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드를 들으면서 사진을 정리하고 일어났습니다.
금요일 표가 남아있을까,좋은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늘 켈리님 신세를 지다가,이번에는 그녀가 목요일
예술의 전당 연주회에 가게 된 바람에 (원래 금요일
공연은 예정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표를 구하는
일을 해야 해서 전화로 두 자리를 예약을 마쳤습니다.
다음 주 음악회 파트너는 영미씨인데 음악을 좋아하는
그녀와의 음악회는 어떨까 궁금해지네요.
컴퓨터를 끄려고 하다가 엘비라 마디간 음악에 끌려
(이 곡도 어제 연주된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토요일 오전은
사진정리를 하는 시간으로 정하자고 마음먹고 다시
앉았습니다.

올레길을 혼자 걷던 날 만난 풍광입니다.
그 날 길을 잃어서 지나던 할머니에게 다가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그 할머니는 귀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어요.제 손을 한 번 지긋이 잡아주던 순간
손이 너무나 차서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왜 이렇게 손이 찬 것일까?
할머니가 지나가시고 나서 저도 모르게 제 손을 다시
한 번 만져보았습니다.


낯선 사람의 손을 선뜻 잡았던 그 할머니,이상하게
제 의식의 한 구석에 그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해안가를 따라 걸었던 날,얼마나 다양한 돌들을 보았던지요.
이렇게 들이대도 저렇게 들이대도 작품이 될 것 같은
공연한 기대로 마음이 들떴던 시간이었습니다.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한 날들,나무에
매달린 귤,바닥에 떨어져 뒹글고 있는 귤.
그런데 마지막 날 박물관에 가서 글을 읽어보니 제가
알고 있는 귤과 다른 종류가 얼마나 많던지요.
에스키모에겐 눈과 얼음과 관련된 표현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말을 들었었지만 제주에 오니
귤이 이렇게 다양하게 많구나 새삼 놀랐습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는 오랫만에 놀란 몸으로 인해
생각을 깊게 할 여유가 적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고 이제 몸이 회복이 되면서 오히려
제주올레,그리고 앞으로 그 곳이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가,아니면 어떤 공간으로 뻗어갈 것인가 혼자
공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경주,공주,부여.강화,강진,보길도,제가 다녀본 곳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한 곳은 보길도였습니다.
그래도 과연 가서 살 수 있을까 그저 공상속의 한 때에 불과했는데
제주도는 그 점에서 훨씬 구체적인 유대를 느끼는 공간이
된 점이 참 신기합니다.

두모악 갤러리에서 느낀 제주의 바람,실제로 제주에는
억새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서 그 느낌을 저도 표헌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늘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지요.
초보자가 바람을 표현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해도
얼마나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표현해보고 싶다,그 바람을 사진속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던 시간의 기억은 제게 참
소중하게 남아있답니다.


제 인생에서 우연한 기회에 만난 사람들로 인해
새로운 길이 열린 사건들이 여러번 있어요.
춘천에 사는 강선생님덕분에 시작한 일본어가 아주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제
카메라를 본 현주씨가 사진 자꾸 찍어보라고
그리고 불로그에 사진을 담아서 보면 더 찍고 싶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곤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에 리플을 달아서
그림말고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본인은 인사치례로 한 말일지 몰라도 제겐 그것이
묘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사실 사진이 너무 많아서 정리하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제 만나서 다시 사진 이야기를 듣고는 이상하게
또 마음이 움직여 새벽까지 정리를 마치게 되었거든요.
그녀가 사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그녀의 사진은 제가 잡지 못한 다른 제주도를 보여주고
있더군요.

언젠가 그 때 사진 이야기로 여러번 자극을 주어서
내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감사 인사를 할 날이 올 것같은
좋은 예감이 드는 것을 보니 올 해 호수공원까지 카메라를
들고 걸어다니고 싶어집니다.


엘비라 마디간으로 알려진 모짜르트의 곡,둘째 악장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늘은 3악장의 멜로디가
즐거운 기분을 반영하면서 귀에 박히고 있네요.
다음 주에도 시향연주에 모짜르트가 있어서 이번 주
다음주에는 모짜르트와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과 인연을 맺고 좋아했지만
켈리님에게 나도 음악회에 함께 가고 싶다는 콜을 하지
못했더라면 현장에서 즐기는 깊은 맛의 소리를 만끽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녀와의 만남도 제 인생에는 하나의
새로운 문,충분히 고맙고 즐거운 문을 연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요.그녀가 올리는 음악으로 새로운 하루 하루를
여는 즐거움이란..


어제 헤어지기 전 현주씨가 영화를 함께 보고 싶으면
연락하라고,특히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영화를
그러면서 워낭소리를 소개하더군요.
그 다큐멘터리에 대해선 이미 컬쳐뉴스를 통해 읽고
이 영화가 궁금하다고 올려놓은 것이라 어라,워낭소리를
알고 있구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선생님의 홈페이지에 가니 워낭소리
눈물이 난나고 하면서 동영상이 올라와있네요.


82cook에 올라온 리플중에 제가 언급한 앙코르란
책을 번역한 분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써드 에이지란 책도 번역을 했다고 하네요.
사실 써드 에이지,그 책은 제게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살면 좋을까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한 책이고
그 후에 여러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던 책이기도 한데
두 책을 한 사람이 번역하고,번역자가 글에 리플을 달아서
반가움을 표하고 이런 일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참 신기하고 기운을 북돋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그래서 더 끌리기도 하고 배울 점이 있는
마음을 열고 내가 먼저 다가가면 열리는 문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이 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

제주올레 사진 정리는 이것으로 끝났지만 제 인생의 올레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형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