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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 - 그대를 위하여...
회색인 |
조회수 : 1,272 |
추천수 : 90
작성일 : 2009-04-28 02:06:15
Dave Grusin - On Golden Pond
그날은...
아침부터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를 출산한 직후부터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아내,
수술이 불가피한
선천성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 때문에
아이가 태어난 지 하루만에...
그리고,
거의 일주일여를 내내 눈물로 지내왔고
여자이기 때문에, 며느리기 때문에
자기 잘못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님께 송구스러움까지 느껴야 했었습니다.
아이의 수술은 잘 됐었지만
퇴원한 후로도, 그 아이 옆에 붙어서,
매일같이, 24시간을,
온통 자식을 위해 다 바쳐야 했던 아내,
조금만 이상한 징후가 보여도
가슴부터 철렁 내려 앉는다던 아내는
출산 후 여기저기 병원으로 뛰어다니느라
몸조리를 제대로 못해
지금도 자주 쑤셔오는 뼈마디들을 아파하면서도
내색 한번 않고 자식걱정에 여전히 매일밤을 지새웁니다.
언젠가 아이의 2차수술 후,
퇴원하고 첫 외래 진료가 있던 날
아이의 출산 후 외출다운 외출...이라기 보다
단 한 순간도 마음놓고 집을 나서지 못했던 아내는
그 병원가는 일도 외출이라고
아침부터 옷장을 뒤지고 이옷저옷 입어보며
즐거워하던 마음 여린 초보 어머니였었습니다.
그날은 그 전 달에 아내의 사촌 언니가 사준
아이의 옷을 바꾸러 백화점에 가야 했습니다.
저더러 다녀오라는 아내에게
전 내가 아이를 볼테니
자기가 갔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저 그렇게 외출을 한번 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무 걱정없이,
즐겁게 세상의 공기를 마시며...
흔쾌히 시간을 내준 처형을 만나
그렇게 오랜만에,
너무 오랜만에 아내는 외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시간이 멀다하고 전화를 합니다.
- 아가는 좀... 어때?
- 울지 않아?
- 오늘 주사 맞아서 많이 칭얼거릴텐데...
- 오빠... 힘들지...
아이를 보는 일은 힘은 좀 들어도
저 역시 아내 못지 않게
잘 보는 편입니다.
입원해있던 병원에서는
아빠로서는 유일하게 제가 애보는데 선수라고
다른 아이들 엄마 사이에서
소문도 자자 했었습니다. -_-)V
아이는 그날 주사가 정말 많이 아팠는지
전에 없이 많이 칭얼거리고
우는 소리에 노골적으로 짜증을 실어 내질렀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도 한 성질하는 아빠로서
아이에게 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평소처럼 침착하게
달래도 얼르고 안아주고 둥기둥기~ ....
온갖 개인기 다 동원하며
버라이어티 쇼를 보여주는 열성을...
오후 한나절을 같이 보내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언니랑... 저녁까지 먹고 오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결국
아내는
오후 6시께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지금 지하철 탔으니까
한 30분정도면 집에 도착한다고...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흔들침대에 누워 잠든 아이를
고요히 두고
저녁을 준비 했습니다.
메뉴는
미역국에 김치볶음에 갈치조림에 계란찜에 파래무침까지...
그저 제가 할 줄 아는 반찬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 대단한 찬은 없었지만
들어오자 마자 식탁에 준비된 저녁상을 보며
아내는 눈물을 글썽입니다.
벌써 6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날의 이 기억은 너무 생생해서 도저히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래서 다들 결혼하고 사나 봅니다.
먼길, 출장가있는 엄마를 부르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두고 잠깐 접속했습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단 한가집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등을 돌려도
나를 믿어주는 있는 오직 한사람일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 확신속에 저는 결혼을 결심했고
이제 6년하고도 11개월째 접어들었는데
그런 제 믿음에 과분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때는,
아직 더 살아봐야 알꺼라고
친구들은, 선배나 주위 사람들은 말하지만
2년 4개월의 연애 기간과
6년 11개월동안의 결혼 생활을 지나오면서
저의 선택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음을
매일매일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서로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조금씩의 모자람과
조금씩의 더 나음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죽음으로 헤어지는 날까지
어떤 사람들처럼 부유하진 않아도
누구처럼 호의호식 하진 않아도
살면서 진짜 행복이란게 뭔지,
사랑이란게 뭔지 알아가면서
아, 이것이 사람이 사는 것이구나...
깨달으면서 살 수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별로 맛도 없는 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던 아내는
특별히 미인도,
남자를 황홀하게 만드는 세 단어,(-_-;;;;;;)
늘씬쭉쭉빵빵한 글래머도 아니지만
제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PS. 음악은,
영화 "황금 연못"(마크 라이델 감독 / 헨리 폰다, 캐서린 헵번, 제인 폰다 주연 / 1981년작 / 유니버설)의 주제 음악입니다.
노년의 부부의 사랑이 특별히 가슴 절절이 사무칩니다.
성장기의 불화를 겪었던 같은 성격의 아버지와 딸의 소원한 관계가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잔잔하게 묘사했던 수작입니다.
나중에 저도 제 아내와 그렇게...
노년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부부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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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미주
'09.4.28 10:35 AM아름답습니다.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걸 참았다가 그냥 가만히 마음을 내려놓으니 잔잔한 행복함이 전해져 옵니다.
저를 위해 모든걸 감내하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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