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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불가능은 없다?

| 조회수 : 1,579 | 추천수 : 180
작성일 : 2009-04-26 09:20:37

지난 금요일 밤의 일입니다.

어려울까,지루할까? 그래도 언젠가 음악회 표를 받고 난감해하다가

그래도 일부러 보내주신 분의 성의를 생각해서 가게 된 현대음악 연주회가 생각났습니다.

그 때도 작곡가 진은숙의 곡을 연주한다고 해서 단지 여성작곡가는 어떤 작곡을 하는가 궁금함을 품고 갔던

음악회가 있었거든요.

지루해서 잠이 들면 그것도 경험이지 하고 마음 편하게 먹고 연주장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현장에서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지휘자를 직접 바라보면서 연주를 들어서 그런지

현대음악에 무사히? 입문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돌아왔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이후 오랜 세월 가능하면 금요일 마다 음악회에 참석하고 있어서일까요?

금요일 연주회는 몸이 피곤한 상태여서 그다지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는데도 점점 곡에 몰입하게 되었고

마지막 곡은 특히 음악이 소리를 즐기는 것에서 한 차원 넘어서 소리로 몸을 함께 즐기는

그런 클라리넷 연주자의 협주곡에 매력을 흠뻑 느꼈습니다.

이럴 수가,악기가 내는 소리가 이렇게 다양하다니,돌아오는 길에 캘리님과 연주장에서의 흥분을 서로

나누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국대에서 지하철로 갈아탔습니다.

들고갔던 미켈란젤로 1492-1504

1492년은 로렌초가 죽은 해이고,1504년은 다비드가 완성된 해,그 사이의 기간을 잡아서

미켈란젤로를 조명한 일종의 평전인데요 처음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는 후줄근한 표지의 책이라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던 책인데 그래도 인물이 인물인지라 다음에 가서 여러 권 책을 살 때

혹시나 해서 슬그머니 집어 넣었던 책,그러고도 오랫동안 슬며시 젖혀둔 책인데

그 날따라 첫 페이지의 소개글에 마음이 동해서 지하철에서 자려던 잠이 확 달아나버렸습니다.



책속에 코를 박고 읽었다는 표현이 적합했던 그 날,갑자기 옆자리에서 소리가 나네요.

공부 열심히 하시네요.

어떤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는데 아마 제가 볼팬으로 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있었던 것이 만학도가

지하철에서 공부하는 모습으로 비친 모양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책을 읽다가 보니 벌써 마두역,집으로 연락을 했지요.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나 확인하려고,

그러자 전화기속에서 승태가 소리칩니다.엄마,맛있는 것 많이 사다줘

나,시험 엄청 잘 보았어.

아니 무슨 시험? 중간고사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의아해서 물어보니

4월 모의고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언수외,그리고 사탐 세 과목 합친 결과가 99.43%라고 전화기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오더군요.기뻐도 눈물이 나온다는 것,그것도 갑자기 솟구치는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시작된 긴긴 겨울이 생각났습니다.

학교에 불려가기도 하고 이러다간 서울안의 대학에 갈 수 있을까,아니 무사히 졸업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간들,작년 담임선생님에게 학교에 오시라는 전화를 받고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암담해서 전 날 잠못들고 고민하던 시간,낮시간 전화가 오면 혹시나 하고 긴장해서 전화를 받기

무섭던 시간도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들을 묘하게 선동해서 수업분위기를 흐리고 이상하게 수만 생기면 아이들을 몰고 나가 축구를 한다고

달래도 보고 설득도 해 보았지만 아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그러니 앞으로 매를 대도 좋은가 물어보던

담임선생님앞에서 긴장을 했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이 아이를 학교에서 내보내고 싶다는 소리입니까?

그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작한 긴 이야기,몇 달이 지났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남겨진 그 시간속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내보낼 것이 아니라면 그냥 그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너무 노력하지 마시고

(4년이 넘도록 저도 노력하고 있었지만 되지 않은 일입니다,그러니 한 학년 맡고 있는 담임선생님이

의지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시도한다고 마음을 움직일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에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거든요) 그냥 3학년에 진학할 수 있도록만 도와주십사,그리고 매를 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진정으로 아이가 잘못해서 때리는 매인지,아니면 이미 생긴 감정으로 매를 대는 것인지

그것만 구별해서 때리셔도 된다.

