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중에 하려던 목요일 수업,아무래도 아이들이 방학중이라
수업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휴강을 하기로 하고,오늘 도서관의 박헤정씨랑
둘이서 아람누리미술관의 피사로를 만나러 갔습니다.
마침 아침에 보람이의 학교가 결정되는 날이라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내가 신경쓴다고 학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그냥 연락오기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마음을 비우고
나선 길,오랫만에 아람누리 도서관에 들러보았지요.
새로 들어온 도서를 많이 구비하고 있어서 우선은
그 코너에서 눈에 띄는 책을 빌렸습니다.
약속시간이 임박해서 천천히 고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책을 다섯권 고르고 묵직해진 가방을 들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경쾌합니다.
미술관에 가니 고양시민이라고 관람료를 3000원이나 할인을
해주네요.
미술관에 들어가니 이미 도슨트의 설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몇 작품에 대한 그녀의 설명을 듣고 다시 처음부터
그림을 보는 중에 함께 그림을 보던 사람과의 호흡이 맞아서
그 시간이 더 즐거운 재미있는 경험을 했지요.
워낙 자신의 생각을 말로 똑 부러지게 표현하는 장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더욱 그런 효과를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그림에 관한 책을 읽은 시간도 무시할 수 없는
세월이었구나,그림에 대한 느낌이나 선호가 비슷한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네 ,그래도 이런 면은 어프로치가 달라서
흥미롭군 이런 식으로 그 시간을 즐기면서 그림을 보다가
마침 영상물을 보여주는 곳이 있어서 들어갔지요.
그런데 이 영상물이 번역이 없어서 그렇지,너무나
잘 만들어져서 사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제겐
나와서 그 자료를 살 수 없는지 물었더니 에슈몰린 박물관에서
빌려준 것이라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그것이 참 애석한 일이라 다음에 영상물을 한 번 더
보러 일부러라도 아람누리 미술관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올 정도였습니다.

처음 공간에서는 피사로이외의 화가들 작품이
그 다음 공간에는 피사로의 작품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피사로의 가족들,(일찍 죽은 자녀들을
제외하고는 다 화가가 되었더군요.어떤 자녀는 차라리
취미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마음이 드는 그림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그림은 좋구나 하고 일부러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들도 몇 점 있었습니다.)의 그림과
그가 가족들과 나눈 편지,그리고 당시의 사진술을 반영하는
몇 점의 눈에 띄는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첫 공간에서 만난 코로의 그림이 두 점인데,그 중에서도
한 점이 눈길을 끌어서 그 앞에서 오래 서성이게 되더군요.
피사로는 그림을 처음 그릴 당시 쿠르베나 코로의 영향
그리고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 밀레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 스케치가
몇 점 있어서 눈이 즐거웠습니다.이게 밀레인가?
놀랍기도 하고,우리가 알고 있는 밀레는 사실 얼마나
작은 부분에 불과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코로의 이 그림들은 집에 와서 찾아본 것이고요
전시장에서 본 코로는 다른 그림입니다.)

이번 전시는 에슈몰린 박물관 소장의 작품들이 온 것이라고
하는데,이 박물관에 피사로의 아들이 (영국으로 건너가서
화가 활동을 한 아들) 아버지의 작품을 포함한 가족의
작품을 이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드믈게도 전시장에서 한 가족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보는 흔치않은 경험을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찾은 피사로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만났습니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고 지나치던 작품인데 오늘 보았다고
반가운 마음에 클릭해서 다시 보게 되네요.

정작 피사로의 예술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들은 많이
오지 못해서 오히려 영상으로 자세히 보강해서 설명도
듣고 그림을 시기적으로 차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화가의 자화상입니다.
그는 인상주의 운동의 전기간에 걸쳐서 열렬히 이 운동에
참여했고 화가로서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인간적으로
세잔이나 모네등 당시의 화가들에게 정신적으로 멘토 역할을
충실히 해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더군요.
특히 세잔의 경우 피사로가 자신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표현할 정도로 존재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처럼 피사로의 경우도 블루바드
몽마르뜨르를 시간대 별로 그린 그림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그림들은 오지 않았지만 그가 살던 지역의 아침과
저녁을 그린 두 점의 풍경앞에서 나는 어떤 그림에 끌리는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내 성격의 일면을 느끼는 시간도
흥미있더군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은 그의 수채화를 몇 점 만난 것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집에 걸어두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이는
그런 그림도 있었고,원화는 어려우니 이 그림만은
카드 형태로라도 판매하면 벽에 꽂아두고 자꾸 바라보고
싶다는 그림도 만났지요.
오늘 전시장에서 만난 튈뤼리 정원을 그린 멋진 그림을
소개하고 싶어서 찾아보던 중 그 그림은 못 찾고
그가 영국에 체류할 동안 만난 차링 크로스를 그린 그림을
찾았습니다.차링 크로스는 그와 함께 갔던 모네도
그렸는데요 기회가 되면 두 사람이 런던에서 그린 그림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라해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사상적으로 상당히 급진적인
화가였습니다.그래서일까요?
노동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좋은 그림들이 많지요,그에겐
그런 그림들이 몇 점 걸려있었는데 그런 그림에서
밀레와의 대조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 전시회가 좋았던 탓인지
마음속에서 자꾸 하고 싶은 말이 샘솟는군요.
이러다간 다른 할 일을 못할 것 같아서 오늘은 이것으로
일단 그림보는 것을 끝내고
그림이 스스로 말을 하고 싶어하는 날,다시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