브 아트의 마지막 화가 로스코를 보는 날이라서인지 저절로 로스코의 그림에 손이
가네요.
검색을 하러 들어온 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이 시간에 누구인가 했더니 지금 뉴욕으로 여행간 딸이 시간을 조금 못 맞추고 동생과 통화하려고 전화를
한 모양인데요,이미 동생은 출발한 상태라 엄마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니 엄마,이 곳에서 매일 밤 뮤지컬을 보고 있다고 자랑을 하네요.
매일 밤?
싸게 파는 표를 찾아서 보는 중이라고요.
이것이 뉴스인 이유는 사실은 공연을 일부러 찾아서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서 놀라울 수밖에 없는데
거기다가 모마에 가서 칸딘스키 특별전도 보았고 미술관도 매일 다닌다고 하니
사람은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인가요?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모마에 가서 그림을 보고 있을 아이를 상상하게 되네요.

어렸을 때부터 글자를 싫어했지만 언어에 대해서 귀가 열려서 다른 외국어를 빠르게 알아듣던 아이가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덕에 다른 나라에 가서도 쉽게 적응을 하고 혼자서 잘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면서,기특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신기하기도 하다가,이왕이면 글속에서도 매력을 느끼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하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합니다.

어제 낮시간에 집에 와서 자본론을 읽고 있던 중 방에 들어온 아들이 말을 걸더군요.
엄마,그런데 이 책을 왜 읽는거야?
이 책을 읽는 모임에 가게 되었노라고,그런데 그 곳에 고등학교 3학년아이도 등록을 하고
시험이 끝나면 수업하러 온다고 하더라는 말을 하자,아이는 너무나 이상하다는 듯이
왜 그렇게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가 있을꼬 하고 반응을 하더군요.
엄마는 누나랑,너도 그곳에 가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니 사양하겠다고 합니다.
저 혼자 꿈꾸는 로망?중의 하나가 두 아이가 다 인문학에 대해서 조금씩 관심을 갖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낯선 공간에 가서 사람들과 사귀면서 공부하는 것인데요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생기겠지요?

이제 마음이 진정이 되었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네요.긴 하루가 되겠지만 그래도
역시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는 것이고,마음을 담아서 제대로 살면 되는 것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