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오전에 강남에서 역사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종횡무진 서양사를 쉬엄쉬엄 진도나가면서 대국굴기를 한 나라씩 보고 있는 중인데
독일편을 보는 날,한 나라의 빛과 그늘을 함께 지켜보면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고민이 되던 날이기도 했지요.
점심을 함께 먹은 다음,다른 날과는 달리 더 눌러 앉아서 이야기를 할 겨를도 없이 양천구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러 갔습니다.
평생 인연이 없던 동네 양천구를 지난 번에 이어 두 번이나 찾아가게 된 사연은
수요일 공부를 함께 하는 자전거님의 남편분과 그 분의 형수님이 그 곳 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데요,자전거님 집에 갔을 때 이미 몇 점의 그림을 보고서 아마추어로 그냥
그리는 수준을 넘기 시작한 사람의 다른 그림과 오랜 시간 동양화를 그렸다는 형수님의 그림이 궁금하기도
하고,그 곳에서 목동 금요일 역사모임의 멤버들과 만나고 싶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
마침 아람누리에서 하는 루치아 공연을 자전거님과 함께 가면 되니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갔다가
아람누리로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일석삼조의 길이었지요.

전시장에 가니 목동 멤버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마침 그 자리에서 손님맞이를 하고 있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이미 음악회에서 만나,술 한 번 밥도 한 번 그렇게 이야기나누며 만난 적이 있어서
기억을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림을 일단 둘러보고 나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다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한 작가라서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우리나라
전통 다리중에서 아름다운 다리들을 여러 점 그렸더군요.전시회 제목도 역시 아름다운 다리전이기도 했고요.
여러 점의 그림중에서 제 눈길을 끄는 몇 점에 대한 이야기,그것을 어떻게 그렸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그림 두 점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전시장에서 그런 딱지를 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해서일까요?
둘 다 다리를 그린 작품에 붙은 빨간 딱지가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한쪽 그림을 다 보고 옆으로 옮겨서 그 분의 형수님 그림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더 많이 놀란 것은
그 쪽의 그림이었지요.
2002년부터 시작한 그림이지만 원래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다는 그녀의 그림이라서일까요?
시작이 훨씬 더 전에 된 것은 아닐까 싶은 필력이 느껴지는 ,더구나 상당히 다양한 그림이 있어서
보는 동안 눈이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면서 알게 된 전서로 쓴 글씨 덕이 재주를 이긴다는 의미의 덕승재란 글씨가 눈길을 끌었고
심지어는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쓴 글씨도 있더군요.
사군자,석류그림,소나무,가족의 화합을 바라는 문구를 글씨로 써서 표구를 아주 잘해서 표구와 잘 어울리던
글씨,생동하는 느낌의 개구리그림등,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아까운 솜씨를 바라보면서 관심과 노력이 어울린
현장앞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뜻을 갖고 그 길에 몰두하는 것이 가져오는 좋은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한자를 쓰다가 한자시험을 공부해서 일급에 합격하기도 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정말 놀랐습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시기에도 따기 어렵다는 한자 일급을 따다니 그것도 놀라운 일이어서요.

나중에 합류한 물찬 제비님과 함께 작가분께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한사코 배우면 누구나 다 한다고 겸손하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배우면 누구나 같은 성취를 이루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보다는 나아지겠지
그런 마음이 들어서 요즘 처음보다는 덜한 강도로 드로잉하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 든 날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화가의 전시회에 가서 느끼는 감동이 큰 것 못지 않게 이런 전시회에 가면
나도? 이런 마음이 불끈 들기엔 더 적절한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전시회가 있다면 (물론 개별적인 인연이 있는 경우겠지만) 더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가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된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