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갈 준비로 이런 저런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는 중에 생각난 영화가 바로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였습니다.
오래 전에 비디오로 본 영화인데 마침 찾아보니
디브이디로 출시가 되었네요.

에라스무스 장학금을 받아서 바르셀로나에 일년간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프랑스 청년이 다국적 동거인들과
한 집에서 기거하면서 겪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코믹하게
다룬 영화인데요
새로 보면서 어라,저긴 구엘 공원,저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네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시내 구경도 하게 되고요
조금 익힌 스페인어로 귀에 들어오는 표현도 있어서
신기합니다.
처음 주인공이 에라스무스 장학제도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는 에라스무스를 검색해보더군요.
프랑스 청년이 에라스무스를 모른다는 것이 제겐
더 이상한 현상으로 보였지만 어쨋든 검색과정에서
홀바인의 에라스무스 그림이 뜨는 것도 반갑더군요.
그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날
오래 살면 모르지만 처음 온 낯선 도시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눈 뜬 장님처럼 느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의에 처음 들어간 학생들이 교수에게 건의를 합니다.
카탈란어가 아니라 카스티야어로 강의를 해달라고요.
이전에 영화를 볼 때 이런 장면이 있었나 전혀 기억에도
없는 장면인데 이번에는 이 부분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그러자 교수가 말을 합니다.
여기서는 카탈란어가 공용어이므로 자기의 재량에 따라
카탈란어로 강의를 하겠다,이것은 정체성의 문제라고요
그러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모여서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니 한 편의 영화라는 텍스트도 자신이 어떤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른 색깔로 다가올 수 있는지
재미있군요.
스페인 역사를 읽으면서 조금씩 그 나라에 대해 알게 되니
바다의 성당을 읽을 때 잘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아하,그래서
그렇다면 그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을 많은 점에서 놓치거나
오해하면서 읽은 것은 아닐까,다시 읽어야 하나
그러기엔 시간이 모자라는데 갑자기 고민이 되네요,

같은 중세라 해도 그 시기를 어떤 계급으로 어떤 성별로
살았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달랐을 것이며
같은 계급이라 해도 그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살았는가에
따라서도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오독이 있었다 해도 그 소설에서 생긴 이미지로 인해
어느 한 시기의 삶을 상상해본 것 그 자체가
풍부한 경험이 되는 것이 아닐까 고쳐서 생각을 해봅니다.
여행 준비로 인해 한동안 스페인에 관련된 것들을 막
읽다가 내년이 되면 다시 그 나라는 제게서 멀어지겠지만
그런 몰입이
책속에서 다시 불쑥 고개를 내밀고 아는 척을 한다는 것을
지나간 여행 이후에 자주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여행은 그 시기 현장에서의 경험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준비과정을 포함하여 그것이 나중에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남겨주는 인식의 확장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