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수요모임을 목동에서 했습니다.
모임을 했다기 보다 그 날은 목동의 아파트에서 영어도서관을 연 자전거님,그녀가 어떻게 그 공간을
꾸몄고 영국에서 사 온 책에는 무엇이 있는가,어떤 체제로 운영을 할 것인가 그런 것을 보고 이야기하려고
모인 자리였지요.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마음껏 놀고 오지는 못했지만 공간을 구경하고,서로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그녀의 서가에서 눈에 띄는 책을 보고 빌리고 할 시간은 충분해서
눈에 들어오는 클림트 책 한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볼 책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서 오늘에야 제대로 읽을 시간이 있었는데요
전시장에 다녀와서 책을 읽어서 그런지 눈에 확 들어오는 도판들과 설명이 신기한 날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확 끌린다거나 마음속에 담고 있는 화가가 아니라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던 화가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글이 마음속으로 휘젓고 들어오는 기분이 들더군요.

집에 와서 슈베르트를 틀어놓고 그림을 보아서 그럴까요?
이 그림이 제일 먼저 시선을 끄네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네 장의 음반이 들어있는 그 음반은 일본 여행때 함께 구한 여러 음반중에서
손길이 가장 덜 가던 음반이었는데 이상하게 요즘 마음이 폭발하는 기분으로 음에 반응을 하고 있어서
신기하게 여기고 있는 중이랍니다,언제 무엇과 어떻게 만날것인지는 참 예측할 수 없는 일이로구나
그렇게 느끼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요.

지난 번 클림트 전에 다녀와서의 가장 큰 변화는 수첩이나 노트에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피로하다고
느낄 때마다 무엇인가 드로잉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상하게 클림트의 그림에서 본 문양에서
힌트를 얻어 거기에서 조금 변형된 형태를 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베토벤 프리즈중에서 allegory of poetry 부분만 따로 보여주네요.
베토벤 프리즈는 클림트가 당시 유명한 조각가가 베토벤 두상을 전시하는 것에 보조하는 의미로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해서 전시 당시에만 쓰려고 값싼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평판이 좋자 그것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어렵게 보존을 해서 지금은
당시 빈 분리파의 공간 지하에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 글을 읽다보니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 온 프리즈는 어찌 된 것일꼬 갑자기 의문이 생기네요.

전시중에 본 유디트는 유디트 1이고 이번 그림은 유디트 2입니다.
유디트 1의 그녀와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는데 클림트는 이 작품에서 유디트를 동적으로 마치 춤추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시선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자신의 감각에 몰두한 모습으로
보여주기도 하네요.

베토벤 프리즈중의 일부인데요 보통 때 보았더라면 뭐야? 그러면서 그냥 넘어갔을 이 장면이
어라,이거 적대적인 힘이란 부분의 디테일이로군 하면서 다가가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미리 무엇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다음에 볼 것에 대한 몰입을 준비하는 선행학습이
된다고 할까요?

제 1회 빈 분리파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인데요,오른쪽에는 아테나가
그리고 그 위쪽에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책의 저자는 빈 분리파들이 자신들을 기존의 미술 즉 미노타우루스를 죽이는 테세우스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하고 풀이하고 있더군요.

베토벤 프리즈중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것이로군요. 이 프리즈를 본 다음 카핑 베토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못 보고 있네요.그 순간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서 실제로 행하긴 참 어렵다는 것을
블로그 정리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어떤 글은 마음을 잡아끌어서 다시 읽어보게 되는데 그 안에서 이것을 저것을 해보고 싶다,해야 한다
이렇게 다짐한 것들이 지금도 손도 대지 못했거나 하다가 포기한 것들,해보았지만 미흡한 것들이
많아서 혼자 실소했던 기억이 납니다.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를 그림속에서 보고 나니 이제 오늘은 이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곡과 한 일주일 정도 매일 즐겁게 만나서 그럴까요?
이 그림이 달리 보여서 보고 또 보고 자꾸 눈을 마주치고 나니 흡족한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