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간송미술관에 다녀온 날,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었습니다.
눈을 확 끌어당기던 겸재의 그림,단원의 마상청앵도
혜원의 새로운 그림,이정의 대나무그림,호생관과 추사의
그림과 글씨,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과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을 마저 읽고 싶다는
마음사이에서
문제는 그림을 찾아보고 싶어도 자료가 넉넉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소설읽기의 매력에서 놓여나기 어렵다는 것
결국 집에 와서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에서 만난
그림들에 마음을 뺏기게 되었습니다.

프랑스-프로이센의 전쟁때 화가들도 역시 전선에 나가야
했지요. 그 때 르노와르가 그림속에서 그의 죽음을 너무나
애석해하는 친구 바지유도 전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가 그린 바지유입니다.
그는 졸라가 인상주의에 대해 공격을 시작한 시기에
바지유가 살아있었더라면 하고 카이유보트에게 이야기를
여러번 하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이 여자모델은 마르고라고 하는군요.
그녀는 이 소설의 모델이 되는 그림을 그릴 즈음에는
이미 천연두로 죽은 상태인데요,아플 때 르노와르에게
와 달라고 (둘은 화가와 모델이자 연인사이였다고 하는데)
연락을 보냈지만 그는 병이 옮는 것이 두려워서 막상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서성대면서
그림을 못 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음속의 짐을 안고 살다가 이 그림속에서 난간에 기대고
있는 여자와 개인적으로 대화하는 동안에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그림의 제목이네 하고 넘어갔을 제목
샤투에서의 노젓는 사람들,아 샤튜라면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섬이로군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됩니다.
그 곳은 파리에서 일요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기차로
와서 하루동안 배타고 놀다가 카페에 와서 음식을
먹고 쉬기도 한 다음,다시 파리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가까운 거리라고 하더군요.
모네와 르노와르가 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던
개구리란 의미를 가진 섬과도 가까운 곳이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진주귀고리소녀,버진 블루,여인과 일각수를 쓴 소설가
아침신문을 읽는 여인을 쓴 또 다른 소설가
그리고 델프트 이야기와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을 쓴
이 소설가,그들이 우리앞에 펼쳐놓은 이야기로
그 그림들은 전과는 다른 빛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달라진 각도에서 달라진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마술을 펼치고 있는 셈이로군요.

그림을 찾는 동안 내내 이제 드디어 동유럽 여행에서의
감흥에서 서서히 깨어나 음악이 있는 수다를 올리기 시작한
캘리님,그녀가 올린 브람스의 첼로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협주곡을 들었습니다.
그림과 소리가 어우러진 즐거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