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레길에서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장소입니다.
해설사님이 손을 집고 있는 비석은 조선시대 금산 출신의 기생 일타홍의 묘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옆의 묘가 문정공이란 시호를 받은 심희수의 묘였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 나니,그저 한자로 씌여진 묘비에 불과하던 그 곳이 새로운 느낌으로 확 다가오면서
흥미로운 장소로 바뀌었다는 것인데요
두 사람은 어느 대가집 연회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일타홍) 미모에 반한 심희수는
당시 열다섯,대가집 아들로 말괄량이짓을 서슴치 않던 인물이라고 하네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 그는 일정기간을 함께 살게 되지만 이것은 임시방책에 불과하다고
노력하여 과거에 급제하게 되면 삼일안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녀는 심희수를 타일렀다고 합니다.
그는 일타홍을 다시 만날 일념에 공부하여 결국 과거에 급제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동안 결혼을 하였지만 심희수는 부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고요.결국 일타홍을 다시 데려와서
함께 살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이 각각 이었겠지요?
금산군수가 된 심희수는 (마침 그녀도 금산출신이라서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그 곳에서 병이 들고
결국 죽게 된 그녀를 장례지내고 유언에 따라 고양의 선산에 묻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사대부가
본부인이 아닌 사람을 선산에 묻는 일은 정말 파격적인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지요.
묘비에 적힌 두 편의 시는 한 편은 그녀의 절명시,다른 한 편은 심희수가 버들상여에 그녀를 싣고 가면서
지은 시라고 합니다.
한 시대가 대표로 내세우는 논리는 윤리로 책에서 배우게 되지만
한 시대를 실제로 살아간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고
그것이 기습이 되기도 하고,천둥이 되기도 하고,그리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혹은 지나가는 에피소드가 되기도 하지요.
길을 걷는 것만 생각하고 떠난 날,신라말,고려초의 청자요,그리고 조선시대 사대부의 삶,그 이야기에 얽힌
한 여성의 삶,문화재를 둘러싸고 생기는 지역에서의 문제.그리고 구한말 무과출신으로 의정부 참정대신이
되었다가,을사조약을 반대하는 일에 앞장서서 황제의 명령이라도 따를 수 없다고 일제의 협박에 굴하지 않았던
한규설의 묘앞을 지나가면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는 결국 대궐의 수옥헌이란 곳에 감금되었다가 바로 면직당했다고 하네요.
그 자리에 서서 해설사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지금에야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을 두고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지만은 이 사전을 놓고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소송을 하겠노라고 한다고요.
박정희와 장지연은 인명사전에서 빠졌다는 기사를 읽었던 일도 있고요.
무거운 마음을 추스리고 길을 나서니 이번에는 자연이 나를 바라보라고 유혹하네요.
어제 걸은 길중에서 가장 길걷는 맛을 느끼게 한 곳이었습니다.
가던 중에 민우회에서 사물놀이패 활동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과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궁금해서 말을 먼저 건넨 것인데요,이번 해에는 화요일에 신입반이 막 시작한 반이 있다고 하네요.
화요일? 물론 지금 당장은 철학모임,영화모임,그리고 올레길 걷기까지 화요일의 일정이 다 있어서
곤란하지만 장구와 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렇게 마음먹고 있는 중에
만나게 된,얼굴표정과 입은 옷만으로도 포스를 느끼게 하는 그녀와의 만남이 이상하게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아서 불쑥 불쑥 마음을 쑤석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길을 걷다가 어떤 건물에 벽화가 그려져 있거나 벽면에 도자기로 작업을 해 놓은 공간이 있어서 눈길을
주기도 하고,이렇게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나 색을 입힌 것만으로 시선이 가는 곳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미술이 실생활과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야말로 가치있는 작업으로
우리의 일상에 색을 입혀주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곰곰히 한 날이기도 했지요.
점심을 먹으러 들른 음식점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내려오다가 계단옆 공간에 있는 호박들이 정다운
느낌이어서 역시 카메라를 빼들게 되었지요.
미소마을이라,음식점 상호명이 인상적인 집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먹는 일도 즐거웠지만 사람들과의 무르익는 대화도 즐거웠고요.
그 곳에서 원당역까지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니까,가능하면 조용히 묵언하면서 길을 걸어보자고
민우회 대표가 이야기를 하네요.아,그것 좋은 방법이로구나 생각하면서 나선 길에서 만난 풍광입니다.
원당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한 생각,이렇게 좋은 길을 그냥 따라다니면서 걷기만 하면 미안하지 않나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회비를 내야할 것 같은데,그런데 문제는 어떤 조직의 회원이 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는 어찌 해야 하나? 그러면 그냥 올레회원이라고 생각하고 민우회에 가입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