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밤의 일입니다.
수업중에 어디선가 울리는 휴대폰소리,누구 것인가
확인해서 밖에 가서 받고 오라고 하니 서로 두리번거리면서
가방을 뒤적이는데도 누구 전화가 울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혹시 선생님 전화소리 아니냐고 하네요.
금요일 아니면 별로 휴대전화를 쓰지 않아서 제게 온
전화라곤 생각을 못했었거든요.
전화를 받으니 제주 올레길에서 만나서 대뜸 언니라고
불러서 놀라게 하던 현주씨입니다.
금요일의 서울나들이에서 시간을 내어 만날 수 있는가
하는 전화였습니다.
사실 이번 방학에는 금요일에도 다섯시까지는 수업이 있어서
그 다음 음악회에 가는 정도의 여유밖에 없어서 고심하다가
그러면 먼저 다른 멤버랑 만나고 있으면 음악회이후에
합류하겠다고 했지요.
올레길에서의 인연과 서울에서의 after사이에 현지에서의
즐거움이 그대로 이어질지 혹시 어색한 모임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에서 들은 세헤라자드,그리고
너무 멋진 앙콜곡에 취해서 평소에 못지르던 소리도
한껏 지르면서 감사를 표하고 세종문화회관을 나서는 순간
다음 주에도 시향의 연주회에 꼭 오고 싶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약속장소에서 만난 영미씨,현주씨,그리고 제겐 낯선 사람이지만
세 사람은 서로 올레길에서 만난 석원씨
이렇게 4사람이 인사를 하고 앉은 자리,11시에 문을 닫는다는
가게에서 나와서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고 2차를 찾아서 가는
그리고 그곳에서 집에 가는 마지막 버스가 끊어지기 전까지
이어진 이야기,이야기들
참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들어와서 마지막 남은 사진 정리를 다 마치고
나니 이미 밤은 깊었지만 뭔가 하나의 매듭을 만들고
앞으로 나가는 기분이 드는 밤이었습니다.

지난 연말의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하면서 제게 의미있는
사진들을 골라서 올려봅니다.
11코스,제주도의 역사가 응축된 길을 걸었던 날,그리고
올레코스중에서 제일 의미있었던 날,곶자왈이란 곳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어두워서 저절로 플래쉬가 터지더군요.

제주에서 얼마나 자주 하늘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 때마다 다른 하늘,들이대기만 하면 재능있는 사람들에겐
그것이 작품이 될 것 같은 하늘인데,실력이 모자라서
아쉽구나 마음이 절실했던 순간이기도 하고,김영갑님의
제주사랑이 이해가 되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11코스를 도는 날,영미씨,그리고 미숙씨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길이 의미가 있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도
한껏이지만 그 속을 걸으러 온 사람들의 열린 마음으로 인해
마음속을 치장하지 않고 흘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도
큰 몫을 한 것이 아닐까요?

그 곳에는 계절이 공존하고 있더군요.
밭에는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밭에 무덤이 함께 하고
있기도 하고 그 옆에는 식물이 생생하게 자라고 있기도
하고요.

정말 다양한 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사람모양을 한 이 돌이 재미있어서
그 앞에서 여러차례 카메라를 들이대었지요.
마지막 날 박물관에서 본 돌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길에서 만나는 수없이 많은
다른 돌들이 이 곳이 내가 사는 곳과 또 다른 곳임을
실감하게 하더군요.

어제 저녁에 들은 세헤라자드,그 곡을 켈리님이
everymonth에 올려놓은 덕분에 아침에 다시 그 곡을
들으면서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치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환상속의 이야기공간으로 들어간 느낌입니다.


어제 밤 모인 자리에서 올레길에 대한 이야기,그것이
제주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의 올레는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살아가면서 지향하고 싶은
꿈은 있는가,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흘러 넘쳤지요.
그러다가 다시 이야기는 제주도로 돌아가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주의 올레길,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가 묵었던 집에서의 에피소드등으로 이어졌습니다.


11코스를 돌던 날,제주도의 공동묘지앞을 한참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여럿이서 함께 가는 길이어서일까요?
무덤앞을 지나는 것이 무섭다기보다 앞으로 우리들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가,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길을
걸었던 생각이 나는군요.


어제 처음 만난 석원씨는 처음 보는 순간 딸또래의
대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인사를 하고 나니
사실은 훨씬 더 어른이더군요.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수인사에서 늘 놀랐던 것이
제가 예측한 상대방의 나이가 다 틀렸다는 것인데
그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럴까? 추측을 해보니 그 길을 혼자서 혹은 둘이서
걸으러 온 사람들,그들의 마인드가 달라서 그런가?
그것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어떤 공통점이 있었지요.


이런 인연이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건강하게 그리고 제게 새로운 자극으로 오래 이어질 것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다양한 꽃들이 어라,지금이 어느 철이지
하고 돌아보게 만들던 시간이 기억납니다.


사진을 한 번에 정리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했는데
너무 많군요.제 마음에 버리기 아까운 사진들이
아무래도 한 번 더 뽑아서 정리를 해야 할 모양이네요.
맥주와 막걸리,서로 다른 술이 들어간 다음 날이라
평소라면 배가 아프면서 조금은 이상하게 출발할 날인데
몸이 멀쩡하게 깨어난 날,세헤라자드의 선율과 더불어
즐거운 토요일 아침을 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