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학생들의 시험도 끝나지 않은 시기의 평일이니
미술관이 그다지 붐비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시립미술관에 올라가는 길에 내려오는 인파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고흐를 보러 가기 전 미리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타쉔에서 나온 책의 번역 고흐와 아이세움에서 나온
청소년용 도서 고흐에 관한 것인데
처음 화가에 대해서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후자의 책을 추천합니다.
이상하게 고흐하면 마음이 아파서 그의 작품을 정면으로
마주대하지 못하고 늘 도망다니다시피 했던 화가라고나 할까요?
일정시기의 그림은 그래도 마음놓고 보곤 하는데
다른 시기의 그림은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슬픔때문에
자꾸 피하게 되는 그 느낌을 이번에는 오로지 그의 작품만
전시하는 전시장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까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기분으로 전시장에 들어서니
이미 도슨트의 설명이 시작되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인파를 따라 다닐 엄두가 나지 않네요.
차라리 천천히 내 속도로 즐기자 싶어서
인파가 지나가길 기다렸지요.
한 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고흐 작품을 본 것은 물론
처음이었고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르겠고
혹시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네덜란드에 가서
고흐 미술관과 국립 박물관 그리고 사설 미술관으로는
그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국립공원내에
자리잡은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미술관 (이번
전시에 그 미술관의 작품도 많이 왔더라고요)
그렇게 세 곳을 볼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요.

감자먹는 사람들,이 그림은 유화로는 오지 못하고
판화로 왔더군요.
그래도 그 그림앞에서 각자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감자를 먹는 인물들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들라크로와를 존경했다는 고흐는 그의 작품도 여러 번
모사를 했었다고 하네요.
good samaritan이란 제목의 그림인데요,모사라곤 해도
고흐의 선이,격정이 살아있는 그림이라 역시 모사에도
화가의 특성이 살아나는구나 신기했습니다.
밀레를 모사한 그림도 마찬가지더군요.
씨뿌리는 사람이 두 점이 왔는데 두 점의 느낌도 사뭇 달라서
신기해서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바라보게 되었지요.

그의 자화상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나들이를 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만 한 곳에 따로 전시를 했더군요.
소근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정말 다르다,그냥 책에서 보는 것이랑,
그러니 전시장에 오는 것이지,사람들의 놀람과 웅성거림
너무나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섞여서 그림을 보는
전시장이 붐비긴 해도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참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형체가 거의 뭉그러진 느낌이지만
조금 떨어지면 선명하게 사람의 모습이 살아나면서
새로운 그림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가까이가면 물감의
질감이 느껴져서 신기한 마음에 더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만나기를 기대하고 간 작품들이 여럿 있었는데요
그 중의 한점인데 역시나 오지 않았더군요.
테오의 아이가 태어나고 그의 이름을 따라 이름지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겨운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그린 그림이라고 하더군요.
금요일에 만난 그림들중에서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그림들이 많고,겨우 며칠 지난 것인데도
아이리스 그림인 경우,이 작품인가 저 작품인가
가물가물한 그림도 있고 그렇군요.

그림을 보다가 보니 벌써 끝입니다.
보람아,마지막 방을 못 본 모양이야,엄마가 보려고 했던
그림들이 없는 것을 보니,그러자 아이가 말을 합니다.
엄마가 너무 기대를 하고 와서 그런것 아냐?
나는 정말 많이 본 느낌인데,
그래도 그렇지,뭔가 2% 부족이 아니라 20% 부족한 기분이네
닥터 가쉐도 없고 밀밭 그림도 없고
별이 빛나는 밤도 없고,없고 없고 없고로군
물론 그 곳에도 전시할 그림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많은 대관료를 물고 들여왔다는 전시라고
소개가 한창이길래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너무
컸었던 것일까요?

한 번에 다 보려는 욕심이 문제지,마음을 가볍게 한 다음
다시 한 번 둘러보면서 꼭 다시 보고 싶은 작품들 앞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호암아트홀에 7시 30분까지 가기로 했는데
벌써 7시,저녁 먹을 시간도 빠듯하네요.
보람이랑 헤어져서 큰 길가로 나오니 루미나리에 축제라고
소개받았던 멋진 광경이 시청앞에서 벌써 빛을 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보람이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려주고
호암아트홀을 찾아가는 길,벌써 금요일의 저녁이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