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유산을 읽다가 드디어 그동안 사놓고
그림 도판만 보고 영어가 지나치게 난삽해서 (실력탓을
아니 하고 영어가 난삽하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좀 웃기는 일이지만 정말 그렇게 진입장벽을 느끼게 하는
영어표현은 참으로 오랫만에 만나는 것같아요) 못 읽고
있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호이겐스라는 인물의 묘사부터 시작합니다.
도대체 렘브란트를 이야기하면서 왜 느닷없이 다른 이야기
그것도 제대로 모르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가 했더니

이 사람이 바로 당시 총독의 부관이었던 모양입니다.
총독의 관저를 장식할 그림이 필요한데 이미 네덜란드는
칼뱅의 신교로 개종한 상태라 프로테스탄트 루벤스가
필요했노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하더군요.
루벤스는 당대에 이미 유명해져서 그의 그림이라면
신용이 있지만 개신교 총독의 관저에서는 그의 그림을
걸기가 곤란했었는데,그렇다면 누가 그에 필적할 만한
존재인가,자신도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호이겐스가
찾고 찾는 과정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누구는 어떤 점에서는 뛰어나나 그렇다고 루벤스에 필적할
만한 대가가 되기엔 너무 모자라고,이렇게 저렇게 그어나가다가
호이겐스는 드디어 렘브란트와 리벤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더군요.
호인겐스는 라틴어 시와 존 던의 시를 번역했고
점성학,신학,법학을 공부했으며,데카르트와 3개국어로 서선을
교환한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일기가
유명한데요,그가 일기에서 방앗간집 아들 렘브란트와
자수업자의 아들 리벤스에 대해 기록하기를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들에 비해 손색이 없으며
얼마 있으면 그들을 능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호이겐스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
다시 장을 바꾸어 당시 레이덴에 살고 있던 렘브란트를
소개합니다.
바로 그 장에서 소개하는 그림이 바로 이 자화상인데요
혼자서 자화상을 볼 때는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속에서
드러나는 젊은 렘브란트를 바라보는 것에 그쳤었는데
그의 목에 둘러진 장식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통해서
아,그렇구나,그런 것이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니 비평가의 도움이 이런 때 절실한 것이네 하면서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입니다.
당시 아직도 스페인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시기라
불안이 늘 상존하고 있던 시절,젊은이들이 언제라도
징집되어 갈 수 있는 시기를 살고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군대에 가지는 않았지만 렘브란트의 경우도
그런 시대상에서 자신의 의상에 덧대어서 그린 것은
아닐까,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화가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아지는군,그래서
그림읽는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에서 본 자화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지요?
수없이 자화상으로 남은 렘브란트,그의 자화상을 따라가다보면
그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을 따라가기도 하고,그것에 투영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할 좋은 시간이 될 것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렘브란트를 문학에서의 세익스피어에 비교하면서
인간심리를 무대에 올려서 너무나 잘 다루고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고 있더군요.
초상화도 물론 그렇지만 성서를 캔버스에 옮길 때
등장인물의 감정을 살아서 움직이게 표현하는 놀라운
힘에 대해서요.
제 개인적으로도 많은 성화를 보았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들어놓는 ,그래서 실제로 그 안에 제
자신이 동참하는 것같은 느낌을 주는 성화는 렘브란트가
최고라고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미술사 책에서 만나는 성화이외에는 일부러 찾아서 보진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 렘브란트의 작품은 가끔씩
일부러 찾아서 보곤 하지요.


우연히 빌리게 된 렘브란트의 유산,덕분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 책을 만나서 새롭게 읽게 된 것이
반갑고요,늘 잊을만하면 새롭게 렘브란트를 읽게 되는
것이 그 화가와 제 개인적인 깊은 인연을 반영하는 것같아서
공연히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 다시 볼
기회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