선생님이 학생은 이래야 한다고 믿고 모범적인 아이들에 대한 상을 확고히 갖고 계신 것처럼 엄마인 저도

아이는 이래야 한다고 저래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만들고 있던 should의 범주가 와르르 무너지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이가 몸소 증명해주었으므로 이제 be의 상태로 아이를 보게 되었다

지금 대학에 못 가도 군대에 다녀와서,아니면 먼저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 때 다시 공부하겠다고 손을 내밀 것이다,그러면 그 때 진정으로 원하는 시점에서 공부를 시작해도 된다고

믿는다,그러니 너무 노력하지 마시고,그냥 거리를 두고 보아주시기 바란다고 말을 하고 나오던 길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제가 너무 당황해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자 보람이가 말을 했었지요,전 날밤

엄마,내가 함께 가줄까?

그래서 동행한 자리,옆에서 이야기를 다 들었던 그 아이가 밤에 동생에게 엄마가 너를 얼마나 응원하면서

말 한 줄 아느냐고 ,그러니 앞으로 좀 변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지요.

아마 그 이후였을 겁니다,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이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그 아이가 벌점이 다 차서 기숙사에 있기 어렵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날

첫 마디가 엄마,앞으로 다시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것 죄송한데 그래도 기숙사에서 나가게 되었노라고

말을 곱게 하더군요.한 번 엄마가 기숙사 사감님께 이야기해보아도 되냐고 물으니 싫다고 하네요.

그래서 두 말하지 않고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왜 그랬는가,왜 규칙을 못 지키고 살았는가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울 만큼

저도 오래 엄마 노릇을 한 것이지요.



두 번의 일로 아들의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더니 3학년 일년 알아서 공부해보겠노라고 선언을 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4월 모의고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냈습니다.

아,마음이 바뀌면 불가능이 없는 것일까?

결과가 좋아야 다 좋다고 하지만 제겐 이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그런 결과를 맛 본 아이는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해도 마음을 다잡으면 할 수 있다는 에너지가 생기겠지

그러니 조금 더 조금 더 박차를 가할 것이 아니라 이번 한 번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진심으로 우러나서 축하인사를 해주고,집으로 들어가는 길,내려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평소보다

조금 더 담았습니다.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Clip
    '09.4.26 9:56 PM

    멋진 나무들이네요.
    얼마전에 회화나무란걸 첨 봤어요. 아마도 예전에도 봤었겠지만, 그저 지나쳤을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인식된건 처음이니 처음봤다고 할 수도 있겠죠? 나무 색이 햐얗고 쭉 뻗은...
    이름이 회화인데, 회화소재로 좋은 나무야..라고 생각되었어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나무를 그릴때 봄의 나무를 그리기가 젤 까다롭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겨울은 그냥 가지만, 가을엔 색색이 풍성하게..여름엔 푸르른 녹음으로,
    그런데 봄에는 아기 손바닥보다 더 작은 잎사귀들을 그리기가 참 까다롭겠다 싶었거든요.
    그릴것도 아닌데, 별생각 다 하나 싶죠?

  • 2. 카루소
    '09.4.26 10:20 PM

    출처:서울시인터넷방송
    진중권 교수의 누나이신 진은숙님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작곡가 입니다.

  • 3. 노니
    '09.4.27 1:20 AM

    안녕하세요?
    글중에 아드님의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소설 같은 극적 반전을 읽는 느낌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집 아이 중에도 소설 같은 극적 반전을 기대해야 할 아이가 있는데
    먼저 부모인 저의 태도가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되 짚어보며
    가슴 한켠이 저려오는 그런 느낌과
    소설을 읽고 희망을 가져보는 그런 느낌을 같이 느껴 봅니다.

  • 4. 순이
    '09.4.27 11:50 AM

    우리나라 미루나무같은 모네?나무느낌..너무 감상잘했습니다...제가 미류나무도 좋아하고
    모네도 좋아하고 해서요...^^진은숙님 곡 들어볼려고 했는데,아쉽게도 제 컴엔 안나와주네요...;

  • 5. 마음가는데로
    '09.4.27 2:36 PM

    기다림과 믿음은 항상 엄마가 가지고 살아야하는데 조급함이 있어 아이를 긴장하게 하네요

  • 6. Hepburn
    '09.4.27 4:07 PM

    오늘은 그림보다 글이 더 마음에 와 닿네요
    자식을 앞에두고 인내심을 갖기는 정말 너무 힘든일이네요

    선생님 말씀처럼 한번 성공(?)을 경험한 아이는 다시 그것에 도전하기가 훨씬 쉬울것 같아요

    너무 기쁘시겠어요...

  • 7. 올드블루
    '09.4.28 11:58 PM

    글이 눈이 왜이렇게 들어오는지요...
    마음가는데로님의 말씀도 가슴에 와닿습니다

  • 8. sophie
    '09.5.8 2:00 PM

    글 좋네요..^^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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