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자주 만나게 되는 예술가가 몇 명 있습니다.
일부러가 아닌데도 이렇게 저렇게 마주치게 되고 그래서 일년에 서너 차례 제대로 만나게 되는 인물
그 중의 한 사람이 미켈란젤로입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그것도 피렌체에서의 일정시기를 다룬 책 미켈란젤로,피렌체 1492-1504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니,책에서 언급한 새롭게 알게 된 작품들을 사이버상에서 만날 수 있나
귀한 자료를 만나지 못한다 해도 새로운 눈으로 작품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1492년,역사에서는 콜롬보스의 항해로 더 잘 알려진 연도이고,스페인에서 레콩키스타 운동이 끝나서
이슬람 세력이 완전히 백기를 들게 된 해,그로 인해 스페인에서 살던 유태인들,이슬람인들이
그 곳에서 쫓겨나 다른 지역,특히 네덜란드로 이주해서 그 곳의 상업 활성화에 힘을 보태게 된 해
그러나 미술사에서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지원하던 강력한 후원자 로렌초가 죽은 해로 더 기억되고
있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 때 미켈란젤로는 로렌초의 조각 정원에서 배우면서 그 집에서 일종의 양자처럼 함께 살고 있었던 아직은
13살 ,어린 나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는 달리 경박했던 큰 아들 피에로,그 보다는 훨씬 기량이 컸던 둘째 아들 조반니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려니 조선시대 역사를 읽다가 느끼던 안타까움이 겹쳐지더군요.
순서가 바뀌어 피렌체의 정치를 맡았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꼬?
그를후원하던 로렌초가 죽고 나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미켈란젤로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더군요.
그러나 정작 친아버지는 아들이 조각을 하는 것을 일종의 천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후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사람이라고 하는데,그로 인해 평생을 아들에게
손을 내밀고 살았던 모양입니다,아버지만이 아니라 나머지 형제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 강했던 미켈란젤로는 지치지 않고 그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책에 선명하게 그려져있더군요.

1495년 성당의 장식을 위해서 만든 조각상,이 조각상을 보고 있으려니 이 조각에서 우리가 나중에
경탄하는 마음으로 조각을 보게 되는 더 훗날의 미켈란젤로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조각에 생명력이 느껴지는 기분이 드는 대리석 천사를 지긋이 바라보게 되네요.


나중에 피우스 3세 교황이 된 피콜로미니 추기경의 교회제단화를 위한 작품 두 점입니다.
1501년에서 1504년 사이에 작업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요,1503,4년은 피렌체의 주문에 따라 다비드 상을
만들기도 한 시기로군요.
그런데 참 다른 느낌의 조각이구나 싶어서 예술가가 주문을 받아서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1496년에서 97년까지 작업한 술취한 바쿠스 상인데요,이 작품이 오히려 성당을 위해서 작업한 것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 드네요.

전신을 다 볼 수 있는 사진입니다.
그가 작업한 바쿠스상,이것을 아주 오래된 작품인 것처럼 속여서 판 사람이 있었더군요.
그 작품을 산 사람이 로마에 있는 추기경이었는데 감식안이 훌륭하다고 자부하고 있던 그가 속아서
이 작품을 샀다가 결국 그렇게 오래 된 작품이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작업을 한 사람의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다고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사람의 추천장을 들고 로마로 가서 추기경을 만난 미켈란젤로는 그곳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네요,그렇게 해서 맡게 된 일중의 하나가 피에타라고요.

자료를 찾으면서 보다 보니 이미 밤이 늦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본 다음 내일 하루 더 찾아가면서 미켈란젤로를 읽은 after를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