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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물쥐에게 말을 가르치며

| 조회수 : 1,368 | 추천수 : 38
작성일 : 2008-07-02 16:07:40
만일 내가 물쥐라면
그렇게 물 밖으로 코를 내민 채
삶을 냄새 맡지는 않으리라
물쥐란 놈은 재빠르다
수면에 올라와 어떤 것을 눈치채고는 서둘러
물 밑으로 달아난다

유월부터 그 이듬해 오월까지
낮은 언덕지대에서부터 들판의 물웅덩이에 이르기까지
거기 어떤 것이 었어
흙을 부풀게 하고
물풀의 뿌리를 헤쳐 놓는다
밤이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것이 물쥐라는 걸 알았다
소리 없이 내 삶을
감시하는 것, 물 속에서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것
때로는 내 꿈 속까지 몰래 들어와
잠을 설치게 하고
생각의 뿌리를 헤쳐 놓는 것

저녁에 개를 끌고 저수지 근처로 나가면
그곳에 물쥐가 있다, 나무들 사이에
무렝 비친 구름들 사이에
하지만 물쥐는 언제나 혼자다
그렇다, 어떤 때는
나 역시 삶에서 혼자였다

만일 내가 물쥐라면
그렇게 살아볼 새도 없이
삶을 놓쳐 버리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렇게
놀라진 않으리라

내 집 뒤에
물쥐의 집이 있다
물쥐는 이따금 물 밖으로 걸어나와
내 시집에 얼굴을 문지르기도 하고
코를 들어 내 삶을 냄새 맡는다

물쥐에게
내 상처 받은 일에 대해
고백하지는 않으리라
나는 다만 물쥐에 대한 시를 쓰고
밤이면 들판을 건너가는 물쥐의 발 빠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다


------류시화
소꿉칭구.무주심 (nh6565)

제주 토백이랍니다. 우영팟 송키톹앙 나눔하듯 함께 나눠요. - jejumullyu.com 제주물류닷컴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소꿉칭구(무주심)
    '08.7.2 4:18 PM

    안개비 의 습한 기운이 주변에 널려있는 하루네요
    맑은날씨 희망하듯 모든 주변이 고운날되기를 희망해봅니다

  • 2. 탱여사
    '08.7.2 4:53 PM

    의미 있는 시
    한참을 읽어보네요.

  • 3. 오후
    '08.7.2 6:30 PM

    류시화님의 이런 시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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