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물쥐라면
그렇게 물 밖으로 코를 내민 채
삶을 냄새 맡지는 않으리라
물쥐란 놈은 재빠르다
수면에 올라와 어떤 것을 눈치채고는 서둘러
물 밑으로 달아난다
유월부터 그 이듬해 오월까지
낮은 언덕지대에서부터 들판의 물웅덩이에 이르기까지
거기 어떤 것이 었어
흙을 부풀게 하고
물풀의 뿌리를 헤쳐 놓는다
밤이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것이 물쥐라는 걸 알았다
소리 없이 내 삶을
감시하는 것, 물 속에서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것
때로는 내 꿈 속까지 몰래 들어와
잠을 설치게 하고
생각의 뿌리를 헤쳐 놓는 것
저녁에 개를 끌고 저수지 근처로 나가면
그곳에 물쥐가 있다, 나무들 사이에
무렝 비친 구름들 사이에
하지만 물쥐는 언제나 혼자다
그렇다, 어떤 때는
나 역시 삶에서 혼자였다
만일 내가 물쥐라면
그렇게 살아볼 새도 없이
삶을 놓쳐 버리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렇게
놀라진 않으리라
내 집 뒤에
물쥐의 집이 있다
물쥐는 이따금 물 밖으로 걸어나와
내 시집에 얼굴을 문지르기도 하고
코를 들어 내 삶을 냄새 맡는다
물쥐에게
내 상처 받은 일에 대해
고백하지는 않으리라
나는 다만 물쥐에 대한 시를 쓰고
밤이면 들판을 건너가는 물쥐의 발 빠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다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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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07-02 16: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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