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오랫만에 보람이랑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배가 출출하다고 (그저께부터 삶을 달걀과 토마토로
다이어트하겠다고 시작한 녀석이) 엄마랑 지난 번에
간 간이주점에서 김치전이랑 계란말이 먹고 싶다고 하네요.
그러자고 걸어서 그 곳으로 갔습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다니고 있네요.
두 가지 안주에 요구르트 막걸리라는 희안한 막걸리를
한 병 시켜놓고
둘이서 오랫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새 커서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하고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한 고민도 하고,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망설이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을 했습니다.
네가 아무 생각도 없이 산다면 엄마가 도와준다는 말을
못하겠지만 네가 그렇게 앞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니
고맙기고 하지만 젊은 시절에 그렇게 현실적인 앞일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니?
일단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정 어려우면 엄마에게 도움을 청해도 된다고요.
그랬더니 이제까지 도와주었으니 앞으로는 독립적으로
혼자 힘으로 해보고 싶다고 하네요.
여대생 마케터란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이제까지는 응모해서 해보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몸이 귀찮다고 여기는 것을 극복하는 계기로 삼고 싶어서
어제까지 서류를 내느라 한참 고민해서 글을 써 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네가 몸 움직이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인데
한 번에 확 바꾸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바꾸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앞으로 엄마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이야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벽 두시가 다 되어 가네요.
돌아오는 택시속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커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서 정말 고맙노라고.

어제 밖에 나갈 일이 있어서 들고 나간 로스코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미술관이 있습니다.
일본의 치바현에 있는 어떤 미술관인데 그 미술관에
로스코의 방이 따로 있더군요.
보람이에게 치바현이 어디 있는지 아는가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네요,들어는 보았지만
왜냐고 묻길래 일본에 있는 미술관에 엄마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 있어서 일본에 가면 꼭 가보고 싶노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떠나는 때 한 번 ,그리고 학교 다니는 도중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정도 그 아이랑 여행을 할 수 있겠지요?
그 때 로스코의 그림을 만나러 가보고 싶어지네요.

언제나 제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런 저런 구멍이 보여서
늘 부족한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그 아이의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이 들면서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그것이 늘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런 마음으로 자꾸 내려놓는 훈련을 하면서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들과도 대학생이 되면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그렇게 되도록 마음을 더 내려놓고
지켜보는 힘이 생겼으면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